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

 

 

이성아 / 소설가

 

은서는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이층 식당 통유리창 밖으로 을씨년스럽고 스산한 거리 풍경이 내려다보였다. 벌써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4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상점들은 모두 육중한 나무문을 닫아걸었고,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척박한 황토산으로 둘러싸여 낮에도 인적이 드문 이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은서는 서부 영화의 세트장으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산도 마을도 은서가 지난 며칠 간 만났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것은 바람이었다. 이곳의 바람에 대해 처음 이야기해준 사람은 무스탕 남자였다.

거기는 바람이 주인이지요. 엄청난 바람이 종일 불어댑니다.

그는 며칠 전 은서가 묵었던 롯지 앞에 좌판을 벌여 놓고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속의 악세사리를 팔고 있었다. 디자인이나 세공은 조악했지만 값비싼 보석보다는 이름 모를 돌들이 오히려 은서의 눈길을 끌었다. 그런 은서를 유심히 보던 그가 말문을 열었다.

너와 나는 비슷하게 생겼다. 나는 네팔인이 아니라 무스탕에서 왔고 너와 같은 몽골리안이다.

그러고 보니 작은 체구에 새까만 피부색을 한 네팔인들과 달리 그의 얼굴은 둥글고 체격도 큰 편이었다. 그렇게 말문을 튼 그는 은서가 좀솜을 지나 묵티나트까지 갈 것이라는 말을 듣자 좀솜의 바람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가 사는 무스탕으로 가려면 좀솜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이동 수단이라고는 당나귀나 노새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가난한 그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사치였다. 그는 며칠 밤낮을 걸어서 이곳으로 오고 또 걸어서 돌아간다고 했다. 그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이곳 좀솜에 와서야 세찬 바람을 맞으며 황량한 산길을, 오직 두 다리에만 의지해서 달이 기울고 차도록 걸어야 하는 그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까르마라고 했다. 까르마라면, 업이라는 뜻이 아닌가. 누런 이를 다 드러내고 선하게 웃는 그의 손에는 염주가 감겨 있었다. 전생의 업 때문에 고통받는 이승의 삶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대신 자신의 업을 외면하지 않고 고스란히 감내하겠다고, 그의 이름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에게 무슨 업이 있을까 싶었다. 아니, 우주 무게만큼 무거운 업이 있다 한들, 머리 풀어헤친 귀신들이 날뛰는 황량한 산길을 오체투지하듯 걷는 것만으로 이미 업장소멸은 이루진 것이 아닐른지.

해발 8천 미터를 넘나드는 험준한 봉우리들에 둘러싸인 이곳 고산지대에서는 오후 네 시만 되면 해가 넘어가고 대지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모두 집안 깊숙이 숨어버린 지금, 오직 바람만이 갈 곳 잃은 야수처럼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며 나무문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가슴 한쪽이 아릿하게 젖어오며 명치가 따끔거렸다. 막 해가 지려고 할 무렵을 매직 아워라고 한다지. 낮의 신과 밤의 신이 자리를 바꾸면서 생기는 공백의 시간. 그러니까 신이 부재하는 시간에 인간은 불안해진다는 것인가. 혼자 집에 있을 때면 이 시간을 새들보다 예민하게 감지하곤 하던 은서지만 이곳에 와서는 처음 느끼는 통증이었다.

현욱도 책을 보고 있다. 저녁 먹기 전에 둘은 산책이라도 하려고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거리는 바람만 미친 듯 불어댈 뿐 달리 갈 곳이 없었다. 몇 군데 안 되는 가게는 이미 문을 굳게 잠근 뒤였다. 모두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가려는데 한 군데 상점의 문이 바람에 덜컹거리는 것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리로 들어갔다. 심심산골 오지에 니베아 크림, 도브 비누, 스위트콘 통조림 등 갖가지 다국적 기업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에 은서는 놀랐다. 뽀얀 먼지가 두텁게 쌓인 그것이 과연 사고 파는 물건인지 미심쩍었다. 진열대 구석에는 트레커들이 들고 왔다가 돈이 떨어져서 팔고 간 듯한 헌책들이 무질서하게 꽂혀 있었다. 현욱은 그 중에서 “무스탕”이라는 영어 원서를 빼들었다. ‘잃어버린 티벳 왕국’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 책은 마이클 파이쎌이라는 영국인이 1960년 경 무스탕을 다녀와서 쓴 기행문이었다.

그 책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현욱이 반짝 눈을 빛내며 은서를 바라보았다.

“우리 여기 갈까? 좀솜이 무스탕으로 가는 길목이라는데?”

현욱이 내미는 책의 화보에는 무스탕의 수도, 로만땅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이곳이 정말 한 왕국의 수도란 말인가.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한 벌판이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황막한 들판은 어떤 생명도 서서히 고사시킬 것 같았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죽음보다 더 두렵게 느껴졌다. 은서는 온 몸에 오싹 한기를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긴, 도대체…….”

잔뜩 겁먹은 은서의 표정을 보고 현욱은 재미있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그 모습에서 은서는 얼핏 어린 현욱을 본 것 같았다. 송충이 같은 벌레로 여자애들을 놀래키고, 고무줄을 끊어먹고 달아나고, 잠자리 꼬리에 성냥개비를 박아대는 짓궂은 장난을 치고서도 그저 재미있어서 깔깔거리는 소년의 모습. 그 소년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은서가 킬링타임용 소설을 권했지만 현욱은 굳이 “무스탕”을 선택했다.

“내일은 올까?”

현욱이 책을 엎어 두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생각은 온통 거기에 가 있었는지 표정이 어두웠다.

