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정여운

별들의 목소리*

*이 글은 실화소설로 작품 속 지명과 이름은

이니셜과 시적 장치와 익명으로 처리함.

☞ 한 편의 글

  J는 그날 아이들 걱정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부당해고를 당한 날이었다. 시계는 자정을 지나 새벽 세 시로 가고 있었다. 서녘 하늘에서 잠들지 못한 일곱 개의 별을 보았다. 한쪽으로 쏠려 있는 크고 작은 별들. 어디가 아픈 걸까. 그룹홈 아이들의 모습인 듯했다. J가 잠시 아동 그룹홈에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대표는 남의 먹이를 빼앗아 먹으려는 하이에나를 닮았는데 이름조차 하이에나와 비슷했다. 하이에나의 입에서는 개소리가 자주 나왔다. 초롱초롱한 아이들은 샛별을 닮았다. 별들은 하이에나의 으르렁대는 소리에 넌더리를 쳤다. 그곳 아이들의 이름은 없었다. ‘금성’이니 ‘수성’이라는 예쁜 제 이름은 개××로 불리고 있었다. 누가 저 별들에게 제 이름을 불러줄까.

 ‘아이들은 학교에 잘 다니고 있을까 변은 출근했을까. 격일제로 근무하는데 근무할 리가 없겠지? 아이들에게 전화하면 하이에나가 휴대폰을 가로채고 문자도 카톡도 차단하겠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J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2014년 9월, J는 졸지에 부당해고를 당했다. J는 해고당하던 날 밤 카카오스토리에 “그룹홈 복지시설 운영 이대로 좋은가”라는 사회 부조리에 관한 글을 썼다. 오천 자 정도, 카카오스토리 한 면 용량 한도까지 썼다. 글을 올리자마자 그 밤에 누가 그녀의 카카오스토리에 다녀간 것일까. 도둑이 제 발 저리다더니 J를 고소한 그 여자였을까.

  J는 갑작스레 부당해고를 당해서 출근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걱정되어 경기도 학대아동센터에 전화하여 이관조치를 부탁했다. 원장으로 채용된 지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룹홈은 만 19세 미만의 아이들이 집처럼 함께 생활하는 곳이다. J는 원장이긴 했으나 아이들 케어와 상담, 교육, 생활지도까지 해야 했다.

 J는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만둘 수는 없었다. 하이에나는 사회복지사 변과 짜고서 J를 해고시켰다. 정직과 원칙으로 일하는 그녀의 운영방식이 못마땅한 것 같았다. 하이에나는 변에게 그룹홈의 권리금을 받고 넘긴다는 사전 약속이 있었다. 근무경력이 없는 변이 몇 년 근무 후에 시설장 경력이 될 즈음에 인수받기로 했던 것이다. 개소한 지 이 년 남짓한 시설이다. 하이에나는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경력도 없었다.

 ☞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J가 C 그룹홈에서 면접을 보던 날, 사무실에는 하이에나와 두 아이가 있었다. 왜소한 몸의 두 남자아이는 중학생쯤으로 보였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면접을 보다가 하이에나는 갑자기 아이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개××들아, 개××도 그만큼 말하면 알아 처먹겠다.”

 큰별이와 혜성이가 빨리 미장원에 따라나서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었다.

 J는 그 말에 너무 당황하고 어이가 없어서 출근을 고민했다.

 표정 없는 얼굴. 순수해 보이는 아이들의 얼굴이 주눅 들어 보였다.

 “여기는 선생님이 급해서 내일부터 출근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사무실에서 나갔다. J는 면접을 다 보고 그룹홈 전체를 둘러보았다. 아이들 방부터 화장실로 부엌까지 한 바퀴 둘러 본 후에 현관문 쪽으로 나오는데

 “저 선생님도 내일 되면 안 나오는 거 아니야?”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 온 그 말이 마음에 걸려 J는 이튿날 출근을 결심했다.

J가 입사하고 보니 복지가 엉망이었다. 덮고 자는 이불은 넝마 같았고, 냉장고에는 유통기한 지난 생선 두 토막과 참치 외에는 없었다. 하이에나는 아이들에게 아침으로 빵을 주되 우유는 주지 말고, 일주일에 십만 원으로 직원까지 6, 7인분의 장을 보라고 했다. 턱없이 부족했다. 나중에는 5만 원으로 식비도 줄이고 변에게 운영권을 넘기라고 했다.

  변은 대머리수리 같았다. 낮에는 J한테 하이에나를 헐뜯었고 밤 근무 시에는 하이에나에게 살살거렸다. J는 벗어진 머리의 변을 볼 때마다 교활한 대머리수리가 떠올랐다. 업무 인수인계도 없이 사라진 구미호는 독거미 같았다. 하나같이 정글 속 동물들 같았다.

  J가 입사한 이튿날, 대머리수리는 J에게 C 그룹홈의 운영 실태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한 달 사이에 입사한 직원들이 사흘도 안 되어 다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하이에나는 전직 경찰관이던 사람을 시설장으로 채용해 놓고는 5일 만에 권고사직시켰다고 했다.

 “왜 5일 만에 잘랐대요? 시설장 구하기도 힘들었다면서요?”

 “우리 대표님이 이 C 그룹홈에 욕심이 많아요. 손 뗀다 하면서도 못 떼고, 그 전직 경찰은 시설장으로 왔는데 대표님이 운영권도 안 주고, 일일이 간섭하니 운영권을 달라, 일체 이 그룹홈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니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 잘랐던 거죠.”

