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19)
「무진기행, 그 후」 後記 (afterword)
「무진기행」과 작품 분석
1. “무진은 어디에 있습니까?”
단어를 잊어가는 김승옥…… ‘안개’ 속 분투는 치열했다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은 잠시 생각하더니 흰 종이에 한반도 지도를 그렸다. 지도 위에 서울을 표시하고, 이어 평양 부산 순천을 적더니 마지막으로 광주를 표시했다. 그러고는 말없이 각 도시를 포함하는 큰 원을 그리고 ‘무진’이라고 눌러 적었다. 무진은 서울일 수도, 부산일 수도, 그 어느 곳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 작가가 23세 때인 1964년 10월 「사상계」에 발표한 ‘무진기행’이 올해 60주년을 맞았다. 2003년 뇌졸중이 발병한 이후 정상적인 대화가 힘들어진 그는 재작년 허리 부상에 이어 지난해 초 장협착증이 발견됐다. 큰 수술을 3번 받아 기력이 급격히 약해졌단다. 이후로는 서울 강북구 번동의 집에서 칩거하다시피 했다.
이날 작가는 90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떠도는 적절한 답변의 단어를 찾느라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그러고선 ‘무진’ ‘안개’ ‘남과 여’ ‘선과 악’ ‘부끄러움’ 등의 단어를 반복해 적기도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장남이 “이런 뜻입니까” 하면 때론 웃으며 긍정했고, 때론 “아니”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안개 속에서 길을 찾는 듯한 대화가 출구 없이 이어졌다. 기자는 12년 전에 등단 50주년을 맞은 김 작가를 필답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안개가 짙어진 듯했다.
‘무진기행 발표 60주년이 된 소감’을 묻자 작가는 답 대신 종이를 꺼내 ‘뇌졸중’ ‘동아일보’를 연이어 적었다. 뇌 모습을 그리더니 옆에 다시 뇌졸중이라고 적었다. 알 듯 말 듯했다. ‘무진을 오랫동안 사랑해주시는 독자에게 감사하시냐’고 다시 묻자 그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긍정했다.
그러고선 그는 갑자기 무진기행을 봐야겠다면서 책이 지금 있냐고 물어왔다. 문고본은 찾지 못해서 급한 대로 컴퓨터에 저장된 무진기행의 파일을 노트북 모니터에 띄우자 그는 위아래로 손짓을 해가며 자신이 읽고 싶은 부분을 찾게 했다. 그러고선 그는 직접 손을 뻗어 모니터에 올라온 수많은 문장들 사이에서 몇 문장을 반복해 짚었다. 소설 말미, 정확히는 세 문장이었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찢어 버렸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특히 마음에 드시는 부분이냐’고 묻자 김 작가는 환하게 웃었다.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하며 어렵게 쓰신 부분이냐’고 묻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더 환하게 웃었다. 무진기행을 지금도 종종 읽으시냐고 묻자 그건 아니라고 했다.
아마도 아내의 전보를 받고 상경한 주인공은 평소 원했던 대로 제약회사 전무가 되었을 것이다. 김 작가에게 무진기행의 결말 이후가 어떻게 됐을지를 묻자 그는 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윤과 아내 → 행복 (안개) → 부끄러움’
작가는 아내에게 돌아가 겉으로는 행복하지만 내면에서는 계속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게 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실제로는 윤과 같은 삶을 선택하지 않겠냐는 뜻을 비치기도 했다.
그는 1960년에는 군인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군인이 없는 사회가 됐다고 했다. 군인은 군사정권이라는 설명도 추가로 곁들였다. ‘세상이 좋게 변한 것이냐’고 되묻자 그는 이번에는 “그럼”이라고 명확히 육성으로 답했다.
‘1966년 단편집 서울 1964년 겨울 창문사 (인세 안 됩니다. 김승옥 화냈다)’
김 작가 아내의 설명으로는 당시 소설가 황순원의 동생이 운영하는 출판사 창문사에서 첫 단편집을 냈는데 인세를 하나도 주지 않아 당시 남편의 불만이 컸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김승옥 부부의 주례 선생님은 황순원 작가였다. 아내는 “황순원 선생님은 동생이 인세를 주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셨을 것이다. 어찌 됐든 황 선생님이 저희의 주례를 서 주셨으니 그것으로 된 것 아니냐”며 웃었다.
김 작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위에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말을 잘 하지 않는다고 가족들은 얘기했다. 하지만 이날도 김 작가는 작은 회색 수첩과 어느 책에서 찢어낸 자신의 이력이 담긴 종이 2장을 가져와서 무언가 생각이 안 나면 몇 분 동안이나 들여다보곤 했다.
‘수첩을 볼 수 있습니까’ 물었더니 작가는 열어봐 주었다. 문장보다는 단어, 그마저도 어떤 연관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는 페이지도 있었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다시 적절한 단어를 찾느라 한참 ‘안개’ 속을 서성였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그가 2004년 펴낸 산문집 ‘내가 만난 하나님’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책이 지금 없다고 하자 그 책을 펴낸 아현동에 있는 출판사를 지금 찾아가자고 장남에게 말했다. 기자에게도 그 책을 본 다음에 질문에 대한 답을 문자메시지를 통해 보내겠다고 했다.
(황인찬 문화부장 hic@donga.com)
2. 신비평 (new criticism)과 작품 분석
신비평 이론
신비평은 문학작품을 자족적이고 자율적이며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여 객관적으로 취급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신비평은 20세기 문학 이론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영미나 프랑스에서 고등학교 문학수업은 신비평의 이론에 따라 작품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로 보고 철저히 검열 분석한다. 그들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아주 엄밀하게 fact check를 한다. 그건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하나의 공식적 방법이다.)
신비평은 작품의 내재적 (intrinsic) 특성을 중요시하는 보다 객관적인 비평을 요구한다 (객관적 비평). 신비평가들은 문학을 과학적 실용적 논리적 담론과 대비되는 특별한 종류의 문학적 언어로 보았다.
신비평은 문학 텍스트를 해석할 때 최고의 예술은 실제의 삶에 근거한다고 보았다. 작가의 실제 삶과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을 분석해서 원용, 인용하는 것이 일반적 방식이었다. 그런 요소들이 작가의 의도, 다시 말하면 작가가 텍스트에 담고자 하는 의미를 결정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작품의 텍스트 그 자체야말로 해석과 재해석하는 유일무이한 원천이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의 독특한 방법론은 해명 (explication) 또는 주도면밀한 해석 (close reading)이다. 작품 속 구성 요소들과 그들 상호관계를 상세하고도 미묘하게 분석한다.
신비평의 관점에서 보면, 문학작품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자율적이고 자기충족적으로 존재하므로 그게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텍스트의 의미는 객관적으로 실재한다.
신비평가들이 주장하는 맥락주의 (contextualism)는 문학작품을 복합적이고 자족적인 작품 세계로 본다. 그러므로 작품은 이야기 속 세계에서, 그 맥락에서 독자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길을 막는, 긴장에 가득 찬, 사물이 지닌 모든 것을 포함한, 서로 길항 작용을 하는 반대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 통일성은 그 세계 자체의 맥락에 있다.
문학작품에서 통일성이란 이야기 속에 인과율이 적용되는 구성 원리와 내적 논리를 지니고 있어서 그 작품이 하나의 유기체적 전체가 되게 해야 한다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형식이나 인물, 플롯, 주제, 상징의 반복에 의하여 통일성을 성취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소설 속 요소들이 서로 필연적으로 연결 관계를 유지해서 통합하고 긴밀하게 조직되어야만 통일될 수 있는 것이다.
(모더니스트 시인 김기림은 1935년 한 일간지에 비평의 본질을 설파한 ‘현대 비평의 딜레마’를 게재했다. 문학작품을 분석 평가할때는 주관적 감상에 따라서는 안 되고 다른 학문처럼 과학적 방법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당대에 유일하게 허무주의와 감상주의에 반대하면서 주관적 감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비평의 과학적 방법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20세기는 분명히 소설의 시대가 아니고 더군다나 시의 시대도 아니라고 했다. 비평의 시대라고 했다. 그러면서 순수한 객관적 비평을 옹호했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영국 문학평론가 아이버 리처즈의 「문학비평의 원리: The Princicples of Literary Criticism」에 나오는 new criticism의 이론을 공부했다.)
하지만 우리 문단의 비평계는 김기림 시인의 비평론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게 아니라 전혀 주목하지 못하고 그냥 간과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비평계는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주례사 비평 일색이 된 것이다.
나는 무진기행을 내가 이해하고 있는 김기림 시인의 신비평적 관점에서 철저히 검열 분석하여, 또한 60년대의 세속적 풍경에 비추어서 상식과 타당성이라는 관점에서 그 소설이 안고 있는 근본적 결함과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독자들이야 허구적인 소설을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불신의 자발적 유예 (willing suspension disbelief)가 필요할 것이다. 작품 속 실재의 진실이나 개연성에 대해 너무 세세하게 따지지 않고 (그렇게 하면 가독성에도 문제가 있고 흥미를 잃게 되므로), 의심을 유예하고, 평소라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전제 조건들을 일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그 소설의 구조와 내적 논리가 설득력 (핍진성)이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비평가의 입장에서 작품을 해석, 분석,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그런 불신의 유예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 엄밀하게 조사하고 검열하는 게 필요하다. 그게 비평가의 임무라고 할 수 있다.