벌써 이틀째, 비행기는 결항이었다. 기후가 불안정한 이곳에는 몇몇 항공사가 20인승 경비행기만 띄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통계적으로 가장 기후가 안정적인 오전 시간에만 운항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바람이 조금만 거세게 불어도 결항하기 일쑤였다. 고도 4천 미터에서 8천 미터에 이르는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 사이를 흐르는 칼리칸다기 강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었다. 여기에 만일 거센 바람이 휘몰아친다면 경비행기 정도는 종이비행기처럼 날려버릴 것이었다.

“내일도 비행기가 오지 않으면 어쩌지? 내일은 타야 되는데…….”

귀국편 예약 날짜는 사흘 후였다. 내일 이곳을 떠나지 못하면 카트만두 발 방콕행 비행기를 놓치게 되고 따라서 서울행 비행기마저 놓치게 될 것이다.

오늘, 설마 하던 비행기가 또 결항한 후, 항공사 사무실을 찾아갔었다. 짐작대로 서울 행 티켓을 연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온라인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직원의 설명에 둘은 말문이 막혀 서로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다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방법은 단 한 가지, 비행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 길밖에 없었다. 비행기가 결항했던 첫날인 어제, 현욱은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큰소리로 웃었다. 지구 구석구석을 샅샅이 연결해주는 통신혁명시대에 오지에 낙오되었다는 것이 마치 문명을 배반하는 것 같아 통쾌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쩌면 자발적으로 낙오되고 소외되고 갇히고 싶은 심정으로 히말라야까지 온 것인지 몰랐다. 그것도 모자라 무스탕까지 들어가고 싶어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현욱은 불안해 보인다.

현욱이 안나푸르나에 가자고 했을 때, 은서는 실소를 터뜨렸다. 대청봉, 천왕봉은 고사하고 북한산 등반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 안나푸르나라니……, 그건 자신의 삶 어디에도 들어맞을 리 없는 설계도인 것 같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은서에게 현욱은, 나도 처음이야, 하지만 너랑 꼭 한 번 가고 싶다, 그렇게 말했다.

은서는 초조하게 담배를 비벼 끄는 현욱의 손을 꼭 잡았다. 손이 얼음장처럼 찼다.

밤이 되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실내에 있는 물마저 얼어붙을 정도였지만 난방은 전혀 되지 않았다. 식당 테이블 밑에 있는 석유스토브가 이 큰 호텔의 유일한 난방기구였다. 시즌 막바지였으므로 호텔에는 손님이 전혀 없었다. 둘은 거대한 저택의 주인이 된 듯 호기를 부리며 즐거워하기도 했지만, 싸늘한 냉기는 그나마 미소도 빼앗아 가버렸고, 어둠이 내리면 호텔은 파산의 기미마저 감돌았다.

식당 옆 조그만 방에서 혼자 트럼프를 하고 있던 붓다가 밖으로 나와 전기 스위치를 올렸다.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붓다는 몇 번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더니 이내 체념하고는 촛불을 가져와 테이블에 놓아주었다.

“돈 워크.”

“아, 말도 안 돼. 이제는 불도 안 들어온단 말이야.”

은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어딘가 고장이 난 것 같은데 지금은 어두워서 고칠 수 없고 내일이나 고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니, 그럼 내일 밤에도 여기 있으란 말이야? 내일 고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람.”

현욱이 왈칵 짜증을 냈다. 그러나 붓다는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었다. 하긴 이 궁벽한 곳에서, 누가 누구에게 미안해한단 말인가. 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무뚝뚝하긴. 그러면서 이름이 붓다가 뭐야? 겁도 없이.”

현욱은 붓다에 대해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첫 날은 욕실의 물이 빠지지 않아서 애를 먹었고 그제는 어렵게 나오기 시작한 온수가 갑자기 찬물로 바뀌는 바람에 샤워를 하던 현욱이 기겁을 해서 뛰쳐나온 일 때문이었다. 태양열이 유일한 전원인 이곳에서는 온수의 양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은서는 샤워를 할 수 없었다. 현욱은 당장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했다. 그러나 다른 곳이라고 더 나으리란 보장도 없는 데다 그나마 정이 든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옮기는 것이 은서는 더욱 싫었다. 그게 잘 못이었을까. 만년설의 정적 속에 고여있는 이곳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환경을 바꾸는 것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지 몰랐다. 고생스러운 열흘 간의 트레킹 중에도 늘 웃는 얼굴이던 현욱이 이곳에 와서는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았다.

“이런 데서 오래 살다 보면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나봐.”

은서는 왠지 붓다를 변호해주고 싶었다.

갓 스무 살이 넘은 그는 한국으로 돈을 벌러갔다는 형 대신 호텔의 일을 보고 있었다. 지금처럼 손님이 거의 들지 않는 비수기를 혈기 왕성한 젊은 청년이 견디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지구 구석구석의 온갖 인종들이 그의 호텔을 스쳐가지만 정작 그는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웃는 법이 없었으며 무엇을 물어봐도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한다는 듯 단문으로 뚝뚝 끊어서 대답했다.

이제 창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은서와 현욱이 촛불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창에 비쳤다. 두 사람의 이마에 짙은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다.