  “원래 시설장은 원장이니까 운영권을 넘기는 게 맞잖아요? 지금처럼 반찬거리도 안 사주고 돈도 안 맡기고 일주일에 얼마씩 타서 쓰라 하면 이건 시설장이 아닌 거죠?”

 “우리 대표님은 이것을 복지 개념으로 하는 게 아니라 경영의 개념으로 한단 말이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들한테 먹을 거는 제대로 해 먹여야지. 그렇지 않나요?”

 “복지를 그런 개념으로 해야 되는데 대표님은 애 한 명에 이십 만원은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그래 봐야 한 달에 140만 원밖에 더 돼요? 정원이 일곱 명이니까.”

 “다른 건 몰라도 한창 크는 애들인데 먹는 건 잘 먹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회복지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그 생각은 좀 아닌 것 같아요.”

  대머리수리는 하이에나가 저렇게 돈을 벌려고 하니 힘들어도 맞춰줘야 한다고 했다.

텅 빈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더욱 요란하게 J의 머리를 때리는 듯했다.

아이들의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은 된장찌개와 풋고추와 간장, 고추장이 전부였다. 아이들은 된장찌개에 서너 번 숟가락질을 하다가 수저를 놓고 식탁에서 물러났다. J는 집에서 몇 번이나 계란말이, 김, 장조림, 멸치볶음, 어묵 볶음, 김치를 갖다 날랐다.

  사회복지사가 자주 바뀌게 되자 가뜩이나 마음이 닫힌 아이들은 더 단단하게 빗장을 걸었다. J가 아이들과 친해지고 마음을 열기까지 사나흘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가장 많이 걱정했던 고등학교 2학년 수성이가 삼일 만에 속내를 열어 보였다.

 “선생님,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고기를 먹었으면 좋겠어요.”

 금성이의 말을 듣고 J가 하이에나에게 말했다.

 “대표님, 냉장고에 반찬이 너무 없어요. 돼지고기는 싸니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에게 사 주면 좋겠는데요.”

 “제가 일요일 날 고기 사서 그룹홈에 갈게요.”

  의외로 하이에나의 대답이 시원했다. J는 살짝 기대하게 되었다.

  J는 저녁 반찬을 하기 위해 마트에서 두부 한 모와 참치 캔 두 개, 팽이버섯 세 묶음, 계란 한 판을 샀다. 남아 있는 감자로 감자볶음과 감자국을 끓이고, 으깬 두부에 참치와 계란과 김치를 섞어 김치전을 부쳤다. 아이들과 저녁 밥상 앞에 둘러앉았다.

 “선생님, 이 김치전 어떻게 만들었어요? 정말 짱 맛있어요.”

 금성이가 김치전을 먹으며 연거푸 맛있다고 했다.

 “많이 먹어라. 돼지고기는 다음에 해줄게.”

 밤 열 시가 다 되어서 귀가한 수성이도 김치전을 한 입 먹어보더니

 “선생님, 김치전 정말 맛있네요.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많이 먹어도 돼요?”

 “많이 먹어. 저녁도 아직 못 먹은 거야? 배고프겠다.”

 “네, 샘. 알바하고 나면 저녁 먹을 시간도 없어요.”

 “고등학생인데 알바를 한다고? 수성이는 공부해서 대학 가겠다고 했잖아?”

 “전 대학에 가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은데, 용돈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죠.”

 “그래도 공부할 시기에 공부를 해야지. 알바하면 힘들어서 공부가 되니?”

 “당근(당연히) 안 되죠. 학교에서 매일 졸죠. 그래도 어떡해요? 돈이 없으니.”

 “어디서 하는데? 이 시간까지 일을 시키고 저녁도 안 준대?”

 “음식점에서 하는데요. 한창 바쁜 시간에 알바하기 때문에 저녁을 못 먹어요.”

 J는 아이들에게 고기를 사 주고 싶었지만 대머리수리 때문에 살 수가 없었다. 대머리수리는 아이들에게 집에서처럼 해 먹이지 말라며 장 볼 때마다 생활비를 관리했다.

 “우리가 고기 먹을 수 있는 날은 교회에 가는 날 뿐이에요. 평소엔 구경도 못해요.”

 금성이는 매일 편의점에서 밤 열두 시 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수성이는 평일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대학로에서 연극 전단지를 뿌리고 있었다. 한창 꿈을 키울 아이들이 용돈 때문에 허기를 먹으며 밖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푸른 꿈이 연극 전단지처럼 짓밟히고 있었다.

“선생님 저희들 고등학생이라 한 달에 용돈 4만 원은 너무 부족해요. 선생님이 대표님께 말씀하셔서 용돈 좀 올려달라고 해 주시면 안 돼요? 왕복 차비 하고 나면 친구들과 떡볶이도 못 먹고, 영화 한 편도 같이 볼 수가 없어요.”

 금성이와 수성이가 입을 모아 말했다.

 J가 몇 번이나 아이들 용돈 문제를 하이에나에게 말했지만 허사였다. 아이들은 그렇게 소원했지만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J에게 운영권을 맡기지도 않았다.

  하이에나는 주일날 J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로 나오라고 했다. 스무 평 정도의 낡은 건물 2층에 신도라고는 C 그룹홈의 아이들까지 열 명 남짓한 교회. 예배 후에 나온 점심은 밥과 국, 김치와 제육볶음 두세 조각이 전부였다. 아이들은 슬금슬금 목사의 눈치를 보며 밥을 먹고 있었다. 아이들은 다니기 싫은 교회에 나가고 있었다.