헤밍웨이의 ‘빙산의 일각’ 이론처럼 소설의 표면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소설의 이면에는 당해 소설을 떠받치는 실체가 들어있어야 한다. 비평가는 그 실체를, 표면과 이면 사이 간극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작가 스스로 미주알고주알 밝히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21세기 大明天地다. 컴퓨터, 이메일, 인터넷, 스마트폰, SNS, AI 시대이다.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카카오, 네이버 같은 플랫폼들이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짧은 동영상인 쇼트 폼에 광적으로 열광한다. 그래서 온갖 지식, 정보, 루머, 광고, 가설, 이론, 궤변이 끊임없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러니까 그 소설이 발표된 1964년으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지난 것이다. 그러한 시간적 간격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소설을 해석 평가하는 작업에서 여러분은 괴리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소설은 1인칭 소설이다. 전형적인 일본식 사소설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소설은 작가 자신의 생활에서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을 고백의 형태로 가차 없이 폭로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사생활의 문제들을 솔직히 털어놓기를 꺼리는 일본적 관습이 있다. 그것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바윗덩어리처럼 단단하게 뭉쳐있는 것이다. 일본의 사소설 작가들은 자신들의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뿐만 아니라 수치스러운 상념까지도 드러내놓고 거기에서 일종의 자학적 쾌감을 누리는 것이다. 일본의 근대문학에서 통용되는 사소설의 계보에는 그러한 사회적 금기에 구애받지 않는 자기 폭로의 소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유형으로는 작가 자신의 사사로운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작가의 감춰진 비밀스러운 죄악을 까발리는 대신에 보통 사소한 신변사의 의미를 반추하는 일에 집중한다. (무진기행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제약회사의 간사(?)가 일주일 간 여름 휴가를 얻어 고향에 내려왔다가 모교 음악 선생과 한 번 섹스를 했다고 고백하는 너무나 뻔한 도식적인 이야기 아닌가. 기껏해야 사소한 러브 스토리에 불과한 것이다.)
1인칭은 화자 (또는 서술자)가 자신의 언어로 직접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3인칭 시점보다는 독자로 하여금 인물의 솔직하고 왜곡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1인칭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사용하고 있어서 가장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1인칭 소설에서 화자의 서술은 그의 독백에 다름아니고 (연극에서 방백처럼) 그것은 독자를 향한 진술인 것이다.
물론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1인칭 시점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전지적 시점의 3인칭에 비해서 서술이 자유스럽지 않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1인칭 소설에서는 작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작가들은 1인칭을 싫어한다.
화자는 1인칭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혹은 3인칭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거나)으로 인물의 행동을 묘사한다. 화자의 존재를 눈에 띄게 하는 경우 더욱 복잡하고 섬세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화자를 사용하면, 주인공의 행동은 물론이고 그가 하는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까지 전해줄 수 있다.
서술자가 가진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그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며, 독자는 이것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라는 걸 듣는 순간, 상실, 슬픔, 미련을 느끼게 된다.
서술자가 있으면 플롯을 구성하는 데 있어 엄청나게 많은 자유를 가질 수 있다. 플롯에 나오는 행동은 기억에 의해 구성되기에 시간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짜임새가 이해만 된다면 행동의 순서를 마음껏 바꿔서 나열할 수 있다. 게다가 서술자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공간에 걸쳐 일어나는 사건이나, 주인공이 여행을 떠날 떄 일어나는 사건과 행동을 연결해준다.
1인칭이든 3인칭이든 서술자를 사용하는 경우 열에 아홉은 서술자가 진짜 주인공이다. 그 이유는 구조에 있다. 이야기를 한다는 행위는 자기발견의 단계를 반으로 쪼개는 것과 같다. 서술자는 처음에 자신의 행동 혹은 타인의 행동이 자기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하기 위해 기억을 되짚는다. 그러한 행동 – 과거에 했던 자신 혹은 타인의 행동 –을 묘사하면서, 서술자는 한 발 떨어져 행동을 바라보고 현재 자신의 삶을 바꿀만한 엄청난 통찰을 얻게 된다.
3. 이야기 세계 ― 시대적 배경, 공간적 배경
시대적 배경
무진기행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이다. 상호 텍스트적 관점에서 보면 그가 쓴 소설들 대부분, 예컨대 ‘생명연습’, ‘서울 1964년 겨울’, ‘서울의 달빛 0章’, ‘60년대 식’ 등등은 6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소설에서는 구체적으로 1964년 6월 하순경이다.) 그 시절은 6.25. 전쟁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성립)이 끝난 지 10여 년밖에 안 지났기 때문에 한반도에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던 때였다. 그리고 1947년 4월 제주 4.3 사건이 있었고 1948년 10월 19일부터 27일까지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 발생했다. 국군 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켜 남로당과 함께 여수 순천 등지를 점령하자 국군 진압군이 포위하고 토벌했던 사건이다. 반란군에 의해 경찰 74명을 포함해서 약 150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했고 국군 진압 군경에 의해 2천여 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했다. (작가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고 30대 초반이었던 작가의 부친은 그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돌아가셨다. 무진기행의 주인공 윤희중은 1964년 현재 33세로 추정되고 역산하면 17세가 되므로 고등학교 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하루 세끼 먹는 문제가 절실했던 너무나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 소설에 나오는 60년대 풍경은 기와지붕, 양철지붕, 초가지붕, 철공소, 상점의 스피커, 달그락거리는 빈 도시락, 개구리 울음소리, 대로 만든 와상, 높은 포플러가 에워싼 운동장, 구두닦이, 골방, 주인댁 라디오 소리, 통금 사이렌, 농사관계의 시찰원, 데드롱 직의 바지, 비단 방석과 화투짝, 소주, 목포의 눈물, 술상을 두드리기, 분뇨 냄새, 폐병, 푸른색 유니폼, 부채를 부치고, 흰 커버를 씌운 회전의자, 주판알 튕기고 개 짖는 소리, ……출세했다지?, 교원자격고시, 고등고시 등이다.
1960년 3월 15일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 부정선거가 발생했고 4월 19일 4.19 혁명이 일어났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여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했다. 6월 15일 제2공화국 헌법안이 가결되어 8월 8일 제2공화국이 출범했다. 1961년 5월 16일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1963년 8월 30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희 육군 대장이 예편해 민주공화당에 입당했고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가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12월 17일 제3공화국이 출범했다. 1964년 6월 3일 한일국교 협상에 반대하는 6.3 항쟁이 발발하여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1965년 8월 14일 국회는 야당의 불참 속에 한일협정 비준 동의안을 가결했고 8월 22일 전국 고교생 및 대학생 1만여 명이 한일협정 비준 무효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8월 26일 정부는 한일협정 반대 시위가 확산되자 서울에 위수령을 발동했다.
요약하자면, 그가 단편소설을 썼던 (총 24편으로 알려져있다) 60년대는 5.16 군사 쿠테타를 기점으로 해서 내내 군인들이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길고 긴 압제적 군사독재정권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종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간에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사건이 있었고, 그해 12월 전두환 육군 소장에 의한 12.12 군부 쿠데타 사건이 있었지만. 그때 30년이 훨씬 넘게 안정적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시킨 제6공화국 헌법이 탄생했다.)
공간적 배경
소설에서 공간(space) 또는 장소(place)는 이야기 세계의 척추가 되므로 아주 중요하다. 공간과 장소를 굳이 구별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공간은 너무 넓고 막연해서 특정하기가 곤란하고 장소는 좁아서 지리적으로 특징 지어진 작은 공간으로 파악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와 특별한 개인적, 사회적 관계를 가진 장소에 깊은 애착이나 애증을 느끼면서 관련 지식이나 기억을 축적하고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관점에서 견고하게 뿌리가 박힌 장소 감각 혹은 장소성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무진기행의 공간적 배경은 바로 순천이다.
…… 그 여성과 결별한 뒤 제 첫사랑의 느낌을 모티브로 쓴 소설입니다. 제 고향인 순천이 배경이라면 배경이지요. 순천 지역의 공간을 재구성했다고 보면 돼요. ‘순천과 순천만 연안 대대포 앞 바다와 그 갯벌’에서의 체험을 창작 모티브로 삼았어요. 소설 속의 ‘희’라는 여인에 관해 얘기하면, 그녀와는 결혼까지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 부친의 좌익 전력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어요. 그리고 1964년 6월 순천에서 여인의 시체를 본 경험이 있는데, 이는 무진기행 창작의 기폭제로 작용했습니다.
윌리엄 포크너는 미국 남부 태생으로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특징을 지닌 남부를 배경으로 한 많은 소설들을 썼다. 그의 작품들은 포크너 소설의 주요 무대인 가상의 공간 요크나파토바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현대 미국 여류작가인 애니 프루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유명한 영화로 나온 ‘브로크백 마운틴’을 썼다. 와이오밍을 배경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많은 소설들을 썼다. 그러니까Wyoming Stories 라는 부제를 단 단편집을 세 권이나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그 소설은 무진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고작 안개 이야기만 나온다. 그게 전부다. 무진을 배경으로한 단편이건 장편이건 소설들이 계속 이어서 나와야 하는데 딱 한번으로 끝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무진을 우리 소설의 문학적 지형으로 만들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작가는 그렇게 할 실력도 없었고 열정도 없었다.