 

다음날 새벽, 둘은 다시 배낭을 꾸려 비행장으로 향했다. 난방이 되지 않은 방에서 떨면서 잔 터라 몸이 습기를 잔뜩 머금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러나 새벽 공기는 상쾌했고, 무엇보다 바람이 없었다. 계곡 건너 닐기리봉이 희부윰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골 간이역 같은 공항은 벌써부터 붐볐다. 직원들은 사흘째 똑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여권을 확인하고 새로운 보딩패스를 발부하고, 크게 달라졌을 리 만무한 배낭의 무게를 다시 달아 어제 붙였던 태그를 떼어내고 새 것을 붙였다. 역시 내용이 뻔한 배낭을 일일이 풀어서 검사한 후 한 쪽으로 치워놓으면 인부들은 묵묵히 그것을 비행장으로 내다 놓았다. 그들은 행여 비행기가 오지 않을까봐 가슴 졸이는 여행자들의 심중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은서가 검색대를 통과해 대기실로 들어서자 구석진 자리에 서 있던 현욱이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대기실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대부분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누군가의 조종으로 인원점검을 당하는 듯 모였다간 흩어지고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날짜가 지날수록 새로운 승객도 조금씩 불어나고 있었다. 은서는 현욱에게 다가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사람이 점점 늘어나잖아. 그렇다고 비행기 편수를 늘리는 것도 아닐텐데…….”

현욱은 대답 대신 보딩패스를 양손에 꼭 쥐고 합장을 하듯 이마로 가져갔다. 입을 열면 행여 부정이라도 탈까 말도 못하고 간절히 기원하는 표정이었다. 은서는 피식 웃어 버렸다. 비행기가 결항하면 그 순간 한낱 종잇장일 뿐인데, 싶었다.

은서는 벽에 기대서서 물끄러미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세계 각처에서 참으로 다양한 모양새와 색깔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날 한시에 한 운명으로 발이 묶여 있다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극적으로 운명을 함께 하는 것 같다가도 결국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고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까맣게 잊을 것이다. 그저 그렇게 스쳐 가는 바람 같은 것이리라. 어쩌면 은서와 현욱도 그럴 것이다.

막 대기실로 들어서던 호주인 부부가 은서네를 알아보고 웃었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나무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들은 이십 여명의 교사들로 이루어진 단체의 일원이었다. 트레킹 둘째 날 묵었던 숙소에서 마주친 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거의 일정을 같이 하게 되는 바람에 만나기만 하면 서로 손을 흔들며 웃곤 했던 사람들이었는데, 결국 비행장에서도 만난 것이다. 그러나 정식으로 인사를 한 것은 이틀 전 이곳 대기실에서가 처음이었다. 그들은 코알라 사진이 있는 엽서와 버튼을 기념으로 건네주며 자기들을 교사 부부라고 소개했다.

그들은 호주가 여행하기에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그리고 이곳에서 내려가면 제일 먼저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을 거라고 말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지만 월드컵 축구 개최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답례할 것이 아무 것도 없던 차에 현욱은 대뜸 한국에 한번 놀러 오라고 말했다. 인사치레일 뿐이었는데, 혈색 좋은 호주 남자는 자신들의 주소를 적어 주며 현욱에게도 주소를 적어 달라고 했다. 그들은 은서네를 자기들처럼 부부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현욱은 남자가 건네는 수첩을 얼른 은서에게 떠넘겼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에게 과거는 중요치 않았다. 현재의 모습만이 전부일 뿐이었다. 현욱이 그토록 간절히 여행을 떠나고 싶어했던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갈 날이 점점 가까워올수록 현욱은 자기 스스로도 자신을 납득하지 못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날이 많았다. 주소를 적어주는 따위 대수롭지도 않은 일에 그토록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현욱을 보며, 은서는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창 밖으로 텅 빈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과연 저곳에 비행기가 내려앉을 것인가.

이곳에 도착한 첫날 아침, 은서는 비행기의 굉음 때문에 잠을 깼다. 그동안 험악한 산악지대를 오르내리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며 운반수단인 야크나 노새들의 워낭소리에 잠을 깼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은서는 벌떡 일어나 커튼을 제쳤다. 경비행기 한 대가 호텔 지붕을 들이받을 듯 낮게 날아왔다. 유리창 너머로 저만큼 거리에 비행장이 내려다 보였다. 비행기는 너무 작아서 장난감 같았다. 승객들이 내리고 배낭까지 모두 내리고 나자 다시 비행기는 하산하는 승객들을 태우고 사뿐히 떠올라 계곡 아래로 날아갔다. 그렇게 서너 대의 비행기가 착륙하기 바쁘게 다시 이륙했다. 이착륙장도 없이 흙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날아오르는 비행기는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잉글리시 페이션트에 나오는 장면 같아.”

한참동안 창 밖을 바라보던 은서가 홀린 듯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듣고 현욱이 물었다.

“그게 뭔데?”

“영화.”

“무슨 영화?”

은서는, 그냥 그런 영화 있어, 하며 얼버무렸다.

“재미있겠지? 우리도 이틀 후에는 저 비행기를 타는 거야.”

현욱은 은서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기대에 부푼 목소리로 말했지만 은서는 영화의 비극적인 결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무엇엔가 씐 듯 열열하게 구애하는 남편의 친구, 그를 피하고 잊으려고 애쓰지만 금단의 유혹은 질기고 결국 제도 속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랑은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운명적인 사랑은 언제나 그렇게 뒤늦게 찾아오는 것인지, 아니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장벽이 사랑을 운명적으로 채색하는 것인지, 누구라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운명이니 뭐니 하는 건 처음부터 없는 건지 모른다. 제 아무리 운명적인 것 같던 사랑도 일상의 늪에 빠지면 사위어가는 태양처럼 열정도 빛도 사그라들게 마련 아니던가. 운명적인 사랑의 완성은 비극적 결말밖에 없는 것이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애인을 기다리며 촛불이 타들어 가듯 서서히 죽어가던 여인처럼 말이다.