  업무일지를 작성하다 보니 원아 명부에는 정원이 7명인데 입소 아동은 5명이었다. J가 두 명은 어디에 있느냐고 하이에나와 대머리수리에게 몇 번이나 물어도 대답을 회피했다. 며칠 후 대머리수리가 작성한 업무일지에 보호소에서 담당자가 C 그룹홈을 다녀갔다는 기록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C 그룹홈이 과거에 지적장애인을 정신병원에 보낸 일로 방송까지 타서 폐지 위기까지 갔고, 이번에 경력이 많고 제대로 된 시설장을 채용하지 않으면 시청에서 폐지시키겠다고 했단다.

 ☞ 선생님, 폭력이 두려워요

  J가 사흘 쉬고 출근했다. 사흘씩 교대로 24시간 근무하는 체제이다. 밤 열 시, 취침시간이었다. J는 사무실 한쪽에 이부자리를 펴기 시작했다. 그때 누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금성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인사를 하는 금성이의 얼굴은 다른 날과는 달랐다. 붉게 충혈된 눈에 촉촉한 이슬이 맺혔다. 이마에 솟은 봉긋한 여드름은 더욱 더 빨갛게 도드라져 보였다.

 “금성아.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늦게 왔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금성이는 멋쩍은 듯 뒤통수에 손을 갖다 대며 긁적였다.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듯한 까만 눈망울이 처연하게 보였다.

 “저녁은 먹었어? 너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금성이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벌게져 있었고 입에서는 술 냄새가 심하게 났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오늘 술을 좀 마셨습니다.”

 혀가 살짝 꼬부라진 말을 하며 금성이는 고개를 숙였다.

 “금성이 잠깐 선생님하고 얘기 좀 할까? 피곤하지 않다면 얘기 좀 나누고 싶은데.”

 “네. 선생님. 근데 선생님 주무셔야 할 시간인데. 저 땜에 못 주무시고 어떡해요?”

 “괜찮아. 너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은데 혹시 밖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J가 말하자 금성이는 봇물이 터진 듯 그의 아픈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C 그룹홈에 대머리수리가 자신들의 인격을 마구 짓밟는다며 C 그룹홈을 폐지 시키겠다고 했다.

 “제가 화장실 변기에 휴지 속심을 넣지도 않았는데 ‘이 새끼, 개새끼’ 하며 맨손으로 더러운 변기를 씻으라고 하고 저더러 변기통 고치라고 했어요. 너무 억울해서요.”

 “억울하지. 그럼 네가 안 했다고 하지 그랬어?”

 “제가 아니라고 하면 다른 아이가 대신 욕을 먹어요. 그래서 가만히 있었는데 그래도 그건 아니죠. 선생이 확인을 잘 하고 야단을 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무조건 이 새끼, 저 새끼, 네가 했지? 이렇게 말씀하시는 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제가 꼭 증거를 모아서 시청에 가서 고발할 거에요. 그러면 저 남자 선생은 쫓겨나시겠죠?”

  금성이의 벌게진 얼굴에 분노가 일었다. 숯덩이다.

 “금성이가 많이 속상했겠구나. 무슨 말인지 알겠어, 선생님도 변 선생님과 대표님이 욕을 심하게 한다고 생각해. 선생님이 변 선생님한테 앞으로 말을 조심하라고 할게.”

 “선생님 혹시 두통약 있어요?”

 금성이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약 상자가 안 보이던데?”

 J가 비상약 상자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일밴드 몇 개만 있고 약은 없었다.

 “금성아, 어제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맞았어? 오늘 담임 선생님한테서 네가 학교폭력 당했다고 전화 왔었는데 그게 정말이야?”

 “네. 선생님. 학교에서 잘못한 것도 없이 습관적으로 폭력을 하는 친구한테 맞았어요.”

 “대표님이랑 변 선생님한테 말은 했어?”

 “네. 어제 학교에서 대표님께 전화해서 대표님이랑 남자 선생님이 알고 계세요.”

 “그래. 그럼 어제 병원에 다녀 왔니?”

 “아뇨. 병원에도 안 가고 학교 마치고 알바하러 갔어요.”

 금성이는 머리가 아프고 자꾸만 울렁거리면서 토할 거 같다고 했다.

 J는 편의점에 가서 두통약을 하나 사서 금성이에게 먹였다.

 사흘 후 아침, 업무 교대할 시간이었다. J가 교대근무 들어 온 대머리수리에게 금성이가 학교에서 맞고 온 것을 알고 있었는지 물었다.

 “선생님, 제가 쉬는 날, 금성이가 학교에서 폭력을 당했다는데 아시고 계셨어요?”

 “네. 맞았다고 해도 지가 멀쩡하게 돌아다니기에 괜찮은 줄 알았죠.”

 “애가 아파서 구토가 나고 머리가 아파서 지금 학교에도 못 가겠다고 누워 있는데, 그리고 그런 일은 그때그때 전달을 해 주셔야지요. 병원에는 데리고 가셨나요?”

 “아뇨. 친구들과 잘 돌아다니기에 병원엔 안 갔습니다. 뭐 별일 없을 겁니다.”

 “금성이 아빠나 보호자한테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표님이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안 했습니다. 대표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하이에나는 J에게 이 일에 대해 빠지라고 했다. 학교에서 조용히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한다면서 가해자 부모를 하이에나가 만나볼 테니 J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대머리수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주방으로 가서 혼자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리 오셔서 같이 아침 좀 먹어요.”

