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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승
일상의 소재에서 시적 가치를 발견해 내는 재능이 뛰어나다. ｢빅 피쉬｣는 자기 존재가 소멸 단계에 이른 다음에야 큰 고기가 되는 멸치의 일생을 익살스러우면서도 비장하게 그렸다. 문체도 힘차고 표현도 비교적 적확하다. 그러나 전통적인 개념에서 기승전결의 전에 해당할 제3연과 제4연 사이의 전환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게다가 벌써 멸치는 머리가 떨어졌으니 눈이 없지 않는가? 이건 사소한 실수가 아니다.) ｢아주 조금 깨물어 먹는｣은 순탄하면서도 정취가 있는 시이다. 이 시가 말하는 사랑의 고유한 성질이 훌륭하게 부각된 것은 아니지만, 사과를 제대로 본 적이 없으면서도 “지금, 내 몸은 온통/사과 밭 천지네”라고 말하게 되는 이 시의 결구는 매우 아름답다. 중간에 구체적인 정황이 하나쯤 소개되었더라면, 수많은 사랑 가운데 이 사랑의 특별함이 또렷이 드러날 수 있었을 것이다.
김민정
시를 너무 먼 곳에서 찾는 것 같다. 두 시에 모두 태초의 시간이 있고, 예술의 고상한 목표가 있고, 아름다운 삶의 개념이 있지만, 어디선가 늘 들어왔던 말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우아하고 고결한 것으로 이 고달픈 삶을 덮어 가리고 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비루한 일상에서 그 가치 있는 것들이 자라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시인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차이는 매우 미묘하다. ｢악궁｣보다는 ｢빗살무늬토기2｣가 더 좋은 시이다. 그러나 “불꽃으로 일렁이는 속마음”을 눌러 감추려 하지 말고, 바로 그 마음을 드러내 놓고 시를 쓸 때만 그 마음을 진정한 의미에서 다른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를 폭넓게 읽어보길 권한다.
이진희
두 편의 시가 모두 경쾌하면서도 매듭이 강하고 할 말을 다 한다. 문체에 힘이 있다. 시의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은 좋은 점이기도 하고 나쁜 점이기도 하다. 제 목표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좋고, 시의 첫머리에서 그 끝을 짐작하게 한다는 점에서 나쁘다. 시를 처음 시작할 때의 시인이 시를 완성했을 때의 시인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면, 그 시를 읽는 사람도 분명코 그 시와 함께 변화 발전할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훌륭한 시인데, 소재의 상투적이 (바로 그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말이) 시의 장점을 갉아 먹는다. “북극처럼 외로운 존재들로 나를 완성한 아빠”의 관점에서 이 시를 다시 써보는 것도 좋겠다. 이 아빠가 만든 괴물은 결국 시인 자신의 시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시의 제목을 ‘내가 쓴 시’로 바꾸고 시를 다시 손질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
조용숙
두 편의 시가 모두 기민한 시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목디스크｣는 제목 그대로 목 디스크에 관한 이야기지만, 이 육체적 불편함으로부터 한 존재의 심신을 얽어매는 어떤 억압의 이미지를 공교롭게 만들어 낸다. 침착한 서술로 아이러니의 날을 반듯하게 세워 놓았다. 좋은 시다. 웅녀의 신화를 원용한 ｢그때 동굴을 나간 호랑이는 어디로 갔을까｣도 같은 방법으로 쓰인 시지만, 해석의 폭이 더 넓다. 바위 속에서, 또는 육체 속에서 깨어나는 이 호랑이는 새로 발견되는 어떤 열정의 이미지일 수도, 예술 활동에서의 어떤 전환의 순간이나 성행위와 관련된 자기 확대의 순간일 수도 있다. 잠들어 있거나 둔화되었던 자아는 그 순간에 질적인 자기변화를 체험한다. 이 시 역시 복합적 이미지의 사용과 활달하면서도 계산된 서술로 성공하고 있다.