대기실에 아연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잡담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서 비행기가 날아올 허공의 어느 지점에 눈길을 박고 있었다. 출발 예정 시각인 일곱 시 가 훌쩍 지나 여덟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현욱은 초조한 듯 창가에 붙어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러나 담배 연기를 내뿜기도 전에 검색대 여직원이 다가와서 담배를 꺼달라고 했다. 라이터는 검색할 때 모두 압수하던데……. 은서는 현욱을 향해 라이터 켜는 시늉을 하며 눈을 크게 떠 보였다. 그러나 현욱은 은서를 미처 보지 못하고 다시 창 쪽으로 몸을 돌렸다. 돌연 현욱의 뒷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다. 온갖 이국의 언어들이 암 부호처럼 떠도는 공간에서 유일하게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던 한 사람, 그의 뒷모습이 저랬던가. 은서는 현욱의 뒷모습에서 무언가를 읽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올 플라이트 캔슬드!”

얼마나 지났을까. 긴장이 서서히 풀려 웅성거리는 소리가 파문처럼 퍼져 가는 대기실에 찬물을 끼얹듯, 어디선가 딱딱한 영어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네팔남자는 승객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다시 한번 외쳤다.

“올 플라이트 캔슬드!”

사무적으로 외치는 남자의 표정에서 미안해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표정은 산악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인 듯했다. 마치 오랜 세월 바람에 깎이고 쓸려 모난 곳 없이 밋밋한 바위덩이처럼.

어제만 해도 항공사별로 차례차례 취소 결정이 났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상황이 더 나쁜지 모든 항공사의 비행이 한꺼번에 취소되었다고 했다. 설마 오늘은, 하는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탄식을 내뱉었다. 인부들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은 알 바 아니라는 듯 얼른 달려나가 배낭들을 하나씩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은서는 현욱을 바라보았다. 현욱은 초조한 표정으로 불도 붙이지 않은 빈 담배만 짓씹고 있었다.

사흘 째 비행기가 결항하자 일정에 차질이 생긴 사람들과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로 공항 밖이 소란했다. 사람들은 항공사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이곳을 벗어날 방도를 알아보느라 분주했다. 현욱도 그들 틈에 끼어 있었다. 은서는 돌담에 기대섰다.

얼마 후 현욱이 상기된 표정으로 은서에게 다가왔다.

“헬리콥터가 있다는데?”

“헬리콥터?”

“응, 그런데 비용을 엄청나게 불러. 도둑놈들! 기회는 이때다, 이거지. 어떻게, 그거라도 탈래?”

현욱의 표정은 이미 은서에게 묻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네팔 남자 한 명이 현욱에게 다가와 헬리콥터를 탈거냐고 물었다. 서양인 몇이 따라와 비용을 물어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은서네가 뚱보와 홀쭉이라고 부르던 영국인 남자 둘도 다가와서 비용을 묻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은서에게 말했다.

“비행기가 못 날아가는데, 헬리콥터를 탄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올라올 때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묵티나트까지는 당나귀를 타고 올라갔다. 멀쩡한 다리에 육중한 몸을 한 그들이 갸날픈 당나귀를 타고 가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거기에다 한 술 더 떠서 롯지 비용이 너무 싸서 물어볼 필요도 없다며 거들먹거리는 데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은서는 그들 곁에 선 채로 한국말로 비아냥댔다.

“어디 돈 자랑할 데가 없어서 이 가난한 나라에 와서 거들먹거리는 거야?”

그러자 현욱이 빙그레 웃으며 은서의 어깨를 툭툭 쳤다.

“흥분하지 마. 대신 이 사람들은 소중한 걸 놓쳤어. 매일 조금씩 산을 오르면서 안나푸르나가 어떻게 그 품을 열어주었는지, 우리는 그걸 봤잖아. 그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한 기억이야.”

그랬었다. 그때만 해도 현욱의 얼굴은 만년설을 이고 있는 히말라야처럼 초연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은서도 떠나기 전의 숱한 망설임 같은 건 눈 녹듯 사라지고 서서히 산과 하나가 되는 듯한 일체감을 느꼈다. 백마들이 떼를 지어 달리는 듯한 히말라야 연봉들을 처음 보았을 때, 은서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마치 조물주의 현현을 보는 듯 했다. 거인처럼 커다랗고 부드럽고 인자한 표정이었다. 땟국물이 흐르는 네팔인들의 초라한 행색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심성이 의연한 것은 눈만 뜨면 바라보게 되는 히말라야의 설봉들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눈을 뜨면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걷다보면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고 모래산을 오르는 듯 다리가 무거워도 가슴속에는 늘 잔잔한 감동이 물결처럼 찰랑거렸다.

현욱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아침 햇살을 받아 은빛 잔설을 안개처럼 피워 올리는 닐기리 봉을 바라보며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헬리콥터 타자, 우리.”

은서가 말했다. 그러나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현욱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담뱃불이 손끝을 태울 즈음에야 꽁초를 던져버린 현욱은, 가자, 하며 배낭을 매더니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은서는 어디로 가자는 것인지 몰라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뒤돌아보던 현욱이 그대로 서 있는 은서를 향해 화가 난 듯 소리쳤다.

“가자니까.”

그새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하는 거리에는 은서와 현욱 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비행기는 둘의 자리를 빈자리로 남겨 놓은 채 서울을 향해 날아갈 것이다.

 

둘은 가벼운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온 사람들처럼 그동안 묵었던 방에 배낭을 던져두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혼자 카드놀이를 하던 붓다가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티베탄 브레드, 핫밀크 티”

현욱이 아침 식사를 주문하자 붓다는 그제서야 느릿느릿 카드를 챙기며 일어섰다. 올 사람이 왔을 뿐이라는 듯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는 오늘도 비행기가 결항했다는 것을 호텔 로비에서 보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호텔로 가지 그랬어?”