 “선생님 드세요. 저는 집에 가서 먹을 거예요.”

 등교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금성이와 수성이는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너희들 왜 아직 학교에 안 가고 이러고 있어?”

 J가 금성이와 수성이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배가 너무 아파서요. 몸살기가 있는지 머리도 아파요.”

 수성이가 방바닥에 엎드린 채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수성이가 기어이 몸살이 났다. 금성이와 수성이는 아침밥도 먹지 않은 채 아프다고 드러누워 있었다. 금성이도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한다고 했다. 수성이도 많이 아파서 학교에 못 가고 담임선생님께 결석한다는 말도 못 한 채 방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샘, 죄송하지만 저희 담임선생님께 전화 좀 해 주실래요?”

 수성이가 백지장 같은 얼굴로 말했다.

 J는 수성이의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하루 쉬게 하겠다고 말했다.

 식탁에서 달그락대는 수저 소리와 우적우적 음식 씹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려왔다. 그 소리와 함께 방안에서 금성이와 수성이의 신음소리가 오랫동안 J에게 들려왔다.

 J는 하이에나에게 전화하여 금성이와 수성이를 데리고 같이 병원에 가자고 했다. 그러자 하이에나는 곧 병원으로 갈 테니 금성이와 수성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K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세 사람은 A시에 있는 K 병원으로 갔다. 금성이의 고모와 가해자 학부형도 병원에 왔다. 금성이는 응급실로 갔다.

☞ 대머리수리와 하이에나

  아이들은 수시로 욕설을 내뱉는 대머리수리와 하이에나에게 적의를 품고 있었다. 대머리수리는 근무 중에 침대에서 낮잠을 자는가 하면 밤 근무 시에는 술을 마시다 아이들에게 들킨 적도 있었다며 아이들이 불만을 쏟아냈다. 평소 생활이 이러니 교육이 되었을 리 만무했다. J가 초·중학생들에게 독서지도를 하자고 하니, 그는 아이들 교육은 절대 못 시킨다면서 J에게 다 하라고 했다. 또 J의 말에 따르지 않겠다며 하이에나에게 J를 해고시키라고 명령했다. 대머리수리는 하이에나를 호출하여 몇 차례 으름장을 놓으며 정상적인 방향으로 가자는 J를 내쫓으려고 했다.

  J가 부당해고 당한 이튿날, 시청에 가서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해서 민원을 제기했다.

  “선생님이 그냥 추측으로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J가 입증자료를 보여 주는 데도 담당 공무원 이민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제까지 그곳에서 일한 사람입니다. 이 서류까지 보여드리는 데도 제가 추측으로 말한다는 겁니까? 독거미 씨 나오지도 않는데 해임보고도 안 되어 있는 거 아십니까?”

“작년에 나가 봤을 때는 있던데요? 우리가 나갈 때마다 직원들은 있었어요.”

“독거미 씨는 작년에 근무했던 분이 아니고 올해 5월부터 근무자로 보고된 사람입니다.”

독거미는 이름만 있는 유령인물이었다. 감사 준비를 하느라 J는 여러 가지 서류를 보았다. 업무일지 난에는 공란이 수두룩했다. 나오지도 않는 아이들의 명단이 살아있었고 생계비가 매달 지원되었다. 현철이는 지적장애 3급으로 M 정신병원에 입원되었고, C 그룹홈에 안 나온 지 1년 이상 되었다. 그런데도 그 아이의 이름으로 매월 65만 원씩 생계비가 지원되고 있었다.

 “정신병원과 보호감호소에 들어가 있는 아이들에게도 생계비 지원이 되나요?”

 “누가 정신병원에 들어갔는데요? 보호감호소에 있는 애는 또 누구에요?”

 “현철이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들었습니다.”

 “누구한테서요?”

 “하이에나 씨한테서 들었습니다.”

 하이에나는 J의 임용서류가 보고되자 현철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건으로 방송사에까지 보도되어 시끄러웠고, 그 건으로 하이에나가 아동그룹홈 연합회에서 왕따가 되었고, 담당공무원과 심하게 다투고 폐지 명령 조치까지 받았다고 J에게 말했다.

 “담당공무원과 다투고 폐지명령조치까지 받았다구요?”

 이민자의 눈이 크게 벌어지며 물었다,

 “네. 그 담당공무원이 원칙대로 하고 경력이 많은 시설장을 채용하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찬별이는 보호감호소에 있다고 서류에서 봤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이와 보호감호소에 있는 아이에게도 생계비 지원이 되나요?”

 이민자는 퇴소자 명단에 보고하지 않았다면 생계비는 지원이 되고, 그 돈을 정신병원에 아이들을 방문했다거나 보호감호소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쓰였다면 별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제가 C 그룹홈에 근무한 지 한 달이 되었는데 그 아이들을 위해 쓰는 거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정말인가요? 독거미 씨도 말해주지 않았나요? 업무 인수인계는 했을 거 아니에요?”

 “업무 인수인계도 없었고 독거미 씨는 아예 C 그룹홈에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J는 전임 시설장인 독거미가 작년에 석 달 동안 무단결근했다는 사실을 말하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고 이민자에게 되물었다.

 “누가 석 달간 무단결근했다고요? 그 말은 누가 하던가요?”

 “하이에나 씨한테서 들었습니다. 툭하면 결근하는 독거미 씨 때문에 속 터져 죽는 줄 알았다며, 독거미 씨가 석 달 동안 무단결근하니 아이들의 입에서 독거미 선생 왜 안 나오느냐는 말이 들리니까 그때서야 진단서를 떼서 시청에 냈다고 했습니다.”