고영서
기량이 튼튼하고 내공이 두텁다. ｢뭉클, 뭉크｣는 불안에 시달리는 한 정신의 비극을 긴박하게 그리고 있다. 제목의 “뭉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육체가 겪는 낯선 느낌에서부터 감정의 격앙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뭉크”가 반드시 있어야 할까. 물론 이 시는 뭉크의 한 그림에 대한 일종의 해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뭉크”가 없었더라면 그 해설을 넘어설 수도 있었으리라. ｢황실이｣에서 “황실이”는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황 씨네 며느리, 황강달이의 사투리, 그리고 ‘황실’에 글자 하나가 더 붙은 말. 시인은 이 말장난을 토대로 가정폭력과 그 결과를, 그리고 옛 추억이 되어버린 농촌의 모내기 풍경을 적절하게 아울러 그리고 있다. 물론 이 말장난은 시를 가볍게 하기는커녕 비극적 감정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마지막 연에 암시적 어구를 하나쯤 더 넣으면 독자들이 고생을 좀 덜 하겠다. 좋은 시다.
이용임
｢평창민박｣과 ｢Cafe. 봄｣은 모두 고요한 풍경을 하나씩 그리고 있지만, 섬뜩한 느낌이 없지 않다. 앞의 시에서, 한 민박에서 누리는 잠의 평화는 완전한 것이면서도 불안하다. 그 휴식이 인환의 바다에 둘러싸인 어떤 섬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Cafe. 봄｣에서 “봄”은 카페의 이름일 것이다. 이 봄에 관해서도 역시 같은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이 봄은 겨울에 둘러싸인 위태로운 봄이다. 역시 잘 그린 수채화다. 말은 적지만 함축미가 있다. 어쩌면 독자들은 시인이 이 평화로우면서도 불안한 섬에서 탈출하기를 바랄 것이다. 물론 그 평화가 불안하기에 매혹적이라는 것만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정수경
뛰어난 필력이 이 시인의 장점이다. 문장은 속도감이 있고, 적확한 자리에 적확한 말이 꼬리를 물고 솟아오른다. ｢닭, 날다｣는 재개발 지역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첫 부분은 재난의 경과와 그 현장의 묘사이며, 뒷부분은 그 재난에 대한 상징적 해석이다. 그런데 사실의 묘사에 시인이 너무 많이 개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시인이 노리는 끔찍함의 효과를 이 개입이 사실상 방해한다. 흥분하지 말고 써야 할 것 같다. ｢도미노 풍경｣은 도시의 봄, 그것도 아파트촌의 봄을 그리고 있다. 위에서 아래도, 안에서 밖으로 폭발하는 봄처럼 시의 말도 폭발한다. 활달하고 유쾌한 시다. 이 필력을 살리기 바란다. 그러나 냉정하게. 필력이 승하면 계산에 약하기 쉽다.
김예강
｢호접몽｣은 잘 쓴 시다. 상상과 현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성묘하는 시간이 한 사람의 인생이고, 책 한 번 읽는 시간이 한 자락 나비 꿈이다. “사건의 순서”라는 부제처럼, 성묘하는 사람의 생과 무덤 속에 누운 사람의 생이 순서를 구별할 수 없이 뒤섞여 아롱아롱한 당초문을 그려낸다. 그러나 인간은 이 나비 꿈의 시간으로 많은 일을 하지 않았던가. 죽음은 모든 삶을 평면으로 만들지만, 나비는 아직 이 삶에서, 그것이 제 삶인지 남의 삶인지 모른다 해도, 높이도 날고 낮게도 난다. 시도 그래야 할 것이다. ｢누가 돌 속에 잠들어 있나요｣는 예쁜 시다. 돌 속에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다른 사물도 그러지 않을까. ‘돌멩이’나 ‘백담계곡’이 너무 전형적이라는 뜻이다. 처음부터 시적인 것을 시적으로 쓰면 그것도 버릇이 된다. 글 버릇도 나쁜 버릇에 속한다. 잘 쓰는 버릇까지도 나쁜 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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