은서가 물었다.

“저 무뚝뚝한 녀석한테 정이 들었나봐.“

현욱이 그제야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아, 오늘은 또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현욱이 길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때 어디에선가 갑자기 양떼무리가 나타났다.족히 백여 마리는 넘을 듯한 양떼를 몰고 가는 남자들은 셋이었는데, 한가로운 목초지의 양치기라기보다는 투우사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양떼들 중 두어 마리가 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다. 그들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양치기에게서는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럴수록 양들도 악이 받치는지 네 다리를 좍 벌리며 어깃장을 놓고 있었다. 한 남자가 뒤에서 달려들어 양의 뒷다리를 번쩍 치켜들자 두 사람이 양옆에서 채찍으로 마구 때렸다. 양은 앞으로 고꾸라질 듯 위태로운 자세로 비명을 질러대며 끌려갔다.

“야, 이거 재미있는데? 나가보자.”

창문에 얼굴을 대고 있던 현욱이 갑자기 은서의 팔을 잡아 당겼다. 가까이서 본 양떼들은 몸집도 크고 거칠었다. 현욱은 이리저리 날뛰는 양떼들을 마구 쫓아다녔다. 은서는 호텔 앞에 쪼그려 앉아 그런 현욱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현욱은 양떼들과 씨름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기 앞에 놓인 현실과 또 다른 현실이 되어버린 자기 안의 정체 불명의 욕망들과.

양떼들은 좁다란 골목으로 몰려 들어갔다. 마치 커다란 병 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양떼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현욱이 바지를 툭툭 털어 내며 골목에서 걸어 나왔다. 대단히 큰일을 치른 사람처럼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양들이 전혀 양순하지 않다더니, 그게 사실이야. 아마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을 동물 같아.”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뜻하지 않은 한바탕 소동은 흥미로운 구경거리이자 죽은 듯 고즈넉한 이곳에 생동감마저 불어넣었다. 텅 비어버린 거리에서 눈길을 거두는 현욱의 얼굴에는 흥미진진한 무술 영화가 갑자기 끝나버렸을 때처럼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이런 데서 한 평생 양치기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현욱은 무슨 일인가 일어나 주기를 바라는 듯 창 밖만 바라보고 있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수염도 안 깎고 덥수룩한 게 겉모습은 벌써 양치기 같아.”

은서는 책을 펼쳤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자전적 에세이, “어느 시인의 죽음”. 마야코프스키를 처음 보는 순간 한 눈에 반한 파스테르나크. 그것은 흡사 남녀간의 사랑처럼 떨림과 몰입을 동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돌연한 마야코프스키의 권총 자살, 그것은 당시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했지만 특히 파스테르나크에게는 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막 대학생이 되었던 즈음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이라며 현욱이 은서에게 건네준 것이었다. 은서는 여행기간 동안 매일 저녁 조금씩 그 책을 읽다가 마침내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의 맨 뒷장에 있는 출판사 광고 페이지에서 은서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마야코프스키가 릴리 브릭이라는 유부녀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 관계가 나중에는 그녀의 남편인 오십 브릭과 기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며 지속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인의 죽음” 은 그것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이 마야코프스키의 권총 자살로 끝이 났다.

“마야코프스키가 왜 권총 자살을 한 거지?”

은서가 책을 덮으며 물었다.

“응?”

무스탕 깊숙이 들어가 있었는지 고개를 드는 현욱은 미처 은서의 말을 듣지 못한 표정이었다.

“마야코프스키가 왜 자살한 거냐구.”

“모르겠는걸.”

“릴리 브릭이라는 여자랑 관계가 있는 거야?”

“릴리 브릭? 그게 누군데?”

“마야코프스키가 사랑한 여자.”

“그런 여자가 있었어?”

“이 책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아. 그런데 이 책 뒤에 마야코프스키 전기 광고가 있는데,”나는 죽음을 선택했다“라는 책이야. 여기에 릴리 브릭이라는 여자와 그 남편 오십 브릭이 마야코프스키랑 기묘한 삼각관계였다고 써있어. ……파스테르나크 책에 보면, 마야코프스키가 자살한 뒤에, 누군가 릴리아에게는 전보를 쳤냐고 묻는 장면이 나오거든. ……그 릴리아가 릴리 브릭을 말하는 거 아닐까?”

“글쎄, 나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책이 감동적이었다는 것밖에는 지금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어.”

“어떤 점이 감동이었다는 거야?”

“글쎄, 지금은 그것조차도 애매해. 그게 뭐였지?”

말꼬리를 흐리는 현욱을 보며 은서는 그가 공연한 연상으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은서는 에세이의 마지막 부분을 펼쳐 들고 나지막이 읽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이미 과거 속에 묻혀버린 그의 삶이 바깥에서 거닐고 있는 듯한 환상을 창문을 통해서 본 듯한 착각을 느꼈다. 나는 파바르스카야의 가로수가 늘어선 길거리처럼 잔잔히 그의 삶이 창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삶은 바로 이 길 위에 뿌리를 내리고 저 벽안에서 완성되었으며, 그는 죽어서 벽을 넘어 영원으로 뻗어나갔다. …… 그의 핏줄 속에는 영원으로 뻗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 그는 일찍이 별로 힘들이지 않고 미래를 터득해서, 그의 삶은 어려서부터 미래에 좀 먹혔던 것이다.

 

무스탕 박물관은 마을 입구 언덕 위에 있었다. 분명히 그 곁을 지나 좀솜으로 들어섰으면서도 박물관이 있는 것은 몰랐었다. 책을 읽다가 지치면 멍하니 창 밖을 내려다보고 다시 책을 읽고, 그것도 지겨워지면 그동안 지나왔던 곳의 이름을 되뇌어보며 무료한 오후를 채워나가고 있을 때였다. 그 모습이 딱해 보였을까. 주문 받은 밀크 티를 가져다 주며 붓다가 지나가는 말투로 박물관은 가봤느냐고 물었다.