그 작가는 단 하나의 히트곡만을 남기고 사라진 가수를 가리키는 ‘one-hit wonder’같은 작가였다. 그 경우 딱 한 번 히트한 것은 우연이나 운의 덕분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 소설에서 무진은 단순한 장소적 배경일 뿐이다. (그래서 캐릭터로서 기능을 하지 않는다.) 5~6만의 인구가 특별한 명산물 하나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무진은 항구도 없고 6.25 전쟁과 여순반란사건의 깊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가난하고 암울한 굴레와 같은 소도시였다. 무진은 지겨운 곳이다.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다. 정말 맘에 드는 남자가 있다고 해도 여기서는 살기가 싫어요. 전 그 남자에게 여기서 도망하자고 조를 거에요.
소설의 구조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나’의 독백이나 인물들의 대화는 주로 닫힌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우리 나라 중소도시 어디에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실내에서 벌어진다. (광주에서 무진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 골방, 이모님 댁, 신문사 지국, 세무서장 조의 집과 거실, 세무서, 서장실, 주인댁 방, 내가 들어있던 방 등. 어두운 비밀을 숨길 수 있는 음침한 공간인 초가집인지 기와집인지 또는 양철지붕이 있는 집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집에 있는 골방이 여러 번 나온다. 골방에 쳐박혀졌고, 공상과 불면을 쫓아보려고 수음을 했고, 더러워진 폐를 씻어내고, 6월 하순 뜨거운 여름철 대낮에 그 방에서 섹스를 했다.)
4. 인물들, 플롯과 구조
인물들
플롯과 구조는 이야기의 토대가 된다. 그리고 이야기야말로 소설의 모든 것이다. 작중 인물들에 의해 무슨 일인가 벌어지는 것이 플롯이다. 플롯이 인과관계의 연쇄없이 저절로 생긴다고 할 수 있을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처럼 의식의 흐름 소설에서는 온통 언어에 집중하는 실험소설이어서 플롯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그래서 플롯은 오로지 대중적인 소설에서나 문제가 되는 것일까?
소설에서 인물과 플롯은 상호 의존적이다.
플롯을 구성하고 있는 무수한 행동 (육체적 행동뿐만 아니라 언어적 행동까지 포함한)들이 작중 인물들에 의해 수행되고, 그 행동이 인물들의 도덕적, 성격적, 기타 특성을 보여주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된 인물은 주인공 (protagonist)이고 그 적수는 반동 인물 (antagonist)이다. 그들 간 관계는 근본적으로 대립과 갈등 (conflict) 관계이다. 인물들 간 갈등 이외에, 주인공과 운명, 또는 주인공과 그가 살고있는 환경, 그의 도덕적 관점, 세계관, 인생관과의 갈등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인물의 마음속 심연에 들어있는 서로 상충된 욕망들이나 가치들 사이에 놓여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소설에서 대립과 갈등은 유부남과 노처녀 간 심리적 갈등이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 도덕적 갈등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소설에서는 주제와 관련된 문제이긴 하지만 작가의 또는 인물들의 ‘인간은 사회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도덕적 주장이나 관점은 도대체 찾아볼 수 없다. 나는 그 소설에서 너무 대놓고 훈계조로 얘기하건 문맥이나 행간에 숨겨놓았건 어떤 의미 있는 메시지나 주제를 찾아볼 수 없다. 그 소설의 keyword나 핵심 문구, 핵심 문장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유명한 명작으로 회자되는 소설이라면 사회적이건 도덕적이건 깊은 의미와 영향력을 지닌 강력한 주제를 표현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발견한 주제라면 오직 천박한 속물들의 행진곡일 뿐이다. 그 소설은, (현대는 문학소설과 대중소설의 구분이 무의미한 시대이긴 하지만) 도저히 정통 문학소설이라고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대중소설류도 아니고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노골적인 불륜문학도 아니다.
그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을 고찰하면 그들은 입체적이고 다층적이고 복잡한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형편없이 저속한 속물들일 뿐이다. 인물들은 폐쇄적인 환경에서 좌절한 상태이고 수동적이다. 플롯을 구성하는 인물들의 적극적인 행동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소설이 독자에게 선사하는 소름돋는 경이의 순간은 없다. 단편일수록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말고 깊이 파고들어야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야기와 주제 (만약 있다면)를 밀고 나갈 동력이 부족하다.
그 소설은 1인칭 사소설이다. 인물들의 눈에 띄는 행동은 거의 없다. 나의 독백과 대사가 지면의 90% 이상을 차지하므로 아주 정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소설 속 장면에는 대화가 필요하다. 서술이나 행동이 필요하지 않는 오직 대화만 있으면 충분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대화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도록 추가 보완하는 서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또 다른 경우는 균형 잡힌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생명력 없는 대화가 한없이 늘어지지 않도록 중간중간에 상황에 맞는 행동이 들어갈 필요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소설의 도입부에 나오는 광주에서 무진읍으로 내려오는 시외버스 안 대화 장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대사는 실제처럼 들리지도 않지만 문학 소설에서 사용되어야 할 고도로 계산된 언어도 아니다. 인물들은 매우 신중하고 조리있게 말하지 않는다. 소설은 보편적이고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다룰 때에도 그의 단 한마디 말속에 우주적인 깊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 하지만 툭툭 내뱉는다. 그저 잡담 수준이다. 훌륭한 대사는 실제보다 더 똑똑하고 재치 있고 은유로 가득하며 더욱 삶의 의미가 넓고 깊게 함축된 메시지가 담겨있어야 한다.
무진기행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중에서 ‘나’ (윤희중)는 서술자이면서 주인공이고 그 반대편에 서있는 적대적 인물은 하인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인숙을 둘러싸고 윤희중과 세무서장 조 (趙), 모교 국어선생 박 (朴)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조가 말했다. “지난 봄엔 그 여잘 데리고 절엘 한번 갔었지.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요 영리한 게 결혼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거야. 무안만 당하고 말았지.” 하인숙이 말했다. “박선생님은 정말 꽁생원이에요.” 윤희중이 말했다. “그 집 주인 부부는 내가 들어 있던 방을 우리에게 제공해주었다. 나는 그 방에서 여자의 조바심을, 마치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으로부터, 누군지가 자기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주지 않으면 상대편을 찌르고 말듯한 절망을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칼을 빼앗듯이 그 여자의 조바심을 빼앗아 주었다. 그 여자는 처녀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들 간 하인숙을 둘러싼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립 구도에서 윤희중이 최후 승자란 말인가?
60년대는 가부장 사회로 남존여비, 남성우월주의 시대였다. 여성은 단지 성적 욕망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시대는 거의 반세기가 지나서 도래했다.
그런데 작가는 무진기행의 작중 인물들을 아주 소홀히 취급했다고 할 수 있다. 작중 인물들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누구든지 정중히 대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의 연결망에 묶여있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그래서 소설 속 배역보다 훨씬 더 심오한 존재들이다. 그저 배경을 채우는 단순한 엑스트라 이상의 존재들인 것이다.
우리들의 삶의 경우이건, 소설이건 간에 인물의 주체성이나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름이다. 그 소설의 인물망에서 주인공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요 인물인 세무서장 조와 모교 국어선생 박 선생님은 이름이 없다 (그들은 그 소설의 구조에서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윤희중과 하인숙의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면서 네 사람의 대립 구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게 60년대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작가의 옛날 단편소설 ‘무진기행’의 주인공들의 그 후가 너무 궁금해서 ‘무진기행, 그 후’를 썼다. 작중 인물인 윤희중(또는 윤기중)과 상대역인 음악 선생님 하인숙 (본명 金惠淑), 고시에 합격하고 세무서장이 된 조성식, 국어 선생님 박치순과 그 아내 등의 인생행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플롯과 구조
그 소설에서 플롯과 구조는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정형화된 파편적인 장면들은 단선적으로 흐른다. 그렇다고 선명하지도 않고 압도적이고 강렬하지도 않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 구태의연하다. 스토리 라인의 뼈대가 되는 플롯을 구성하는 사건들은 1960년에서부터 1964년 6월 사이에 일어난다.
1960년 여름 경인가 (?), 주인공 윤희중은 경리를 보고있던 제약 회사가 큰 다른 회사와 합병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고, 그때 동거하던 희가 도망을 갔으며, 지금 아내의 전 남편이 죽었고, 그래서 실의에 빠진 나머지 고향인 무진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29세였다. 다음 해인 1961년 4월경 (?)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고 그 소설의 문맥과 행간을 읽으면 그 무렵 대회생제약주식회사에 입사해서 간사가 되었고, 1964년 6월 하순 전무 승진을 앞두고 일주일간 여름 휴가를 얻어서 무진으로 내려와 이모님 댁에 머물렀다. 그러니까 불과 3년 사이에 일어난 소설 속 핵심 사항이지만 작가는 그런 중대한 사실을 아주 흐릿하게 간단히 몇 줄로 처리해버렸다. 그래서 인과관계의 연쇄가 허술하기 때문에 소설의 기초는 아주 허약하다.