 J의 말에 이민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린 것들 꼭 감사 나가셔서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J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한 달 후 G 경찰서에서 느닷없이 J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 받으시는 분이 J 씨 인가요?”

 “네. 맞습니다.”

 “C 그룹홈에 하예나 씨 아시죠? 그분이 J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뭐라 하셨어요? 하예나 씨가 나를 고소했다고요?”

 “네. 하예나 씨가 J 씨를 정보통신법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기가 막혀, 그 여자 멀쩡한 사람 부당해고 시켜놓고 뭐가 어쨌다고요?”

 “다음 달, 10월 13일에 A시에 있는 G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오셔야 합니다.”

 “비리 서류가 다 있는데 그 여자가 죄를 덮어씌우면 전 죄인이 되는 건가요?”

 “관련 서류 있으면 그날 갖고 오셔도 됩니다.”

 전화를 끊고 나자 J는 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J는 영문도 모른 채 출석 요구 일에 G 경찰서로 갔다. 경찰은 J가 올린 글의 각 단락 앞에 숫자 ①부터 ⑩까지 연필로 표시하고 있었다. 긴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죄 없이 형사 앞에 앉아 있으니 J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J는 갑자기 동물 왕국이 떠올랐다. 힘없으면 무조건 잡아 먹히거나 짓밟히는 약육강식의 세계, 그것과 흡사했다. 서로 물고 물리는 C 그룹홈의 이야기들이 정글의 한 단면 같다고 J는 상상한다.

  하이에나와 대머리수리는 썩은 고깃덩이를 찾아 서로 협력했다가도 으르렁대는 짐승이었다. 저 아이들은 어린 동물들 같다. 초등학교 일학년인 영웅이는 아버지의 실족으로 벼랑 앞에서 떨어졌다가 겨우 살아났으니 원숭이가 좋겠다. 고등학교 2학년인 금성이는 자기주장도 잘 하고 담력이 세니까 뱅골호랑이가 어울리겠다. 언젠가는 C 그룹홈의 증거를 모아 대머리수리를 자르고 C 그룹홈을 폐지시키겠다고 할 정도로 용기가 있으니 금성이는 뱅골호랑이가 어울리겠다. 수성이는 사자가 되고 중학교 2학년인 큰별이는 느림보곰으로 하고, 그 친구 혜성이는 재규어로 하자. 그럼 나는? J는 초식동물인 코끼리가 좋겠다고 상상한다.

  호시탐탐 정글의 어린 동물들을 잡아먹으려는 저 하이에나와 대머리수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뱅골호랑이와 사자, 느림보곰과 재규어와 원숭이, 코끼리가 합세하여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저 악마 같은 하이에나와 대머리수리를 정글에서 몰아내고 코끼리 등에 살아남은 동물들을 태우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다.

 “여기 적힌 C라는 글자가 C 그룹홈을 두고 쓴 글 아닙니까?”

 갑자기 K 형사의 고함소리에 J는 상상 속에서 빠져나왔다.

 K는 원문자를 짚어가며 조사를 했는데, 유독 한 단락에 집중하며 유도심문誘導審問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사회복지 전반에 대해 쓴 글입니다.”

 “이게 어떻게 사회 전반적인 글입니까? SNS(사회 정보망 시스템), 카스토리에 올린 글도 허위 사실이면 정보통신법에 적용되어 명예훼손에 걸린다는 거 모릅니까?”

경찰은 조사 기록철을 흔들면서 J에게 소리쳤다.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실무경력도 없는 자들이’ 복지시설을 열어 유령의 인물을 내세워 정부에서 주는 인건비를 꼬박꼬박 착복하고 있는 ‘이 부조리한 사회’, 썩어빠진 생선 대가리보다 더 ‘비린내 나는 인간들이 판을 치는 복지계’, 아이들이 시설에서 눈칫밥 먹느라 제 목소리 한 번 못 내고 ‘그러다가는 강제 퇴소당하는 복지계의 현주소.’ ‘벼룩의 간을 빼먹듯 하는 파렴치한들이 설쳐대는 현실이다.’ 이런 말들이 사회 전반적인 글 아닙니까? 저는 허위 사실 유포한 적 없습니다.”

 “이 글, 지적장애인에 관한 글 C 그룹홈을 두고 쓴 글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문맥으로 봐도 C 그룹홈 내용이 아니지 않습니까?”

 경찰은 고함을 지르며 지나친 유도심문과 협박을 했다. 조사 철로 책상을 탕탕 두드렸다. 목에 핏대를 올리며 J를 죄인 취급했다. 아직 죄가 드러나지 않았고 조사 중인데 경찰이 고함치며 ‘피고인’이라는 용어까지 쓰는 것이 J는 불쾌했다. 피고인은 법정에서 쓰는 용어이고 J에게는 ‘피고소인’이라 써야 옳은 말이다.

 ☞ 야누스

  대질조사가 있는 날이었다. J가 하이에나와 나란히 형사 앞에 앉았다. K 형사는 C 그룹홈에는 몇 명이 근무하는지 근무형태와 시설장과 생활지도교사의 차이에 대해 J에게 질문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시설장이나 생활지도교사와 같지만 대외적인 일이나 결정, 학교상담이나 아이들 입·퇴소 처리, 사건 사고 처리는 시설장이 한다고 J가 말했다. 그러자 K 형사는 다음 질문을 했다.