“박물관이 있다고?”

현욱은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그제서야 은서는 가이드북에서 박물관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났다. 은서는 가이드북을 펼쳤다.

“여기 있네. 그런데 왜 무스탕 박물관이지? 여기가 무스탕인가?”

“아마 그럴걸. 행정 구역상으로는 네팔이지만 여기 좀솜을 지나서부터 티벳 고원지대를 통칭해서 그렇게 부를 거야.”

“아-.”

은서는 현욱의 거침없는 설명에 저도 모르게 깊은 탄식을 토했다. 어느새 무스탕에 대해 저렇게 많이 알게 되었구나 싶은 감탄과 알지 못할 두려움이 뒤섞인 탄식이었다.

돌계단을 올라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사무실에 있던 여자가 반가운 표정으로 둘을 맞아 주었다. 그녀는 표를 팔고 나서 전시관마다 돌아다니며 불을 켜주었다. 아마 두 사람은 그 날 박물관의 유일한 관람객일 게 분명했다.

전시관은 초라했다. 네팔의 여러 소수민족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사진과 그들의 민속 의상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자연관에는 고산지대에서 나는 약초들의 표본이 진열되어 있었다. 관리가 허술해서인지 의상들은 색이 바래고 꼬질꼬질했으며 수적으로도 보잘 것 없었다. 약초들도 신기한 것들이긴 했으나 마치 초등학생들이 방학 숙제로 만든 식물채집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별 기대도 없었던 터라 둘은 시들먹하게 다음 전시관으로 건너갔다. 네팔과 히말라야의 기후와 인구에 대한 도표, 지리와 지형에 관한 모형과 사진들이 전시된 곳이었다.

“이건 암모나이트네.”

유리관으로 덮인 진열대를 들여다보며 은서가 중얼거렸다.

“여기가 바다 속이었다는 증거야.”

아크릴로 만든 안내판 앞에 서 있던 현욱이 말했다.

“히말라야는 인도대륙이 히말라야 티베트대륙을 밀고 들어와서 생긴 건데, 그게 사천만 년 전이래. 지금도 일 년에 오 센티미터씩 밀어 올리고 있다는군.”

“정말 놀랍지 않아? 한 때 바다였던 곳이 지금은 세상의 지붕이 되어 있으니…….”

은서는 사흘 전, 한나절 내내 걸어도 끝없이 펼쳐지던 강바닥을 떠올렸다. 건기라서 말라붙은 넓은 강바닥에는 시냇물같이 야트막한 강물이 실핏줄처럼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강의 폭이나 길이는 목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강바닥을 따라 걷다보면 자갈돌 때문에 발바닥이 아파 왔다. 우기가 되면 사람 키의 서너 배는 족히 넘는 강물이 넘실거리며 흘렀을 곳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런데 사천만 년 전에는 그곳이 바다 속이었다니. 아, 자연의 유장함 앞에 인간은 얼마나 작은지…….

“은서야. 이리 와봐.”

현욱이 소리쳤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들어서자 습한 기운과 향내가 훅 끼쳐왔다. 그곳은 전시관이라기 보다는 법당 같았다. 중앙에는 천정에 닿을 듯 커다란 부처상이 모셔져있고 양쪽 벽면에는 주먹 크기 만한 부처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즐비했다. 단 아래에는 향과 초가 타오르고 있었다. 방금 누군가 다녀간 듯한 분위기였다.

“은서, 어서 절해.”

현욱이 은서의 팔을 잡아끌었다.

“나 불교 신자 아니야.”

“묵티나트에서는 절했잖아.”

“거긴……, 몰라. 그냥 하고 싶었어.”

“여기서도 그냥 해봐.”

“갑자기 왜?”

“그냥, 뭔가를 간절히 구하는 거, 그것 자체가 좋은 거잖아.”

“그게 뭔데?”

“그냥. 그냥이란 거, 좋잖아. 그냥, 이유 없음.”

현욱은 열없게 웃으며 전시관을 빠져나갔다.

묵티나트.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세상의 구석진 곳에 사원이 하나 있었다. 대단한 성지라고 들었던 것에 비하면 실망스러울만치 볼품이 없었다. 사원 마당에 조촐하게 기념품을 늘어놓고 있던 여인이 열쇠 꾸러미를 뒤져 문을 열어주더니 복전을 요구했다. 돈을 조금 내자 여인은 몹시 경건하고 조심스런 동작으로 제단 아래 있던 가리개를 치워 주었다. 들여다보니 파란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것이 영원히 타오르는 불이로구나. 아주아주 오랜 옛날, 이곳 사람들은 땅 속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을 브라흐만의 현현이라 여긴 사람들은 사원을 짓고 숭배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오직 이것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오체투지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게 되었고, 그래서 성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것은 지표면의 갈라진 틈에서 올라오는 가스가 연소되면서 생긴 불꽃일 뿐이라고 했다.

게다가 지금은 연소기구까지 설치되어 있어 얼른 보기에는 가스버너를 켜놓은 것 같았다. 은서는 자기도 모르게 삼배를 올렸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무엇이든, 혹은 브라흐만의 현현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은서가 삼배를 올린 것은 오랜 세월 마음속에 간직한 자신의 믿음을 의심치 않는 사람들에 대한 경배였다.

그런데 지금 현욱은 무엇을 구하고 싶은 것일까. 은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현욱의 믿음을 위해 삼배를 올렸다.