왜, 그 소설의 도입부에 나오는 데드롱 직 바지를 입은 농사 관계 시찰원들의 시외버스 안 대화 장면이 필요했을까? 왜, 번거롭게 서울에서 광주까지 기차로 내려가고 다시 광주에서 순천 (무진읍)까지 버스로 내려가야만 했을까? 서울에서 순천까지 기차를 타고 바로 내려가면 되는데 말이다 (순천역은 주요 철도역이다. 그 당시에는 서울에서 순천까지 완행열차와 통일호 열차가 있었다). 60년대라면 광주에서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자주 있지도 않았지만 5시간가량 걸렸다. 버스 안에서 시찰원들의 무진을 설명하는 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소설에서 인물들의 생생한 대화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야기의 속도를 올려주면서 스토리 라인을 전진시킨다.
한때 독서광이었던 나를 그 후배는 무척 존경하는 눈치였다. 그는 학생 시대에 이른바 문학소년이었던 것이다. 미국 작가인 피츠제럴드를 좋아한다고 하는 그 후배는 그러나 피츠제럴드의 팬답지 않게 아주 얌전하고 매사에 엄숙했고 그리고 가난하였다.
왜 하필 피츠제럴드였을까? 그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 소설의 전성기 시절 작가들인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안톤 체홉, 찰스 디킨스, 알렉상드르 뒤마, 오노레 드 발자크, 빅토르 위고 등이 널리 알려져 있었고, 미국 작가로는 피츠제럴드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와 동시대인인 헤밍웨이, 「대지의 집」 3부작으로 노벨상을 받은 펄벅이 유명했다. 왜 박 선생은 피츠제럴드의 팬 답지 않게 아주 얌전하고 매사에 엄숙했는가?
집 주인 부부는 내가 들어 있던 방을 우리에게 제공해주었다. 나는 그 방에서 여자의 조바심을, 마치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으로부터, 누군지가 자기 손에서 칼을 빼앗아주지 않으면 상대편을 찌르고 말 듯한 절망을 느끼는 사람으로부터 칼을 빼앗듯이 그 여자의 조바심을 빼앗아주었다. 그 여자는 처녀는 아니었다. 우리는 다시 방문을 열고 물결이 다소 거센 바다를 내려다보며 오랫동안 말없이 누워있었다.
그게…… 6월 하순 한여름 뜨거운 대낮 골방에서 집주인 부부가 마당에서 서성거리는데 한차례 섹스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들간 첫 섹스인데 말이다. 첫 섹스는 항상 어렵다.) 아무튼 유교적 도덕 관념이 지배한 60년대 한국적 정서에서 보자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우리는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 괴롭게 웃었다. 나는 그 여자의 프로필을 훔쳐보았다. 그 여자는 이제 웃음을 그치고 입을 꾹 다물고 그 커다란 눈으로 앞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고 코 끝에 땀이 맺혀 있었다.
왜 갑자기 프로필이 나오는가? 그 문단의 문맥이나 문장의 리듬에 비추어보면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단순하게 ‘얼굴’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갑자기 맥락도 없이 불교도가 튀어나오는가? 그리고 한 문단에서 네 번의 시계 소리와 일곱 번의 사이렌 소리가 나온다. 반복을 너무 자주 하여 문장이 늘어지면서 리듬이 깨지는데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의미를 전달하지도 않는다. 언어의 유희라기보다는 그저 말장난에 가깝다.
왜 하필 제약 주식회사인가? ‘나’는 경리 전공이고 제약 관련 업무가 아닌데 말이다. 여러분은 그 소설 속 몇몇 문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설에는 세 개의 주식회사가 등장한다. 윤희중이 경리 일을 보았던 작은 제약회사, 그 회사를 흡수합병한 좀 더 큰 제약회사, 윤희중이 현재 간사 (?)로 있는 대회생제약주식회사가 있다. 다만 좀더 큰 제약회사와 대회생제약주식회사가 같은 회사인지 다른 회사인지는 (문맥이건 행간이건 간에) 파악할 수 없다. 흡수합병 당시 윤희중이 쫓겨난 것을 보면 별개의 회사로 보인다. 또한 고등고시가 나오고 법률책이 나오며 어려운 법률용어인 주식회사, 간사 (혹은 감사), 전무, 합병, 주주총회 등의 단어가 등장한다. 그것들은 그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keyword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소설을 쓸 당시에는 물론이고 그 후 60년 동안 그들 단어의 개념을 전혀 알지 못했고 그렇다고 연구 검토한 흔적도 없다. 작가는 자신이 쓰는 작품 속 단어나 용어의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단어의 개념조차 모르면서 쓴다면 그건 독자를 속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간사 (幹事)
큰 제약회사의 간사님이시고
우리나라 회사에서 간사란 직급은 없다. 거의 예외 없이 사원, 계장,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상무, 전무 등의 순서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보통 동창회나 친목 모임, 무슨 위원회는 회장이나 위원장 밑에 실무를 담당하는 총무 또는 간사를 둔다. 나는 대한변협의 변호사연수원에서 10년 동안 간사를 했고 「인권과 정의」 편집위원회에서 오랫동안 간사를 하다가 위원장이 되었다.
작가는 그 소설을 쓸 당시 간사와 감사를 혼동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간사와 상법이 규정하는 감사 (監事)는 엄연히 별개의 개념이다. 감사는 주식회사의 필요적 상설 기관이고 주주총회에서 선임된다.
(그는 영화 대본으로 각색하면서 간사를 상무로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는 60년 동안이나 정정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는가?)
전무 (專務)
…… 당신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쐬고 그리고 돌아와보면 대회생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되어있을 거 아니에요. …… 전무님이 되면 책임이 더 무거워질테니 말야. …… 나는 나를 전무님으로 만들기 위해서 전무 선출에 관계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 호걸웃음을 웃고 있을 장인영감을 상상했다.
일반적으로 회사의 경영진 중 상무(常務)보다 높은 직급을 의미한다. 보통 대기업의 직급 체계는 회장 - 부회장 - 사장 - 부사장 - 전무 - 상무로 내려간다. (2000년대 초반부터 회사의 직급을 단순화하면서 오래전 일본에서 건너온 전무라는 용어가 대부분 사라지고 있다. 은행이나 금융 기관의 경우 오랫동안 전무직이 있었지만 그 무렵부터 없어진 것이다.) 전무직은 사실상 평직원들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 직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전무는 회사의 등기 임원이 아니라 비등기 임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소설에서도 스토리 라인의 진행 과정과 문맥을 살펴보면 비등기 임원이라고 할 수 있다. 등기 임원은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막강한 권한과 함께 ‘이사의 충실의무’라는 막중한 책임을 부담하므로 회사의 오너급 인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상법 중 회사법 등에는 전무에 관한 규정이 전혀 없다. 따라서 전무를 임명하기 위해서 주주총회를 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전무의 선임은 주총의 안건이 될 수 없다. 회사의 대표이사가 (또는 회사의 오너인 회장님이)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전무로 승진시켜 임명하면 그만인 것이다.
합병 (合倂)
무진기행에서는 1960년경 (1964년 6월에서 4년 전이니까, 그리고 29세 때인) 주인공 윤희중이 경리 일을 보고 있던 작은 제약회사가 큰 회사와 합병되는 바람에 쫓겨나서 백수가 되고, 동거하던 희가 도망가고, 현재의 처 (‘영’)의 전 남편은 때마침 죽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무진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주식회사의 경우 합병이란 상법이 규정하는 절차에 따라 두 개의 회사가 합병계약에 의하여 청산절차를 거치지 않고 하나의 회사로 합병하는 법률사실이다. 따라서 합병에 의하여 당해 회사의 일부 또는 전부가 해산되고, 회사의 재산과 사원이 존속회사 또는 신설회사에 포괄적으로 이전 승계된다.
합병을 하면 신설합병의 경우에는 당해 회사 전부가, 흡수합병의 경우에는 존속회사를 제외한 나머지 회사가 해산하게 된다. 해산을 하더라도 소멸회사의 재산이 신설회사 또는 존속회사에 그대로 승계되므로 청산절차를 밟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윤희중의 작은 회사가 합병되었지만 그게 흡수합병인지 신설합병인지 나타나 있지 않지만 윤희중이 쫓겨난 것을 보거나 문맥을 보면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흡수한 흡수합병으로 보인다.
주주총회와 주주총회 소집절차
…… 주주총회에서의 일은 아버지하고 저하고 다 꾸며 놓을게요. …… 나를 전무님으로 만들기 위해서 전무 선출에 관계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 27일회의참석필요. 급상경바람. 영
[아내 ‘영’과 ‘나’는 애시당초 무슨 관계였을까? ‘나’는 일자리를 잃고 동거하던 ‘희’가 도망갔는데 그때 하필 ‘영’의 전남편이 죽었고 (어떻게 죽었을까? 교통사고 아니면 암으로……?), ‘나’는 무진으로 잠시 내려왔으며, 그다음 해 그들은 결혼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부터 알고 지냈으며 (?) 그동안 어떤 관계였을까 (?) 불륜 관계 아니면 단순한 지인 관계 (?). 어떻게 해서 ‘영’의 남편이 죽은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 그런 것들이 소설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작가는 그걸 상세히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게 물밑에 있는 빙산의 실체처럼 소설의 이면에 숨어 있는 실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 속 맥락이나 행간을 읽어보면 그 작가가 그런 걸 구상했거나 또는 알고 있었다는 흔적은 전혀 없다.]
