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일배와 100일 단식의 예술성


최성각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도 젊은 날 품었던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게 하나 있다. 예술이 결국 인간을 구원하리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지금은 흔들린다. 흔들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상황이 예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여러 멋들어진 정의와 다양한 설들이 있고, 끝없이 그 개념이 재생산되고 있지만, 예술은 자연의 경험에 기꺼이 복종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이때 창조하는 자나 누리는 자를 포함한 예술행위자는 자연의 일부이고, 그 일부로서 자연에 참여하는 것이다. 미술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고, 서사극이 그렇고, 춤이 그렇고, 급기야 문학이 그렇다.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끔찍스럽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노동을 재미로 즐기기 위해, 충격을 감내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자신을 생산하기 위해 사람들은 극장에 간다”고 브레히트는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서사연극에 대해 말한 내용이지만, 이 말은 예술의 기능과 효용에 대해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예술은 견디기 힘든 인간의 삶을 유쾌하게 즐김으로써 견디게 하고, 스스로를 발견하게 하고, 마침내 존재를 드러내게 한다는 것이다.

양차대전을 겪었던 브레히트 시절도 지금처럼 결코 행복한 시절은 아니었지만,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기원론에서 크게 이탈하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그나마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그다지 행복한 시대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무관심하거나 동의하지 않겠지만, 한가하게 현학적인 예술론을 펼칠 때라기보다 인간을 비롯한 생물종의 지속성이 의심받을 화급한 지경에 이른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 원인은 두 말 할 것 없이 근 3백 년에 걸쳐 주로 백인들에 의해 의심 없이 진행된 인간중심주의에 바탕한 과격한 과학기술 맹신주의와 산업화 탓이다.

대체할 수 없는 생물종의 유일한 생존조건인 이 작은 별의 생태계 질서와 균형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어마어마한 삼림이 파괴되고 있고, 그로 인해 지구 생물종에게 절대 필요한 산소의 양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고, 생물종들의 마땅한 존재 권리를 인간은 사정없이 빼앗았다. 끝없는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쥬류상식에 의해 강물은 오염되었고, 지진과 해일의 소식은 드물게 일어나는 지구 활동이 아닌 일상사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황사가 지구 한쪽을 덮고, 해수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해류가 바뀌고, 도처에서 자연의 교란이 일어나더니 급기야 미증유의 기후 변화까지 초래되었다. 기후 변화는 생각 이상으로 끔찍한 현상이다. 양차대전 이후, 브레이트가 말하던 끔찍한 상황의 도를 넘어선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바로 21세기의 벽두, 이 행성의 생태적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생태적 가치관은 바로 이러한 지구별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응시하고 대처하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응시와 관찰은 ‘시간이 별로 없다’라는 절박감을 요구했다. 그래서일까. 생태적 사유에 바탕한 예술행동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몸을 사용한 것은.

생태적 가치관에 의한 예술행동주의는 미를 위한 미, 달리 표현해 예술지상주의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다. 작품의 형식미와 완결성보다 메시지 전달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더 충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라 해도 이 행동주의에 폭약이 달려 있지는 않다. 속성상 이타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흔히 행동주의 작가로 일컫는 앙드레 말로가 말했다. “만약 그게 나한테만 중요하다면, 도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라 말인가?” 이 당당한 푸념보다 생태적 예술관을 잘 설명하는 말은 따로 없을 것이다.

허락된 짧은 글로 한국의 생태적 예술행동주의를 개괄하기에는 벅찬 일이고, 또 가능한 일인지도 의심스럽고, 필자의 영역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어쩌다’ 한 글쟁이로서 일찍부터 환경운동판에 뛰어들게 된 필자는 동시대의 여러 예술가들이 생태적 감수성으로 현실에 뛰어드는 모습을 적잖이 접할 기회가 있었다. 가능하지 않은 지역에 국가폭력으로 댐을 지으려고 할 때, 한 마을을 송전탑이 가로지르려 할 때, 환경영향평가도 없이 산을 허물어 터널을 뚫으려고 할 때, 멀쩡한 산 갯벌을 죽여 땅투기를 하려고 달려들 때,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어떤 조각가는 솟대를 깎아 죽어가는 새만금 갯벌에 세웠고, 혹은 집단적으로 장승을 깎아 세워 사람이 죽이려는 자연을 사람의 예술혼으로 살리려 애썼다. 어떤 예술가는 백주에 도회지 한복판에서 온몸에 페인트를 칠하며 환경위기의 시대를 증언했다. 음악가는 노래로 자연의 신음 소리를 담아내려고 머리를 짰으며, 가수는 절규했다. 사진가는 돌아오지 않는 철새를 필름에 담으려 안간힘 썼고, 인간이 저지른 파괴의 현장을 철저하게 기록함으로써 인위적 자연에 고발의 정신으로 참여했다. 때로 작업실이나 피아노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예술가들이 벼랑에 매달리기도 했고, 시인은 산천의 신음 소리를 들으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귀 기울였다.