 “피고인은 고소인이 부당해고를 했다는데 사실입니까?”

 “그건 생각의 차이입니다. 해임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을 이 분이 해고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이에나가 대답했다.

 “그건 부당해고지 어떻게 해임입니까? 일방적으로 나오지 말라고 강요하는 게 해고 아닙니까?”

하이에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J가 받아쳤다.

 “네. 그건 생각의 차이 같네요. 그 문제는 여기서 말할 사항이 아니고 두 분이 따로 얘기하세요.”

J의 머리를 망치로 치는 듯한 K의 말이었다.

 “그럼 이제 허위사실 유포, 정보통신법에 대해 조사하겠습니다. 피고인은 카스토리에 글을 게시한 사실 있죠?”

 “네. 카카오스토리는 제 습작 노트입니다. 글을 자주 쓰기 때문에 카스토리를 많이 활용합니다.”

 K는 한 달 전, 1차 조사 때와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때와 다른 것이라면 K형사의 조사방법과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고압적인 태도, 간과, 비아냥, 신경질, 지나치게 큰 목소리, 억지 주장과 유도심문이 많아졌다는 것을 J는 느꼈다.

 K는 J에게 하이에나가 제출한 확대 스캔한 카카오스토리 내용을 들이밀었다. K는 J를 째려보았다. 미간에 잔뜩 힘이 실려져 있고 가느다란 실눈이 더욱 작게 보였다. K가 갑자기 부동자세를 취하며 그녀를 향해 큰소리치며 심문했다.

 “여기 적힌 C라는 글자가 C 그룹홈이라는 거죠?”

 “아닙니다. 그건 이니셜일 뿐 C 그룹홈이 아닙니다.”

 K는 1차 조사 때처럼 J가 쓴 글에 원문자를 써 놓고 짚어가며 다그쳤다. 그때 하이에나가 거들었다.

 “이거 보세요. 형사님, 우리 C 그룹홈을 두고 한 말이잖아요? 현철이를 두고 한 말이라니까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글을 여기 올릴 수 있어요? 이건 명예훼손이라구요.”

 “이보세요? 내 카스토리에 내가 글 올리는데 왜 난리에요? 문맥이 이해가 안 되거든 가만히나 있지. 어디를 봐서 C 그룹홈 입니까?”

 J가 하이에나에게 말하자 K형사가 다시 J에게 질문했다.

 “나중에 현철이 엄마를 불러서 조사해 볼 겁니다?”

 K 형사는 작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J는 대답할 필요를 못 느꼈다.

 그 대목은 지적장애인을 부모 동의 없이 시설에서 정신병원에 감금시켰다는 내용이었다. C 그룹홈에서 지적장애인을 정신병원에 넣은 사실이 있고 그 때문에 시청에서 폐지조치 명령까지 한 사실이 있지만 J가 쓴 그 대목은 C 그룹홈의 내용이 아니었다. K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말하라고 큰소리로 유도심문했다.

 “이것 보세요. 글을 쓰신다면서요?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이건 명예훼손이에요. 아십니까? 당신이 작가는 무슨 작가라고. 소설을 쓴다구요? 소설도 사실을 바탕으로 쓰는 거 아니냐구요?”

 K가 갑자기 조사 기록지를 책상 위에다 세게 탕탕 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J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J가 아니라고 진술하는데도 다음 조사로 넘어가지 않고 자꾸만 유도심문하는 조사관의 태도에 불쾌했다.

 “아니라고 했는데 왜 자꾸 C 그룹홈이라고 우기세요? 사회문제적인 지적장애인 시설들을 알기 때문에 그 시설을 쓴 거지 C 그룹홈을 두고 쓴 게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제가 평소에 사회 비판적인 글을 잘 쓴다구요.”

 J가 다소 격앙된 어조로 대답했다.

 K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J의 스마트폰에 사회 비판적인 글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서 보여 달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10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내 참 어이가 없어서.”

 J는 자신도 모르게 독백이 튀어나왔다.

 “지금 누구보고 어이가 없다고 하셨습니까? 피고인이 보기엔 조사관이 우습게 보입니까?” 신경질적인 K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J를 째려보았다.

 “누가 우습다고 했습니까? 제가 조사관님한테 말했나요? 고소인이 명예훼손으로 건 게 너무 어이가 없다고 혼자 독백한 거죠. 그런 말도 못 하나요?”

 J의 말에 K는 조사관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며 식식대며 또 한 번 소리를 질렀다. 다른 경찰들이 힐끔힐끔 이쪽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J는 곧바로 K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K의 주름진 인상이 조금씩 펴지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K 형사는 다시 조사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하이에나는 잠자코 있었다. K는 다음 단락의 글을 읽고 있었다.

 “여기 ‘가정폭력과 학대, 방임으로 인해 생활시설인 아동쉼터로 입소한 아이들을 다시 방임, 학대하고 아이들의 이름으로 나오는 생계비를 아이들을 위해 다 쓰지 않고 벼룩의 간을 빼 먹듯 하는 파렴치한 인간들’이라고 한 거 이 내용은 사실입니까? 무슨 내용입니까?”

 “C 그룹홈의 위생 환경이 불결하고 아이들의 이불도 일 년 이상은 안 빨았는지 때가 절어 새까맣고 침대도 없어 맨바닥에 잠을 자고 있었고, 이불 가장자리와 모서리는 다 헤져서 너덜너덜했습니다. 먹거리도 제대로 안 사주고 생계비를 아끼라며 일주일에 십만 원으로 부식과 생필품까지 다 해결하라고 했는데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냉장고 안에 부식 재료도 거의 없고 대머리수리 씨도 저더러 집에서처럼 해 먹이지 말라며 생계비를 아끼라고 했습니다.”

