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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山으로 가는 길을 묻다
고우란
무심코 지나온 골목길. 전선에 낡은 여자 아이 모자 하나 매달려 바람에 떨고 있었다 어느덧, 나도 그렇게 떨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길로 나서는 동안 내 신발은 이미 작아졌고, 내 몸도 이제 지쳐 고산으로 가야 하는데,
너무 먼 곳이라, 나는 한껏 등을 구부리고 자벌레처럼 내 몸의 길을 내고자 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신발값이 너무 비싸다고 했다, 몸을 신는 경우는 없는 것이라고.
맨발로 걷는 기억은 늘 새로워요. 낯이 익어도, 라고 말해 놓고도 모자라 몸을 길게 뻗어 납작 엎드린 채로 고산으로 향하는 마음만 태우고 있었다.
왜 고산으로 가야 하는지는 몰라도 고산으로 가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고산 쪽으로 가는 버스는 있었지만, 고산으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택시는 오지 않고, 나는 눈 내리는 길에 홀로 있었다. 발 동동 구르다 저 혼자 굴러다니다가 낡아 버린 여자 아이의 모자처럼 길을 잃고, 허공중에 매달려, 내 마음에서 흘러나왔을 헛바람 소리에 치를 떨다가,
기어이 나, 맨발로 돌아갈 거라. 다짐을 했지만, 지나는 사람에게, 눈이 오지 않는 고산까지 나를 데려다 주실 수 없는 거냐고, 겨울비에 젖어 뿌리까지 얼어버린 나무처럼 자꾸 묻고 있었는데,
高山은 아직 내게 너무 먼 곳이었다. 지상이 다 얼어도 춥지 않을 고산은,
분홍 벌레
고우란
여자가 거울을 보며 웃는다, 분홍을 먹은 벌레들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나 봐.
거울을 볼 때마다 찾아오는 남자의 발걸음 소리는 썩을 줄 몰라. 하긴, 여자의 다 헐은 분홍 속살을 갉아 먹는 벌레들이었으니까, 아니, 여자 속의 분홍 벌레를 삼키는 꽃들이었으니까.
거울을 빠져나온 여자가 축축하게 냄새나는 발을 천천히 앞으로 내디디며, 두 손을 흔든다. 구더기 떼처럼 꽃잎들이 쏟아진다.
꽃 속에서 분홍을 먹은 벌레들이 기어 나와 여자의 발자국을 모조리 갉아먹고 있어. 여자는 꽃가루가 날릴 때마다 거울을 꺼내들고 남자를 불러낼 테지. 거기, 거울 속으로 들어가.
벌레들이 갉아먹어 움푹 파인 거울 속에 여자를 가둬 놓고, 꽃들은 분홍을 팔러나가 어둡도록 돌아오지 않아요.
거울 속의 여자가 나를 보며 웃는다.
약력: 본명 고춘옥 2007년 《리토피아》 신인상. 시집 『호랑이 발톱에 관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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