그 예술행동의 동기가 치밀했고, 그 예술행동의 내용에 진정성이 있을 때는 폐부를 찌르는 감동과 반성을 동반했지만, 그 예술행동이 절박한 위기의식의 발로라기보다 상업주의와의 결탁이거나 ‘환경의 시대’라는 당대적 유행에 편승하려는 한탕주의였을 때에는 혐오감을 야기했다. 하지만 감동을 주는 일은 드물었고, 환경의 위기를 작품의 질료나 수단으로 삼아 허명을 좇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개나 소나 환경작품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짧은 글이 이 나라 예술행동주의자들의 이름들을 잘 정리해 나열하기에는 적합하지도 않을 뿐더러 불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드러낸 작품과 일상적 삶의 현격한 불일치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까운 우리 시대, 아직 그 강렬한 인상과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최근, 몸으로 현실에 뛰어든 두 가지 ‘몸의 사건’은 한번쯤 짚고 넘어갈 만하다. 새만금 소동으로 발촉된 삼보일배와 한 비구니 승려의 100일이 넘는 단식이 그것이다. 삼보일배나 100일 단식은 이른바 ‘공인된 예술가’들에 의해 벌어진 일이 아니라 성직자들이 달려든 일이었고, 또한 기존의 예술장르 구분으로 보면 예술이라 명칭할 수 없는 ‘몸의 운동’이었다. 따라서 공연자의 신분과 고지식한 예술관으로 보면 예술행위라 말하기에는 어불성설의 측면이 분명 있다. 그런데도 필자는 왜 그 두 행위를 예술행동주의의 한 전범이라고 감히 역설하려고 들까.

이 나라의 첫 삼보일배는 2001년 4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에 의해 명동성당에서 정부종합청사 앞까지 진행된 참회운동이었다. 그때 공교롭게 필자가 그 일에 깊숙이 개입해 ‘삼보일배’라는 명칭을 정하고, 땅바닥에 몸을 던지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당일의 진행을 맡았기에 그 처참의 극을 느끼고, 그 운동의 진핵을 볼 수 있었다.

타락한 물신주의의 탁악시대에 멀쩡한 갯벌을 돈 들여 메워 수많은 생명체들을 인위적으로 절멸시키고,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그 범죄적 국책사업에 결탁된 몇 사람의 배만 부르게 하려는 새만금 사업을 생태적 감수성을 지닌 이라면 고통 없이 바라볼 수 없었다. 작품의 동기가 절박했을 뿐 아니라 확실했다. 종전의 예술 방식으로는 그 국책사업의 범죄적 규모와 국가폭력에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확실히 있었다. 온몸을 땅바닥에 내던지기 전까지 가능한 일은 모두 동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01년 첫 삼보일배만으로는 경직된 우리 사회가 감동으로 녹아내리기에는 시기상조였다. 마침내 다른 성직자들까지 가세해 2003년 3월, 부안에서 서울까지 305킬로의 대장정에 나섰다. 서울까지 몸을 땅바닥에 던져 기어온 시간이 장장 65일.

왜 삼보일배를 예술행동으로 보는가. 삼보일배에는 우선 고통이 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건만 땅바닥에 몸을 던진 사람이나 그 처참하고 비일상적인 행위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나 말할 수 없이 격렬한 고통감을 준다. 자율적이며 비장미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드러내려는 생명존중의 메시지가 이타적이면서 평화롭기 그지없다. 게다가 삼보일배 자체의 규율과 내적 통일성이 있다. 주제와 형식의 일치라 할까. 그뿐인가. 공연자나 관람자나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다. 공감의 대목이다. 너무나 처연하고 그 자발적 고행이 비극적이어서 아름답기조차 하다. 말하자면 감동적이다. 2001년에는 서울 한복판이 무대였고, 2003년에는 305킬로에 달하는 국토의 한줄기가 공연장이었다. 출연자가 꼭 제도권 예술 영역에서 데뷔를 해야 비로소 예술행위인가.

그뿐 아니다. 삼보일배는 외국의 환경운동가들이나 행위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독창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동양문화권이 아니었다면 발상될 수 없는 문화운동이었다. 삼보일배의 메시지가 품고 있는 사상성은 깊고 높다. 이 세상이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종교적이라기보다 책임의식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공연자나 관람자 모두에게 상업주의가 끼어들 틈이 없었지만 대중성도 높았다. 국민 모두가 그 예술적 참회행위를 착잡하고 얼떨떨한 감정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참여했다.

그 사업으로 이익을 얻을 사업가와 발전지상주의자들과 최고 권력자를 제외한 모든 국민들에게 그 예술행위의 호소력은 대단했다. 이후 모든 부문운동에 삼보일배가 채택되기 시작한 것이다. 형식미와 전파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정도면 가히 예술행위라 할 만하지 않겠는가 싶다. 설사 새만금 갯벌을 살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시대는 유례없이 차원 높은 삼보일배라는 운동방식, 생태계 위기시대의 예술행동주의 하나를 건진 것이다.

지율 스님의 단식도 그렇다. 그가 워낙 자주 단식을 하는 바람에 손사래를 친 사람도 있고, 식상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단식이 100일을 넘었다면 그것은 이미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지율 스님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것은 확실한 동기와 뚜렷한 목적으로 몸을 던져 몸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피며 고독하게 벌어진 매우 치밀하고 정교한 어떤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삼보일배를 예술행동주의의 측면으로 볼 수 있듯이 미증유의 단식기록을 세운 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과 그것을 바라본 대중들의 반응의 관계는 충분히 예술행위의 분석법으로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사자 외에도 그 공연을 바라보는 관중들의 안타까움과 공감, 긴장과 염려, 혐오와 절망감, 그리고 안도와 긴 여운이라는 면에서 말이다.

왜 나는 이런 억지 예술론을 펼치고 있을까. 자연을 충실히 모방하는 것으로 진행되던 좋은 시절의 길고도 긴 예술행위의 시절이 어쩌면 지나갔는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예술은 자연의 경험에 더불어 복종할 때이다. 책임을 지려니 당연히 가장 확실한 표현법인 몸(행동)이 앞설 수밖에 없다. 구원의 문제는 나중 문제이다. 거듭 말하지만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기전문화예술 2005년 5·6월호]


최성각소설가이자 환경운동가. 1955년에 태어났으며, 중앙대 문예창작과와 동 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는 [부용산], [사막의 우물 파는 인부] 등이 있다. 현재 환경단체 ‘풀꽃세상’ 창립 이후, 풀꽃평화연구소에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