J가 숨 고르기를 한 후에 다시 말했다.

  “수성이는 봄에 C 그룹홈에서 썩은 쌀로 밥을 해 줘서 C 그룹홈에 다니기 싫다고 한다고 학교 담임선생님한테서 들었구요. 전임 시설장이던 독거미 씨가 작년에 석 달씩 무단결근하며 고소인을 골탕 먹였고, 독거미 씨는 자리를 비우고 아이들의 법정사건이 나면 법원에도 나서지 않았다고 고소인이 말했습니다. 석 달씩 무단결근하여 자리를 비우자 아이들 입에서 독거미 선생 왜 안 나오냐는 말이 나오자 급하게 진단서를 떼서 시청의 눈을 피했다고 했습니다. 그게 이차 방임 아닙니까? 고소인이 아이들한테 ‘개자식아, 개새끼도 그만큼 말하면 알아 처먹겠다.’ 하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많이 했습니다. 대머리수리 씨도 욕하는 건 마찬가지였구요. 그게 아동 방임이고 학대 아닙니까? 신체적 학대만이 학대가 아니라 정서적 학대도 학대입니다. 업무일지도 거의 다 공란이고 날인도 안 되어 있고 엉망이었습니다.”

  K 형사는 하이에나에게 J의 말이 사실인지, 독거미가 석 달씩 무단결근했다는 말도 사실인지 애써 실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애들이 사내애들이다 보니 워낙 거칠어서 이불을 주면 그냥 자지를 않고 장난을 쳐서 모서리가 다 헤지고 바이어스가 다 뜯어져 캐시미어 솜이 나오고 그랬습니다. 이불이 변변치 못했습니다. 사실 자체는 맞는 말입니다. 비단 이불에 좋은 이불은 아니었습니다. 이사도 하고 그래서.”

 “그럼 사실관계는 맞는 말이네요? 이사 때문에 이불이 그랬다는 거죠?”

 “네. 독거미 씨는 같이 일하는 동안 제가 급여를 60만 원밖에 주지 못했습니다. 인건비 미지원 시설일 때라 그러다 보니 이삼 개월씩 못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병원에 가서 진단서 서류를 떼 오라고 해서 시청에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운영일지에 공란이 많았던 것은 특이사항이 없을 때는 그냥 넘어갈 때도 많았습니다.”

 “고소인은 아이들에게 개자식, 개새끼라며 욕을 했다는데 언제 어디서 했습니까?”

 “제가 면접 보던 날 사무실에서 두 아이가 미장원에 빨리 따라나서지 않는다고 그런 욕을 했습니다.”

 J가 대답했다. 그러자 K가 다시 하이에나에게 물었다.

 “고소인, 피고인의 말이 사실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제가 그렇게 말한 거 같습니다.”

 “그럼 피고인이 진술한 내용이 사실이네요?”

 “네.”

 하이에나는 모깃소리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K는 이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경력도 없이 사회복지계에 일을 한다’는 내용과, ‘실습생인 제 마누라 이름 아래 얹어놓고 실습은 하러 코빼기도 안 비춘다‘는 내용은 무슨 말인지 J에게 물었다. J는 상세하게 설명했다.

 독거미는 남편의 슈퍼바이저로 얹혀 있었다. 독거미는 실습하러 나오지도 않는 남편의 가짜 실습지를 써 주기 위해 하이에나에게 J의 임용 보고를 한 달씩이나 미뤄달라고 한 것이다. J는 하이에나에게 임용 보고부터 해야 한다고 했지만 하이에나는 듣지 않았다. J는 임용 보고도,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은 채 한 달을 일한 것이다.

 “거기에 쓴 내용 전부가 사실입니다. 전 허위 사실 유포한 적 없습니다. 지적장애인의 얘기는 과거에 근무한 시설 얘기를 쓴 겁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밝힐 수 있습니까?”

 “밝힐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인권에 관련된 거라 여기서 밝히기 곤란합니다. 필요하면 나중에 검찰에 자료를 내겠습니다.”

  J가 조사관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죄가 없어도 고소를 당하면 죄인 취급부터 당하는 사회라니, J는 억울했다.

 하이에나는 C 그룹홈의 한 아이를 정신병원에 넣은 사건을 J가 쓴 거라며 경찰 앞에서 계속 우기고 있었다. 하이에나의 입꼬리와 눈꼬리가 샐쭉대며 올라간다. 어깨를 으쓱댄다. 어쩌면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 야누스의 얼굴 같았다.

 ☞ 마지막 진실의 한 조각

  경찰서에서 집에 돌아온 J는 G 경찰서 상부에 전화하여 담당 조사관을 바꿔 달라고 고했다. 그러자 반장 형사가 J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K 형사를 대신하여 사과드립니다. 아마도 이 사건을 맡았던 L지휘 검사님이 고소인이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는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라고 했을 겁니다. 그래서 K형사가 그렇게 고소인의 고소내용 중심으로 조사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 그 C 그룹홈 시설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저희 경찰서에 의뢰하신 적은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밝혀주기를 원하는데 아직 경찰서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알 길도 없고 제가 확인한 자료도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게 더 답답합니다.”

