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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문학평론가)
조선일보는 언론기관인가, 아니면 언론기관을 가장한 하나의 악덕족벌기업인가? 최근 <한겨레>의 언론개혁 특별기획 <심층해부 언론권력>을 읽어보면 조선일보 사주 일가는 자신들이 지탄해 마지 않았던 일반 재벌기업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파렴치한 방법으로 재산을 늘여왔음은 물론, 알량한 `권력 남용'도 자행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사실들에 대해 그들은 일체 함구하고 있다.
말을 할수록 수렁에 빠져들고 더 많은 사실들이 폭로될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이들은 `신문 그 이상의 신문'답게 다른 노회한 전략을 구사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언론사 세무조사와 <한겨레> <대한매일> <문화방송> 등의 족벌언론 비판 등 `언론개혁' 캠페인을 집권 후기에 이른 김대중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이며 반여 언론 목조르기라고 규정하고 한나라당과의 공조를 통해 이에 대한 저항을 마치 반디제이투쟁인 것처럼 몰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언론개혁'의 가장 큰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일보 등 족벌언론의 개혁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들에게 미만해 있는 냉소적 정치의식과 무관심을 교묘히 이용하고 조장하여 `언론개혁' 역시 하나의 권력놀음으로 전락시키고 그 틈을 이용하여 자신들
이 당면한 위기를 벗어나고자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조선일보답다. 친일경력을 은폐하고 독재정권에 영합한 성장사에 대해 침묵하고 한번도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도 오히려 언제나 당당해 왔던 그 후안무치함이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밑천이자 노하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할 말 못할 말 다 하는 신문'으로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합법적으로 매일매일 그 어떤 위계와 사술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는, 그리고 그 누구도 섣불리 이를 문제삼을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흉기로 성장한 이들을 과연 누가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언론자유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바로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거대 언론권력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언론 길들이기'식의 정권 차원의 일시적·정략적 접근으로는 이 자유는 얻어지지 않는다. 침묵의 카르텔을 깬 타 언론사들의 언론권력 비판은 한국언론사에 한 획을 그은 신선하고 충격적인 사건이긴 하지만 그 지속성과 강도 역시 보장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할까? 결국 언론권력의 목에 방울을 달 수 있는 의지와 힘은 신문의 구매자이자 최종 심급에서의 심판자인 국민대중밖에 없다. 여기서 안티조선운동의 의의가 새삼 두드러지게 된다.
아닌게아니라 조선일보 역시 이 운동의 확산을 가장 크게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정부로부터의 세무조사를 비롯한 `정치적 탄압'은 다른 신문들과의 연대나, 한나라당과의 공조를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겠지만, 수백만의 네티즌들과 일반 시민들, 시민운동 단체들, 그리고 양심적 지식인들의 자발적 운동인 안티조선 캠페인은 그들로서도 적절한 대응책을 모색하기 힘든 난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제자리 찾아주기 운동'으로 표현되는 이 캠페인은 몇몇 선구적 지식인의 희생적 노력과 그에 공감하는 많은 지식인들의 기고·인터뷰 거부 서명 운동에의 동참이라는 지식인운동적 양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옥천군민들처럼 한 지역사회 전체가 조선일보의 구독을 거
부하는 풀뿌리 시민운동의 양상으로까지 깊고 넓게 전개되고 있어 그 파급력은 이루 예측할 수 없다.
대우와 같은 부실재벌은 민중의 주머니를 털어가지만, 조선일보와 같은 왜곡언론은 민중의 정신과 영혼을 도둑질해 간다. 이제 바로 이러한 조선일보의 본질과 그 사회적 해독을 깨닫게 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냉소와 방관을 벗어나 한층 넓은 시민적 기반을 갖는 안티조선운동에 더욱 더 빠른 속도로 동참하게 되면 거대 공룡언론 조선일보의 참회와 거듭남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한겨레신문 2001년 3월 18일자 특별기고)
김명인(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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