 

박물관을 나와 마을 초입으로 들어서는데 이미 문을 닫은 항공사 사무실 앞에 붓다가 앉아 있었다. 거리에는 모래 바람만 시위라도 하듯 몰려다닐 뿐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비록 손바닥만한 마을이었지만,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니 마치 이곳 주민이나 된 듯 신기한 기분이었다. 은서는 반가운 마음에 큰소리로 붓다를 불렀다.

“붓다, 여기서 뭐해?”

“저스트 씻팅.”

역시 무표정.

그냥 앉아 있다구? 은서는 돌연한 막막함에 숨이 턱 막혔다. 척박하고 고립된 환경과 바람에 메말라 가는 것이 어찌 산과 강, 벌판뿐이겠는지. 붓다 역시 그 자연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어디 주점이라도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야.”

현욱도 막막한 표정이 되어 휑하니 비어 있는 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술이라면 호텔 식당에서도 마실 수 있잖아.”

“그런 거 말고,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는 그런 술집 말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현욱의 표정은 아주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둘은 호텔 앞 양지녘에 붓다처럼 쪼그려 앉았다. 바람이 불더라도 호텔 안보다는 바깥이 더 따스할 터였다.

현욱은 담배를 피워 물고 병풍처럼 펼쳐진 안나푸르나의 설봉들을 쳐다보았다.

“며칠 전에, 어떤 마을을 지날 때였는데 한 소녀를 봤어. 열 살이 조금 넘었을까, 특별할 건 하나도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소녀 얼굴이 가끔 떠올라. 그 여자 애는 자기 집 문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서서는 자기 앞을 스쳐 지나가는 트레커들을 보고 있었어. 나도 처음에는 다른 서양인들처럼 무심코 지나쳤는데, 몇 걸음 가다가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추고 뒤돌아보았지. 어째 기운도 없어 보이고 눈에 초점도 없어 보이더라. 그리고 나서는 걸으면서 내내 그 소녀 얼굴이 떠오르는 거야. 이를테면 그런 거지. 그 소녀는 눈만 뜨면 자기 앞을 스쳐 지나가는,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은 노랑머리, 까만 머리,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 그리고 여자 남자들을 볼 거 아니겠어. 하지만 그 소녀는 아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곳에서 자라고 옆 마을 청년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그러다가 늙어서 죽게 될 거야. 이미 자기의 부모도 그렇게 살았고 할머니의 할머니들 모두 그렇게 살아왔듯이 말이지. 그렇게 폐쇄되어 있는 그 소녀의 삶 속에 자기가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우주 속에 살던 사람들이 매일, 일상적으로 눈앞을 스쳐 간단 말이지……. 뭐라고 설명이 잘 되진 않지만, 그 소녀의 삶이 갑자기 충격적으로 다가왔어. 인터넷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내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우리네 삶과 그 소녀의 삶. 동시대에 그토록 엄청난 갭이 존재한다는 것이 새삼 충격을 주었을까?”

조용히 듣고 있던 은서가 역시 맞은편의 만년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안나푸르나를 오르면서 내내 시간에 대해 생각했어. 그리고 미친 듯이 불어대는 바람. 마치 갈 곳을 잃은 혼령들이 봉인되어 있는 것 같은, 그리고 문명을 거부하는 듯한 이곳. 자동차는 오를 수도 없고 당나귀나 노새, 아니면 오직 사람의 두 다리만이 유일한 이동 수단이고 태양열이 유일한 전원인 이곳. 여기에 와서 시간 개념에 자꾸만 혼돈이 생기는 거야. 왜 이런 말 있잖아. 남극같이 오직 드넓은 설원만 펼쳐진 곳에서는 거리 개념이 혼란해진다고. 그런 거처럼 여기에서는 과거도 미래도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없이 혼재해 있는 느낌이 들어. 마치 블랙홀같이……. 그래서 그럴까? 한국에 두고 떠나온 모든 복잡한 일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지고……, 현실감이 자꾸만 없어지는 거 같아. 그냥 이대로 여기에 갇혀버려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영원히……. ”

오후에, 은서와 현욱은 침낭 속에 들어가 낮잠을 잤다. 은서는 꿈에서 현욱을 보았다. 그는 등을 돌린 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둘은 마치 부부처럼 한 공간에 있었지만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다. 딱딱한 갑각류의 등껍질처럼 완강한 그의 등을 보며 은서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눈을 뜨니 현욱이 은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꾼 꿈속의 일이 현실의 일인양 갑갑증과 불쾌감이 온 몸을 훑어 내렸다. 현욱의 얼굴을 보며 은서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현욱의 표정에는 수심이 어려 있었다.

“벌써 깬 거야?”

그 말을 하는데 입을 달싹거리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었다.

“아픈 거야? 신음 소리에 깼어.”

“그랬어?”

“열이 많아. 아무래도 몸살이 났나봐.”

“기운이 없긴 해. 꼼짝도 못하겠어.”

“약 먹자. 여기서 아프면 안 돼.”

현욱은 풀지도 않고 팽개쳐 둔 배낭을 끄르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 책을 읽고 있었는지 머리맡에 “무스탕”이 펼쳐져 있었다. 은서는 그 책을 집어들었다.

 

투크차로부터 우리는 좀솜이라는 작은 마을을 향해 나아갔다. 그 이름은 티벳어로 ‘종 사르파’라는 말을 네팔식으로 부른 것인데, ‘새로 지은 요새’라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가 만난 요새의 존재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인데, 우리가 반목하는 공국(公國)들의 땅에 섰음을 말해준다. 이 마을에는 모두 티벳어를 말하고 종교적으로는 불교를 믿는 주민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적은 수의 구룽족을 제외하면 이제부터는 티벳 종족만을 만나게 될 터였다.