 “그건 고소로 하면 잘못하면 무고죄에 해당이 되니까, 고소가 아닌 고발로 그 시설의 어떤 부분을 조사해 달라고 의뢰를 하시면 저희가 조사해 드립니다.”

  이튿날 J는 3차 진술서를 제출하고 진정서를 쓰기 위해 G 경찰서 민원실로 갔다. 담당 경찰은 진정서를 쓰는 데도 법적 효력이 있는 자료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J는 시설 관련 서류를 갖고 가지 않아 그냥 돌아와야 했다. C 그룹홈 비리 조사 의뢰절차도 복잡하고 일이 많았다.

J는 명예회복과 인권을 되찾고자 법적 대응키로 했다. 벌금 백만 원의 약식명령 통지서를 받았다. 몇 날 며칠 불면의 밤을 보냈다. 입안에 든 밥알이 모래알이었다.

하이에나가 명예훼손으로 걸었다는 대목은 지적장애인을 정신병원에 감금시켰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J가 과거에 근무한 장애인 시설의 이야기이다. 그때도 그녀는 한 아이의 인권을 되찾기 위해 얼마나 뛰어다녔던가. 그에 관련한 당시의 녹취록과 증거자료도 있었다. 그때의 사건이 J에게는 크고 충격적이어서 오 년이 지났지만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다. 사회복지에 꿈을 갖고 첫발을 내디딘 곳이었는데 그런 엄청난 사건을 보았으니….

  모든 것을 밝혀야 했다. 부당해고에 명예훼손 고소까지, J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A시에 있는 노동부에 가서 근로계약 미체결 건으로 진정서를 올렸다. 여성가족부와 학대아동센터, A시청 민원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에까지 몇 날 며칠 밤새워 글을 써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변호인을 선임했다.

 재판은 금방 끝나지 않았다. J는 G 경찰서에 다시 가서 C 그룹홈의 비리 조사 민원을 제기했다. 이제 하이에나가 피고소인이 되었다. 하이에나는 재 감사를 받던 중 공금횡령, 인건비 착복, 여러 건의 부조리가 드러났다.

 해가 바뀌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J에게 연락이 왔다.  C 그룹홈이 감사 후 부패한 시설로 밝혀져 3월 말일자로 시청에서 폐업시키고 아이들은 타 그룹홈으로 이관시켰다고 했다. 진실이 이겼다. J가 쓴 글도 모두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다.

  당시에는 J의 주변 사람들이 J를 말렸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격이니 참으라고,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라고 했다. 그때마다 J는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속담을 되새겼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낙숫물 한 방울의 힘은 크다.

J는 국가인권위원회 직원의 전화를 받고 아이들을 한 명씩 떠올린다. 한창 크는 성장기에 따뜻한 밥 한 그릇, 고기 한 점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아이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C 그룹홈보다 더 나은 곳으로 갔다고 하니 이젠 밥을 배 불리 먹을 수 있었으면, 용돈도 넉넉히 받으며 공부도 잘 하고 지낼 수 있었으면…

 금성이와 수성이와 C 그룹홈의 아이들과 J는 억겁의 인연으로 만났을 것이다. 태어나서 사라지는 날까지 어쩌면 그 별들을 못 만나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이 만난 것은 많은 전생의 인연이 있어서일 게다. 우주에 빛나는 저 별들. 그 별도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흐린 날에는  잘 보이지 않는 별일지라도 맑은 새벽녘에는 누군가의 힘든 삶의 여정을 밝혀주는 샛별이 되리라. 오늘도 J는 저 샛별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다. 그때 그 별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2015)

목련 아동 꿈터

  언니가 해고 당했어요 목련 봉오리가 아이들처럼 흐드러진 봄날이었어요 언니는 직원으로 취직했거든요

아름드리 나무가 눈에 선한 정원이 화사했어요 그런데 원장은 바이러스 같았어요

  없는 자격증으로 시설을 운영하고 없는 사회복지사 이름으로 인건비를 지원받고 없는 입소생의 이름으로

교육비를 지원받고 없는 실습생의 이름으로 실습지를 써주었고 지적장애인 이름으로 생계비를 탔어요

  없는 것을 찾아내고 확인하던 언니는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잘렸어요 해고당하던 날 밤, 목련 봉오리들이

강한 바람에 쏟아졌어요 한 달 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어요 언니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대요 고소하고

싶었던 사람은 언니인데 정보통신법을 위반했다는 거예요

 언니는 백신이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여성가족부와 시장에게 민원을 넣고 학대아동신고센터에 접수하고

노동부에 고발하고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올리고 국민권익위원회의 신문고에 글을 올렸대요

 이윽고 4월이 되자 목련 봉오리가 다시 피어나기 시작했어요 바이러스를 격리시키듯 원장은 끝내 정원을

떠났어요 아이들은 하나둘 꽃을 피웠고 파릇한 잎들이 무성해졌어요 언니는 그 바이러스로부터 완치되었어요

―詩에세이집 『다알리아 에스프리』(지혜, 2023) 발표

▲ 정여운

대구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서울시립대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

2013년『한국수필』로 수필, 2020년『서정시학』에 시「문에도 멍이 든다」외 2편으로 등단. 2019년 불교신문 10·27법난 문예공모전 산문 부문 대상 수상. 시집 『문에도 멍이 든다』(2021) 『녹슨 글라디올러스』(2024) 공저 시집『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2023) 외 다수, 詩에세이집『다알리아 에스프리』(2023) 출간. 2024년 인천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 시 부문 선정. 서정시학회, ‘새얼문학’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