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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의 술잔
배창환
비 그치고
아이와 텃밭을 파 넘기다가
쨍 울리는 소리 듣고 조심조심 들어냈지요
하얀, 깨진 사기 한 조각
아이는 신이 나서 김수로왕의 술잔이라 이름 붙였지요
신라군이 가야 땅 밀고 들어올 때
김수로왕이 술 마시다 그 말 듣고 깜짝 놀라
쨍, 하고 떨어뜨려 깨트린 거라나요
바로 조금 전에 삽날하고 부닥친 그 소리지요
나는 아냐, 여긴 그 옛날 별메 땅 성산가야였지
그리고 한참 뒤였어, 김수로왕보다
그렇게 말하지 못했어요
아이는 찬물 길어 반들반들 빛나게 씻어
열두 번도 더 술잔 아귀를 맞춥니다.
나도 밭일 하다가 쉴 짬에는
하얀 밥 그릇에
물 좋은 성주 가천 막걸리를 콸콸 따룹니다.
벌컥벌컥 마시다 그만 툭 깨뜨려
밭 어귀 어디에다 묻어두고 싶습니다
이 아이의 아이, 또 그 아이의 아이들 중 누군가
먼 훗날 이 밭을 뒤집다가 쨍, 소리 나면
또 신이 나서 이렇게 말하겠지요
어, 김수로왕의 술잔이 나왔네, 우와!
세상에 이만큼 신나는 일도 흔히 있나요, 어디
배창환(시인) --------------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처음 올린 날: 2001년 9월 16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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