주주총회는 상법 또는 정관에 정하는 사안에 한하여 결의할 수 있다 (상법 제360조). 상법은 주주의 이해에 특히 중대한 관계가 있는 사항은 주주총회의 권한으로 하고 있다. (1) 회사의 기구나 업무의 기본에 관한 사항 (정관변경, 자본감소, 해산, 회사의 계속, 영업의 양도 또는 양수, 합병계약의 승인) (2) 기관 구성원의 선임이나 해임 (3) 회사의 운영과 주주의 이익을 위한 사항 (주주총회의 연기 속행, 제무제표의 승인, 사후설립, 이사 청산인의 위법행위의 면책, 전환사채의 발행) 등이 있다.
주주총회를 소집함에 있어서는 주주에게 출석의 기회와 준비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기명주주에 대해서는 회일의 2주간 전에 서면 으로 통지를 발송하여야 하고 (상법 제363조 제1항), 무기명주주를 위해서는 통지 대신에 회일의 3주간 전에 공고를 하여야 한다 (상법 제363조 제3항).
그 소설에서는, 이모는 전보 한통을 내게 건네주었다. 엎드려 누운 채 나는 전보를 펴보았다. ‘27일회의참석필요, 급상경바람 영’, ‘27일’은 모레였고 ‘영’은 아내였다. 라고 나온다.
전술한 것처럼, 주주총회는 주주총회일의 2주간 전에 서면으로 발송해야 되기 때문에 그 날짜가 이미 확정되어 있다. ‘나’는 확실하게 그 날짜를 알고 잠시 휴가를 얻어 무진으로 내려왔다.
도대체 황망하게 전보를 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제 저녁 서울역에서 기차를 탈 때에도, 물론 전송 나온 아내와 회사 직원 몇 사람에게 일러둘 말이 너무 많아서 거기에 정신이 쏠려 있던 탓도 있었겠지만 …… ‘나’는 분명히 주총의 날짜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주총회 준비를 위해서 회사 직원 몇 사람에게 일러둘 말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주총은 회사의 연중 행사 중에서 대외적으로 가장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 소설에는 일주일이라는 단어가 여러번 나온다. ‘자네 한 일 주일 동안 시골에 내려가서 긴장을 풀고 푹 쉬었다가 오게.’, ‘당신 안색이 아주 나빠져서 큰일났어요. 어머니 산소에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무진에 며칠 동안 계시다가 오세요. 주주총회에서의 일은 아버지하고 저하고 다 꾸며놓을게요.’, ‘여기엔 얼마쯤 있게 되나?’ ‘일 주일 가량’, ‘전 선생님께서 여기 계시는 일 주일 동안만 멋있는 연애를 할 계획이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그런데 왜? 그 전보가 필요했던 것인가? ‘나’는 일주일 후 상경할 날짜를 알고 있었으니까 이미 그 날짜 순천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표 예매까지 했을 것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리스 비극에서 작품이 막힐 때, 복잡하고 급박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클라이맥스에 다다랐을 때, 작품을 갑작스럽게 종결하면서 어떤 우화적인 장치나 신화적인 장치에 의존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해서 작가로서는 무책임한 일이지만 꽉 막힌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궁지에 빠진 작가가 궁여지책으로 플롯을 해결하는 무리한 기법인 것이다.
전통적인 리얼리즘 소설에서 좋은 소설이란, 무려 2천여 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것처럼 처음, 중간, 결말이 있다. 그래야만 소설의 토대가 튼튼해진다. 물론 현대에 와서 많은 소설들, 특히 실험소설류의 소설들은 뒤죽박죽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아예 플롯 자체를 무시(또는 경멸)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야기 (또는 플롯)에서 어설픈 끝내기는 세 가지가 있다.
그럴 경우 이야기는 생명과 영향력이 단절된다. 어설픈 끝내기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너무 이른 끝내기, 멋대로 끝내는 끝내기, 그리고 닫혀버린 끝내기이다.
멋대로 끝내는 끝내기는 스토리가 그냥 갑자기 끝나버리는 것이다. 대부분 개연성, 핍진성, 필연성이 결여된 플롯을 가질 때 이런 일이 생긴다. 독자는 허망하다. 이 경우 독자는 무언가가 결실을 맺었거나 진행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 우연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사용해야 한다. (그 소설이야말로 제멋대로 끝내기를 한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끝내기는 닫힌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인생여정이 그런 것처럼 이야기도 그렇게 단순히 닫혀버릴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이란 종류가 다양하고 무한정해서 그렇게 쉽게 멈춰질 수 없다. 그러므로 평온과 안정 역시 일시적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제부터 인물이 자기 삶에 만족할 거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위대한 이야기일수록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결말은 마지막도 아니고 확정된 것도 아니다.4)
5. 김승옥이라는 사람이 소설가로서 1백 년 이상 기억되기를 바랬어요.
김승옥 작가는 군대를 갔나? 안갔나?
김승옥 작가는 동아일보와 인텨뷰에서 1960년에는 군인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군인이 없는 사회가 됐다고 했다. 군인은 군사정권이라는 설명도 추가로 곁들였다. ‘세상이 좋게 변한 것이냐’고 되묻자 그는 이번에는 “그럼”이라고 명확히 육성으로 답했다.
그는 자신은 군대에 갔다오지도 않았으면서도 1960년대의 군사독재정권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중학교 시절부터 배구부에서 활동을 했는데 학교 대표로 배구 시합도 나가곤 했어요. 그때 배구를 시작한 것이 순천고등학교 시절까지 이어져 고교시절에도 학교 대표 배구선수로 활동을 했죠. 고등학교 시절 내내 학생회장을 맡기도 했고요.
……동생 김영옥과 김상옥도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요.
그는 순천고에서 배구부장을 했을 정도로 건장한 체격에 아주 신체 건강한 청년이었다. 더욱이 형제들도 두 명이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무렵 군 입대를 면제받을만한 사유가 없었다.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그가 말했었다. “…… 그 학기만 마치면 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하고 있을 때였고, 군에 입대하기 전에 ‘물건 하나 만드는 기분으로’ 한 편 써보자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대한민국 남자 모두가 헌법이 규정한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헌법 제39조) 의무적으로 가는 군대에 갔는가, 안 갔는가? 만약 가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의 약력이 자세히 나오는 민음사의 「무진기행」이나 문학동네의 「무진기행」 또한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에서도 군대 갔다 왔다는 사실은 찾을 수 없다. (내가 조사 확인한 바에 의하면 군대는 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내가 알고 있는 문단 지인들은 내가 “그 작가는 군대를 안 간 것 같더라고.” 말하자,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그럴 리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뭘 추측할 수 있을까?
그의 소설에서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김승옥의 대표작인 「서울 1964년 겨울」에서 25살 동갑인 ‘나’와 ‘안(安)’은 서로 다른 계층을 대변하는 인물이지만, 1964년 겨울 서울의 하늘 밑에 있다는 사실에서 공동의 운명을 감당해야 한다. 고졸의 시골 출신으로서 구청 병사계 직원인 ‘나’와 대학원생으로서 부잣집 장남인 ‘안’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서 같은 지점에 도달”한 젊은이들이다. 구청에는 병사계 말고 총무계, 호적계, 농정계, 산업계 등등이 있었는데 (나는) 왜 하필 병사계 직원이었을까?
그 소설에 의하면, 6 · 25사변으로 대학의 강의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서울을 떠나는 마지막 기차를 놓친 나는 서울에서 무진까지의 천여 리 길을 발가락이 몇 번이고 불어 터지도록 걸어서 내려왔고 어머니에 의해서 골방에 처박혀졌고 의용군의 징발도 그 후의 국군의 징병도 모두 기피해버리고 있었다. 내가 졸업한 무진중학교의 상급반 학생들이 무명지에 붕대를 감고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을 부르며 읍 광장에 서 있는 트럭들로 행진해 가서 그 트럭들에 올라타고 일선으로 떠날 때도 나는 골방 속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들의 행진이 집 앞을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가고 대학이 강의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도 나는 무진의 골방 속에 숨어 있었다.
6 · 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했다. 그러니까 ‘내’가 6 · 25 사변으로 대학의 강의가 중단되어 서울을 떠나는 마지막 기차를 놓친 시점은 1950년 7월 초순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군경은 기피자를 색출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그는 (군 기피자가 되어) 어떻게 무진의 골방 속에 숨어 있을 수 있었을까?
작가는 언제든지 솔직해야 할 것이다. 미국 현대 단편 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한 소설가 앤드류 포터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친절함 (Kindness), 작가로서는 솔직함 (Honest)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이야기
무진기행은 총 3차례 영화화되었다. 3번 모두 그 작가가 직접 각색했다. 그러므로 영화는 그 소설의 연장선상에 있고 또 다른 변주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영화는 1967년 개봉작이자 흑백영화인 ‘안개’. 감독은 김수용, 주연배우는 신성일과 윤정희. 이 영화에서는 몇몇 부분이 바뀌었다. 소설 속 나는 ‘윤희중’에서 ‘윤기중’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특히 소설 속 ‘간사’를 ‘상무’로 바꾼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소설 속 간사가 잘못된 용어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정하지 않고 있는가? 그렇다면 독자를 우롱한 것이 아닌가?) 아무튼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작품중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두 번째 영화는 1974년 ‘황홀’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남자주인공은 남궁원으로 바뀌었지만 여주인공은 역시 윤정희가 맡았다.
