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고등학교 시절 잠시 만나던 여학생이 전해준 편지 속에 이런 시가 있었다.

/'/겨우나 새벽녘에 이룬 잠이/ 털빛 시커먼 개 한 마리/ 우리집 대문 윗지방에/ 목  매달려 늘어져 뒤룽뒤룽/ 숨이 끊어지는 괴로움에/ 깜짝 놀라 깨어보니/ 아아 무엇이었는가/ 아아 빛이로다/ 내 마음의 가름째야

지금도 외우고 있는 이 싯귀절이 누구의 것인가 그동안 여러 사람에게 수소문해도 아는 이 없고 훗날 편지를 보낸 여학생에게 물어보아도 아직 알 수가 없다. 다만 여린 봉창 아래 어룽대는 아침 햇살로 눈이 부셔 악몽을 꾸다 일어나는 한 인간의 괴로움이 어린 날에도 가슴 깊이 새겨진 기억이 난다.
지금 여섯 시, 새벽 잠을 자다 오른쪽 옆구리의 강한 통증으로 잠을 깨고 말았다. 그게 眞痛인지 아니면 꿈인지 알 수 없으나 그만 화닥 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언뜻 사위를 둘러보니 다시 홀로 있는 외로움, 고적함이 밀려와 나는 서둘러 손을 더듬어 텔레비전을 켰다.
나는 텔레비전 시청의 대부분을 종교방송으로 하는데 역시 기독교 방송에 맞혀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강한 외침의 설교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슴을 누르는 외로움을 떨치며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 듣고자 하니 다시 답답한 하루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밀려와 일어나 앉아 몇 자 쓴다.
설교자는 공교육과 기독교에 대해 강론 중이었는데 자신은 공교육에서 종교를 가르치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나 여타의 신앙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만이 사학 뿐 아니라 공교육에도 투입 되어야 하며 그것은 너무 주관적인 판단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이것 또한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고도 했다. 편견에 아집이 등을 타고 앉은 격이다.
살아갈수록 인간은 지독히도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가정파탄을 맞이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인간은 본래 혼자이니 홀로 서는 방법을 터득하라는 충고인데 나는 자꾸 왜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득하면 안되는지 궁금하다.
요즘 부쩍 북한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나 누차 지적한대로 /'/북한사회의 정체성이나 성격구조/'/에 대해 언급하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심한 바로 북한사회는 /'/주체사상/'/이라는 하나의 이념으로 뭉친 거대한 종교집단이다. 그러니 그들을 해체하거나 융합하려면 로마와 초기교회의 갈등과 이단의 역사를 가름해보면 알 수가 있다. 북한 주민을 직접 대해보면 알지만 이 사교집단은 결코 쉽게 와해되지도 않으며 설혹 무너진다 해도 와코사태와 같이 대단히 위험한 붕괴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아마 이런 사실을 미국이나 강대국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문제는 뜨거운감자 같기도 하고 때론 힘의 균형을 조율하는 고무줄 갖기도 한 것이다.
문제는 이 /'/위험한 붕괴/'/의 당사자들인 우리가 북한사회를 잘 모르고 있으며 너무 소모적으로 관리해 한국사회가 배부른 돼지들의 오물통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그 부작용으로 인해 지독히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 정치사회는 물론 골목골목 우리의 뼛속 깊숙이 박혀 버리고 말았다. 경제규모는 크나 모두 불행하며 죽순처럼 세계에 이름을 떠올리긴 하나 항상 후진국으로서의 대접을 못 면하는 탓도 여기에 있다.
국제사회에서 힘의 한계는 있지만 분단문제와 교육문제의 심각성을 성찰하지 않는 한국정치인들을 보면 양껏 따귀라도 올려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서정성을 잃은 후의 가수 정태춘의 노래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나 그가 운동으로서의 노래를 접으며 인간에 대한 회의 자체를 거론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며칠 안에 다시 짐을 꾸려 나는 일산을 떠난다. 언제 다시 가족을 만날지는 기약이 없으며 얼마만큼 살아낼지도 불분명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삶에 대한 의욕도 바닥이 난 상태다. 왜 혼자 살지 못하냐고 다들 다그치지만 그 현실사회에 수긍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응급실을 들락거린 선험으로 늘 혼자 있는 것이 불안하다. 그래서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며 진흙의 바다를 전전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쩔 것인가.
이 아수라에서 구원을 받는 일은 종교뿐이 없다 믿으며 나는 기독교를 선택했다. 하느님이 내게 다가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너무 나약해져 있는 습성상 깊이 빠져들지를 못하고 벌써 오랜 세월 오직 전전긍긍이다. 솔직히 나는 /'/미쳤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지금의 의식세계와 현실에서 벗어나 종교에 깊이 빠지고 싶다. 문학도 삶이 풍요로운 다음의 일이거나 최소한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차제에 며칠 전 나를 교회로 인도하려던 사람이 자신의 삶의 무게로 인해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알려왔다. 하느님이 당신을 통해 내게 손을 내미니 제발 나의 손을 놓지 말아달라는 부탁의 문자를 보낸 지 이틀만의 일이다. 현재 그에게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또한 짧은 시간이나마 얼마나 큰 고뇌에 빠졌을까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
역사란 인간들 사이에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밝히는 것이라는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의 말을 인용하며 나는 자주 인간은 /'/왜/'/라는 심장을 오른쪽에 하나 더 달고 다니는 동물이라고 말해왔다.
왜, 내가 오늘 그리고 이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침잠하면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아니면 우리 모두 이미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는 병에 걸려 이렇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깨어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런 일이며 그 고통으로 인해 다시 잠 못이루는 이 악순환은 대체 언제나 끝날 것인가.
그래도 깨어 있는 한, 깨어 있기 위해서 한 끼의 식사를 이루어야겠다. 일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