칼리칸다기강 상류지역의 이 마을의 관습과 주민들에 대해서는 거의 또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다.

정오쯤 우리는 좀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왔다. 체크포인트가 있는데, 네팔인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주임무는 여행자나 외국인이 좀솜 너머 북쪽으로 더 가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이었다. 좀솜을 넘어선다는 것은 티벳에 유사한 전략지역으로 들어선다는 것, 따라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으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체크포인트에 들어섰다.

 

은서는 현욱이 건네주는 약을 먹고 다시 눈을 감았다.

“푹 자.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야.”

현욱은 자기 침대로 가서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거기 있을 거지?”

“그럼. 아무 걱정말고 자. 책 읽어줄까? 동시 번역인데, 어때?”

그리고 나서 현욱이 더 무슨 말인가를 했는지 아니면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는지, 은서는 이내 정신이 혼미해져서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꿈은 다시 이어졌다. 누군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세워놓은 은서의 자동차 바퀴를 예리한 칼로 찢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치 몰래카메라를 보듯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보였다. 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세상 밖으로 한 번 걸어나간 자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소리치며 마구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은서의 온 몸이 찢어지는 듯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현욱을 부르려고 했지만 입에 재갈을 물린 것 같이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은서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지켜보는 은서가 따로 또 있었다. 나는 지금 세상 끝에 와 있건만 속세의 연은 끊어지지 않는구나. 아무리 몸이 멀리 떠나 있어도 마음 속 족쇄는 오히려 더욱 질겨지는 것 같으니…….

눈을 떴을 때, 방안은 어둑어둑했다. 저녁 무렵인지 새벽녘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현욱의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어디로 간 거지? 현욱이 보이지 않자 방안의 냉기가 서릿발처럼 은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갑자기 오한이 나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몸을 일으켜 보려 했지만 생각뿐 나사 풀린 인형처럼 사지를 꼼짝할 수 없었다. 은서는 자꾸만 흐려지는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쩌면 잠깐 낮잠을 잔 게 아니라 며칠 동안 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어디지? 고도 4천 미터의 히말라야 계곡.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세상의 막다른 곳.

어쩌면 현욱은 막다른 이곳을 훨씬 지나 더 깊은 곳, 세상의 끝으로 들어가 버린 건 아닐까.

“이 책을 쓴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약 사십 년 전에 이곳엘 왔어. 지금도 이런데 그때는 어땠겠어? 그런데 영국인인 그가 왜 티벳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급기야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게 재미있어. 어느 날 거리에서 그는 우연히 중고 서점을 보았고 무심코 그리로 들어갔다는 거야. 특별히 뭘 사려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발길이 그리로 향하더래. 사방 벽은 중고책들로 빼곡했겠지. 아마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고대로 들어간 기분이었을 거야.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던 그에게 책방 주인이 다가와서 무얼 찾느냐고 물었겠지. 그때 그는 자기도 모르게 티벳어 책이 있냐고 말했어. 말해 놓고 나서도 왜 자기가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가 없더래. 그때까지 그는 티벳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거든. 아마 없는 책이 없다는 듯 거만한 책방 주인을 놀려 주려고 그랬던 것 같다고 말하지. 그런데 책방 주인은 곧 티벳어 책을 찾아 주더라는 거야.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그 책을 사오게 되었고, 그 날 바로 그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가. 그리고 무스탕이라는 곳에 대해 알게 된 거야. 그곳에 대해 알고 난 후로 그는 그곳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는군. 그리고 몇 년 후, 정말 그는 무스탕으로 가게 돼. 그는 포터를 구하고 식량을 챙겨서 길을 떠나. 바로 우리가 걸어왔던 그 길로 말이야.”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 할 일이 없었던 사흘 동안 현욱은 열에 들뜬 사람처럼 무스탕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그 책의 저자처럼.

“하하, 이 사람 정말 재미있어. 무스탕에 가면서 포터들이 도망가고 동물들이 죽고 온갖 고난을 겪게 되니까, 이 사람 뭐라고 한탄하는지 알아? 왜 그때 내가 그 고서점에서 티벳어 책을 달라고 했던가. 그리고 그 책방에는 왜 그 책이 있었고 주인은 왜 그걸 찾아주었는지, 그 책방이 밉더라는 거야.”

현욱의 말을 들으며 은서는 자신도 모르게 현욱의 말을 자기 식대로 번역하고 있었다.

“은서, 너를 왜 이제야 만나게 되었는지, 나는 우리의 운명이 밉다.”

현욱은 아내와 은서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을 그렇게 오지로 오지로 내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도망이라도 치듯 이 깊은 산 속까지 오게 되었지만, 그러나 멀어질수록 두고 온 것은 더욱 애달파지는 것이 아닐는지.

어둠은 점점 깊어가고 적막한 가운데 바람 소리만 거세었다. 바람소리에 한번 마음을 빼앗기자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몇 천년, 몇 만년, 아니 억겁의 세월동안 불어댔을 바람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서서히 고사시킬 것이다. 처음에는 물기를 서서히 말려버리고 그 다음에는 살을 훑어 내릴 것이다. 호텔 맞은편에 보이던 황토산도 마치 살을 발린 해골처럼 앙상한 골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납게 소용돌이치는 바람을 보노라면 마치 억겁의 세월을 뚫지 못하는 한이 이곳에 봉인되어 있는 듯했다.

사지를 결박당한 것처럼 의식이 말짱한 채로 바람에 서서히 말라 가는 자신의 육체를 은서는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은 깊어가고 의식은 점점 또렷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