세 번째 영화는 1986년 ‘무진 흐린 뒤 안개’. 이 작품은 무진기행의 원작을 그대로 따라갔던 앞의 두 영화와는 달리 소설 속 여자 주인공 하인숙이 윤기준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주변을 맴도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그 영화는 요즈음 막장 드라마의 원조가 된 것이다.
……소설 가지고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고 또 영화 쪽이 소질에 더 맞는 것 같았어요. 영화감독을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아내는 영화계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보고는 적극적으로 말렸죠. 당시 대종영화상 각본상도 받고 내가 감독한 김동인 원작 소설 「감자」가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고 프랑스 르몽드지에 크게 소개되기도 해서 영화 쪽에 자신감을 갖고 돌진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내의 반대가 필사적이어서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겨울여자’, ‘영자의 전성시대’, ‘장군의 수염’등 시나리오 쓰는 일로 후퇴했는데, 원고 쓰는 일만 가지고선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월간잡지 샘터사의 편집부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문학평론가 여러분!?
잘근잘근 씹으세요. 그러고 나서 내뱉으세요.
그 작가는 여태까지 평론가들로부터 심하게 두들겨 맞은 일이 없었다. 원래 비평가는 작품을 통해서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중재자이지만. 그런데 비평은 누굴 위해 쓰는가? 작가? 독자? 제3자 (같은 비평가)? 자기 자신을 과시하기 위하여? 비평가가 판관의 지위에서 검증을 하는 시대는 진즉 지나갔다. 그들은 가끔 읽지도 않은 책을 칭찬하는 속물들이다. 비평가는 생각보다는 잘 모른다. 작품의 내부를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비평하는 사람보다 더 잘 안다. 비평은 쉽고 예술은 어렵다 (S. 보부아르). 한 사람의 작가를 비평하는 것은 쉽지만 그 작가의 진가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I.C. 보브나르그). 비평은 예술가의 명성에 한 몫 끼려고 하는 비평가가 동원하는 기술이다 (G.J. 네이션). 작품을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는 사람이 분명히 비평은 할 수 있다 (J.R. 로웰).
단편 하나 가지고 감수성의 혁명 운운했다. 왜 무진기행을 비평하면서 오디세우스가 나오고 아도르노 (Adorno)와 호르크하이머 (Horkheimer)의 「계몽의 변증법」이 인용 또는 원용되는가?
(아주 흔해 빠진 클리셰인) ‘나’는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일주일 간 짧은 여름 휴가를 얻어 무진으로 내려왔는데, 그걸 세계사적 사건인 오디세우스 (Odysseus)의 여행과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오디세이는 인류 스토리텔링의 역사상 가장 예술적이고 영향력 있는 그리스 신화로 평가된다.)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과도하게 호들갑을 떨었다. 자기 과시를 위한 현학적이고 지나친 과잉해석을 넘어서 가당치도 않은 견강부회 (牽強附會)라고 할 수 있다.
누구 하나 비평다운 비평을 하지 않았다. 비평이 그렇게 가벼워도 되는가? 그게 그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우리 문단에도, 우리 국문학계에도, 독이 되었을 뿐이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상찬했다.
김승옥은 생존하는 작가이지만 24편 정도의 소설을 썼을 뿐이다. 그리고 1962년 등단한 이래 1980년 절필하기까지 짧은 창작 기간 동안 초기의 명성을 능가하지 못했는데도 여전히 후배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한국 문학의 지형을 180도 바꾸어 놓은 작가로 평가된다. 60년대 한국 소설에서 김승옥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최인훈의「광장」의 경우 마치 성경이라도 되는 것처럼 상찬을 거듭하면서 주례사 비평을 쓴 논문, 서평, 에세이 류가 거의 200편을 넘는다. (그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역사적 인물, 사건, 실재를 왜곡, 조작, 부정, 무시했다. 그런 류의 또 다른 소설로는 김경욱 교수의 「나라가 당신 것이니」가 있다. 그건 독일의 골수 극우 분자들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들 소설은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니라 정통 리얼리즘 소설이고 역사소설이고 명제소설이다. 다시 말하면 SF소설, 판타지, 신화, 전설, 노골적인 코미디물이 아니다. 그들은 진실을 왜곡 조작 부정하는 짓이 소설가의 천부적 특권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에 관한 것들이 70편이 넘는다. 무진기행 역시 법률의 강행규정을 무시하고 상식에 벗어나고 타당성도 없는 장면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힐러리 맨틀은 먼저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조사한다. 그런 다음 역사 속 빈 부분을 그럴듯한 내용으로 채운다. 이것이 힐러리 맨틀이 역사소설을 쓰는 방식이다. 헤밍웨이는 작가가 인물이건 장소이건 모델을 묘사할 때는 그 모델을 아주 정확히 묘사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게 독자를 기만하지 않는 거라는 거다. 움베르트 에코는 무엇보다도 소설을 쓰는데 있어 글을 쓰는 작업은 나중에 한다. 먼저 책들을 읽고, 카드들을 작성하고, 등장인물들의 초상화와 장소의 지도들, 시간적 연쇄의 도식들을 그린다.
그렇다. 세계적인 작가들은 그렇게 소설을 쓴다.
작가로서 열정이 있었나
그는 인터뷰 기사에서 말했다.
“예전에는 김승옥이란 사람이 소설가로서 1백년 이상 기억되기를 바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 가지가 더 늘었네요. 스스로 체험하고 만난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열심이었던 사람. 그렇게 두 가지에 열심이었던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순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에 입학했죠. 사실 제가 불문학과에 지망한 이유는 문학과는 관련이 없었어요. 영어나 독일어는 고등학교에서 배웠으니 새로운 언어인 불어를 배워서 외교관이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었거든요. 그게 제가 불문학과를 지망한 이유에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와서 보니까 외교관이 되겠다고 들어온 사람은 저 하나뿐이더라고요. 모두 문학을 하겠다고 들어온 사람뿐이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된 문학평론가 김현이라든가 김치수 같은 동기들 모두가 온통 문학을 하겠다는 분위기인데 저 혼자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사실 저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기 위해 문학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요. 문학을 좋아하고 글 같은 걸 쓰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취미였지 장차 문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죠. 그렇다고 다른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요.”
그는 너무 일찍 출세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21살 때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명연습’이 당선되어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했고 1965년 서울대를 졸업할 무렵 제10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니까. 하지만 전성기 시절인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쓴 소설은 거의 전부 단편소설이었고, 장편소설은 「주간여성」에 연재된 「보통 여자」단 한 편뿐이었다.
그의 전성기는 60년대로 한정된다. 그것도 소설의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장편은 (부실한 소설로 알려져서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단 한 편에 불과하다. (세계 소설계의 주류인 영미에서는 단편소설은 제대로 된 소설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물론 몇몇 단편을 주로 쓰는 작가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극히 소수이다. 단편은 일종의 에세이류 같은 가벼운 것으로 취급해서 장편 작가들이 막간을 이용해서 쓴다고 한다.)
그는 작가로서 재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적 열정은 없는 소설가였다. 저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기 위해 문학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요. 인내심이야말로 성공한 작가와 실패한 작가의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출판사로부터 계속 거절을 당하면서 여러 해를 보내고 나서 책을 출간한 작가들도 많다. 그들 작가는 그러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진지하고 성실한 작가였기 때문에 계속 소설을 쓴 것이다.
어떤 미국 작가는 ‘장편 소설가 (novelist)는 중간에 때려치우지 않는 사람이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잘나갔기 때문에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해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 원고 의뢰가 줄을 섰을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작가적 열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인내심도 있을 리가 없다. 그는 가난 때문에 배를 곯아가면서 하찮은 밑바닥 직업을 전전하고, 출판사로부터 온갖 냉대를 당하고, 다시 말하면 원고를 퇴짜 맞고,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면서까지 소설을 쓸 생각은 꿈에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소문으로 들었지만 (하지만 그 소문의 진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사상계사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는데 마감에 맞추지 못해서 쩔쩔매었다고 한다. 그래서 급하게 쓴 게 무진기행이었는데 겨우 완성하고 나서도 자신이 없어서 그 무렵 글깨나 쓴다는 동인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이게 무슨 소설이냐, 차라리 찢어버려라’ 라고 하면서 한결같이 지나치게 신파 같다고 혹평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잃은 작가는 쓰레기통에 던져 넣을까까지 생각했는데 ‘작품이 좋지 않으면 싣지 말라며 다음에 더 좋은 작품을 보내겠다’는 추신을 덧붙여 편집장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그 잡지에 게재 후 작가는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도 (문청 시절에 쓴 습작품 같은 소설에 불과한데) 너무 과도하게 주목을 받았다.
작가란 자기가 쓴 작품에 의해서 평가받는다. 그렇다고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은 작품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외면할 수도 없다. 작품 속에는 삶의 흔적들이 명백하게 혹은 희미하게 소설의 맥락이나 행간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소설은 작가의 자서전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는 젊은 시절 작가적 감각 또는 재능이 뛰어났다.
화려한 멋진 장식에 목을 매달았다. 에둘러 표현할 줄은 몰랐지만 독특한 목소리와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빙빙 돌려서 과장됐고 수사적이었다. 간결하지 않았다. 정말 소설스러웠다. 독자와 의사소통을 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당시에는 고 마광수 교수가 지적한 대로 우리 소설들의 문체, 문투가 여전히 일본식이었으나 무진기행의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열광할만했다. 정서적 충격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걸 가지고 ‘감수성 혁명’ 운운하면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말이다. 그는 너무 일찍 작가의 고유성을 확립한 것이다.
그는 60년대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시절 소설을 썼다. 그때는 가부장제 사회로 남성우월주의, 남존여비의 시대였다. 여성은 단지 성적 욕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거의 들을 수 없는 시대였다.) 그는 남존여비 사상에 투철한 이성애주의자로 남성의 시점에서 소설을 썼다.
아무튼 그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그 엄혹한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한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없다. 60년대의 시대정신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녹아들어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그 시절의 독특한 풍경이나 세태를 세밀하게 묘사해서 보여주지도 못했다.
그 시절, 엄중한 현실세계는 그에게 작가의 출발 지점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실제 사회를 천착해서 소설을 쓴 것이 아니므로 실존주의자라고 할 수도 없다.
윤리적 소설이나 정직한 소설을 썼다고 할 수는 없다.
그의 소설들은 6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사상적, 이념적, 정치적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쪽으로 해석될 여지도 전혀 없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고민도 없었고 좀 더 큰 주제들인 선과 악, 삶과 죽음, 고통의 문제를 다루지도 않았다. (물론 그가 소설을 쓴 시기는 20대에서 30대 초반 젊은 시절이었으므로 그런 심각한 삶의 쟁점을 다루기에는 시기상조였다고 할 수는 있다.)
60년대는 국내적으로는 남과 북이 극렬하게 대치하고, 국제적으로는 민주진영과 공산진영 간 이데올로기 대립이 치열했던 시대였다. 하지만 그는 흔히 사회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는 소설인 명제소설 (thesis novel)을 쓴 것도 아니었다. 그런 형식의 소설은 사회 경제, 정치, 이념, 또는 종교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그래서 사회학적 소설 (sociological novel), 정치 소설 (political novel), 선전 소설 (propaganda novel)이라고도 한다.
그의 소설들은 대부분 뿌리 깊은 주제가 없거나 희미하다. 그래서 사회와 삶을 지탱해주는 깊은 의미를 함축한 도덕적 가치, 인생관, 세계관이 들어있지 않다. 무진기행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전형적인 속물들이다. 속물 근성이 뼛속까지 사무쳐있는 것이다. 그래서 값싼 감상주의가 만연한 속물 소설인 것이다.
나는 냉정하게 혹은 냉혹하게 평가하고자 한다.
그렇게 작가로서 열정과 의지가 없고 불성실했던 소설가라면, 그래서 젊은 시절 불과 24편의 단편소설만 쓰고 나서 (안톤 체홉처럼 700여 편이 넘게 단편을 쓴 것도 아니다) 절필하고, 잠깐 반짝했던 소설가라면 젊은 후배 작가들의 모델이 될 수도 없고 귀감이 될 수도 없다. 그는 실패한 작가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소설가가 되려다만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 쪽에 더 소질이 더 맞는 것 같아요”라고 했는데) 영화인으로 성공한 것도 아니다. 인생에서 실패한 것이다.
백 년 이상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는 과욕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1) 동아일보 2024년 4월 5일 신문 (제31906호)
hic@donga.com, laputa@dong.com
(2) 유중원, 중편소설「무진기행, 그 후」
https://blog.naver.com/jungwon4760/223368886232
(3) 「무진기행」, 세계문학전집 149, 민음사, 2010년.
(4)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 문학동네, 2004년.
(5) 김미현, ‘서울의 우울 – 김승옥론’,
‘무진기행 – 오디세우스의 항해와 귀환’
(6) 신경숙, 내가 읽은 김승옥 ‘스무 살에 만난 빛’
(7) 움베르트 에코,「움베르트 에코의 문학강의」, 열린책들, 2005년
(8) 윌리엄 L. 스털 · 마셜 브루스 젠트리 ·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의 말」, 마음산책, 2024년
(9) 로이스 타이슨 지음, 윤동구 옮김,「비평이론의 모든 것 Critical Theory Today」, 앨피북, 2019년.
(10) 조셉칠더스 · 게리 헨지 엮음, 황종연 옮김, 「현대 문학 · 문화 비평 용어사전」, 문학동네, 2014년.
(11) 존 트루비, 「스토리 마스터 클래스」, 한스미디어, 2024년
(12) 한용환, 「소설학사전」, 푸른사상사, 2016년.
(13) 유중원, 「최인훈의 「광장」 다시 읽기」, 시선사, 2020년.
(14) 유중원, ‘최인훈의 「광장」을 어떻게 재평가 할 것인가’
‘소설이란 무엇인가’
‘문학에서 잘라내기’
‘독자의 (공개) 편지, 김경욱 작가의 소설 「나라가 당신 것이니」를 읽고 나서’
https://blog.naver.com/jungwon4760
(15) 나무위키
(16) 위키백과
(17) NAVER 지식백과
1) 미국 단편소설 작가 레이먼드 카버가 말했다. “…… 소설들은 아예 자서전이라고 봐도 돼요. 물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소설로 쓸 때는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해요, 엄청나게 과감해야 하고, 상당한 기교를 갖춰야 하고, 상상력이 풍부해야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모든 걸 말하겠다는 능동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2) 김기림 시인은 1930년대 초반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특히 시 창작과 비평에 관심이 많았다. 1933년 구인회에 가담하고 1936년 일본 도호쿠 대학에 입학했다. 아이버 리처즈의 주지주의적 문학론에 근거해서 모더니즘의 새로운 경향에 따라 작품을 창작했다. 1936년 첫 시집 「기상도」를 출판했다.
3) 1971년 평론가로 등단한 권영민 교수가 말했다. “요즘 문학비평이 일반 독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는, 객관적 비평이 사라지고 주관적 독단에 빠져든 비평이 난립했기 때문이고 논리도 체계도 없이 정치성에 치우친 자기주장에만 매달린다면 비평은 한낱 개인적 의견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
4) 존 트루비, 「스토리 마스터 클래스」, 한스미디어, 2024년
5)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배경을 철학적 관점에 의해서 고찰할 수도 있다. 경험론은 경험되지 않은 것이나 초감각적 실체는 인지할 수 없다고 하면서 ‘주체가 對象을 향한다’고 주장한다. 칸트의 감성론, 미학과 합목적성 이론 역시 美의 본질을 논할 때 핵심은 대상의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모든 대상은 항상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해서만 출현할 수 있다. 소설에서도 이야기 세계 또는 미적 아름다움의 대상은 시간과 공간의 배경 없이는 存在가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아름다운 대상은 딱 맞는 시간에 딱 맞는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존재가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모든 實在는 시공간을 초월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배경 없이는 이야기 세계 역시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6) 세무서장 조는 1964년 기준으로 하여 재작년엔가 고등고시에 패스한 것으로 되어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고등고시령이 제정 공포되면서 고등고시 행정과와 고등고시 사법과가 시행되었다. 행정과는 지금의 행정고등고시, 외무고등고시로 이어졌다. 하지만 1963년 5월 29일 고등고시령이 폐지되면서 고등고시 사법과는 사법시험으로 대체되었고 고등고시 행정과는 3급공개경쟁채용시험으로 바뀌었다가 1973년 공무원임용시험령이 개정되면서 다시 행정고등고시가 되었다.
7) 60년대 전반기에 발표된 두 편의 소설, 최인훈의 중편소설 ‘광장’과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은 그 후 60년 동안 우리 문단을 지배한 최고의 명작으로 회자되었다. 광장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18종 중에서 14종에 수록되었고 수능시험에 3번이나 출제되었다. 그들 작품은 모두 작가들이 20대 초반 작가 초년병 시절에 쓴 습작품에 다름 아닌데 60년 넘게 과도한 평가를 받았다. 어떻게 해서 그게 가능했을까? (유중원의 문학평론집, 「최인훈의 「광장」 다시 읽기」, 시선사, 2020년 참조. https://blog.naver.com/jungwon4760/222366027268)
8) 유중원, ‘문학에서 잘라내기’ 참조 https://blog.naver.com/jungwon4760/223434078477
9) 태종 13년에 순천도호부를 두었고 고종 32년에 순천군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1년 11월 1일 순천군 순천면이 순천읍으로 승격되었고 1949년 8월 13일 도사면 9개 리와 해룡면 일부를 편입해서 15일 순천시로 승격하고 그 외 지역은 승주군으로 남았다. 1995년 1월 1일 순천시와 승주군을 통합하여 새로운 순천시가 되었다. 그런데 작가는 인구 5~6만의 무진읍이라고 했다. 순천시를 무진읍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읍은 면이 승격하는데 인구기준은 2만 명 정도이다. 그는 왜 무진시라고 하지 않고 무진읍이라고 했는가?
10) 유중원, 중편소설 ‘무진기행, 그후’ 참조. https://blog.naver.com/jungwon4760/223368886232
11) (무진기행의 첫 문장에 나오는)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가다’라는 문장은 어떤 대상과 상황을 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거기에는 수없이 많은 틈들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버스의 크기는 얼마나되며, 그 색깔은 노랑인가 빨강인가, 또 거기에 몇 명의 승객이 타고 있는가, 그리고 산모퉁이의 산은 야산인가 큰 산인가, 그 산 옆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는가. 버스는 산모퉁이를 돌아 어디를 가고 있는가. 현재 서술자는 버스 안에 있는가, 밖에서 버스를 바라보고 있는 위치에 있는가 - 상상할 수 있는 이러한 모든 자질들은 예의 그 문장 가운데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말하자면 그러한 자질들은 미확정인 채 틈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라는 문장은 앞에서 미확정인 채로 남아 있던 몇 가지의 틈을 메워준다. 그 밖의 자질들은 여전히 미확정인 채로 남아 있다. (한용환 저, 「소설학사전」, 푸른사상사, 2016년)
12) 유중원, ‘무진기행, 그후’ 참조 https://blog.naver.com/jungwon4760/223368886232
13) 여기에서 인과관계는 일상생활 속에서, 상식적인 선에서 또는 소설 속 스토리 라인이라는 관점에서 인과관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철학에서 말하는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의 대립 이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결정론에서는 모든 사건은 우연이나 선택의 자유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인과관계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14) 여행소설의 플롯 구성에 관한 전통적 이론은 길을 떠날 때는 길게 상세하게 기술하고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돌아오는 이야기는 짧게 단발적으로 해야한다고 했다 (당신은 무집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 소설은 이러한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5) 펄벅 여사는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하여 한국 관련 소설도 썼다. 한국 농촌을 배경으로 쓴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는 1881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말까지 한국 상류 가정의 변천을 묘사하고 있다. 한국의 혼혈아를 소재로 한 소설 「새해」를 쓰기도 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무명의 어머니를 통해서 영원한 모성상을 그린 「싸우는 천사들」 이 있다. 대한민국을 방문하였을 때 스스로 박진주(朴眞珠)라는 한국어 이름도 지었다. 1964년 사회복지법인 한국펄벅재단이 설립되었고 1968년에는 한국 혼혈아를 다루는 「새해 The New Year」가 출간되었다. 펄벅 여사는 1967년 부천시 심곡동에 소사희망원을 설립하여 1973년 삶을 마감하기까지 그곳에서 한국전쟁 고아, 혼혈 아동을 손수 돌보고 미용과 양장기술 등을 교육시켰다. 소사희망원은 1975년 문을 닫았다.
16) 유중원, ‘무진기행, 그후’ 참조.https://blog.naver.com/jungwon4760/223368886232
17) 국회 상임위원회의 간사는 해당 상임위원회의 정당 대표가 된다. 간사는 해당 상임위원회 내 소속 정당 의원들 중 선임하며 원내 정당들의 법안 의견을 간사들이 조율하여 법안 의결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위원장이 위원회의 개회 또는 의사진행을 거부할 경우 위원장이 소속되지 않은 교섭단체의 간사가 위원장직을 대신할 수도 있다. 언론사 같은 곳에서도 간사라는 직함을 달고 업무를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청와대 출입기자단에는 간사가 있다. 개신교 교회에서 일하는 간사는 교회의 일 중 일부를 위임 받아서 일하는 신도를 말한다. 교회의 사무를 보조하는 사무 간사가 대표적. 교회의 규모가 크면 목사 혼자서 교회의 회계나 재무, 주보 제작, 찬양, 홈페이지 관리 등의 운영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운영 지원을 위해서 간사들을 기용한다.
18) 대부분의 주식회사가 12월 말일을 결산 기준일로 잡기 때문에 정기 주총은 다음 해 3월에 개최된다. 다만 임시 주총은 시기의 제한이 없어서 연중 언제든지 개최될 수 있다. 그렇다면 6월 27일에 개최되는 주총은 임시 주총이라고 할 수 있다.
19) 미국 작가 존 치버가 말했다. “…… 아마도 그럴 거요. 내가 쓰는 이야기들은 전부 자전적이에요.” 그리고 레이먼드 카버가 말했다. “……물론 문자 그대로 그렇지는 않죠. 하지만 우리가 쓰는 모든 글은, 어떤 면에서는 자전적이에요. 자전적 소설이라는 말은 전혀 거슬리지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죠.”
20) 유중원, ‘무진기행, 그후’ 참조.https://blog.naver.com/jungwon4760/223368886232
21) 유중원, ‘최인훈의 「광장」 다시 읽기’, 시선사, 2020년. 참조.
22) …… 동시대에 활동한 최인훈이나 이청준과는 다른 색깔의 문학을 보여 주면서 60년대의 한국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가 바로 김승옥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감수성의 혁명'을 통해 '내면 의식의 발견'이나 '회화적인 선명성', '심미적 기미' 등을 이룬 김승옥 소설의 가장 커다란 매력은 빼어난 문체이다. 김승옥은 한국 소설의 아킬레스건이었던 감성의 과잉이나 지성의 부족을 극복했다고 평가받는다. ……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후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무려 10년간의 힘든 여정을 겪는다. 그리고 온갖 유혹과 고난을 물리친 후에야 아내인 페넬로페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대표적인 수난이 사이렌의 노랫소리이다. …… 아도르노(Adorno)와 호르크하이머 (Horkheimer)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이런 오디세우스를 근대적 자아나 주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흔히 근대를 대표하는 합리성이나 이성·문명의 발전을 위해서는 감성이나 본능, 자연의 상태를 억압하는 '극기'의 드라마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무진기행」의 '나'는 이런 오디세우스처럼 서울을 떠나 무진으로 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고향은 무진이지만, 소설 속에서 여행의 출발점이나 원점은 서울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무진기행」은 서울로의 '귀경'을 위한 소설이지 무진으로의 '귀향'을 위한 소설이 아니다. 김승옥은 서울로 대표되는 도시를 떠나 자연의 상징인 무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식의 낭만주의적이거나 이분법적인 소설을 쓰는 단순하거나 순진한 작가가 아니다.
23) 2세기 후반 로마의 시인이자 문법학자인 테렌티아누스 마우루스는 “독자의 능력에 따라 책은 운명을 달리한다 (pro captulectoris, habent sua fata libelli)”라고 말했다. 우리 비평계는 실력도 없고 무능하기 때문에 비평다운 비평을 할 줄 모르고 줄곧 주례사 비평만 한다. 틀림없이 그 소설은 우리 문단에 독이 되었을 뿐이다.
24) 유중원, ‘최인훈의 「광장」을 어떻게 재평가 할 것인가’ 참조. https://blog.naver.com/jungwon4760
25) 유중원, ‘독자의 (공개) 편지, 김경욱 작가의 소설 「나라가 당신 것이니」를 읽고 나서’ 참조 https://blog.naver.com/jungwon4760
26) 힐러리 맨틀이 말했다. “저는 자료조사는 힘닿는 대로 꼼꼼히, 정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추측은 아무런 사실자료가 존재하지 않을 때만 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그런 추측도 합당해야만 하고요. 자료에 틈이 있어서 그것을 메울 때도 사실에 비추어 봤을 경우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들 인물에게 저는 그 정도의 학문적 연구를 할 의무가 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가 정확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요.”
27) 움베르트 에코가 말했다. “「푸코의 진자」에서 주인공 카소봉은 파리의 에펠탑 밑바닥에서 자신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데, 그 구조물을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면서 마치 괴물 같은 존재로 생각하여 거기에 최면에 걸린 듯한 상태로 있게 된다. 이 문장을 쓰기 위해 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한편으로 나는 에펠탑 아래에서 며칠 밤을 보내며 그 다리들 한 가운데에 선 채 아래에서 위쪽으로 모든 가능한 각도에서 살펴보려고 노력했다. 다른 한편으로 에펠탑에 대한 모든 문학적 문장들, 특히 탑이 건축될 무렵에 쓴 글들을 찾아보았다. 이 글들은 대부분 에펠탑에 분노하고 격분하고 있었다. 나의 주인공이 보고 느끼는 것은 산문이나 운문으로 된 그런 많은 텍스트들을 인용 원용하여 공들여 만든 콜라주이다.”
28) 유중원, 「최인훈의 「광장」 다시 읽기」, 시선사, 2020년 참조.
29) 레이먼드 카버가 말했다. “초보 작가들이 범하는 가장 흔한 잘못들 중 하나가 바로 정직성의 결핍이에요. 경험이 많지 않은 작가들은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해내지 못하거나 틀린 감정을 담고 있지만 ‘멋있어 보이는’ 단어들을 여기저기서 끌고와서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쉬워요.”
30) 에즈라 파운드는 “진술의 근본적인 정확성이야말로 글쓰기가 요구하는 단 하나의 윤리다.”라고 말했고, 시인 키츠는 “진리는 곧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은 곧 진리다”라고 말했다.
31) 괴테는 “셰익스피어는 200년간 영문학 전체의 성장을 억눌러온 지나치게 무성한 나무란 말이오.”라고 말했지만 그는 형편없는 작가이면서 우리 문학의 발전을 저해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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