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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년대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지나왔지만, 문학은 여전히 스스로의 정체성 찾기에서 미로를 헤매고 있다. 지난 9일과 10일 전주 전통문화센터에서 열린 2002 전국민족문학인대회는 이 시대 문학과 작가들이 안고 있는 과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야 하는지를 논의함으로써 문학의 사명을 일깨운 의미 깊은 자리였다.
특히 대회 일정 가운데 9일 밤 자리를 편 '작가회의 정체성 모색을 위한
합동 토론회'는 참다운 민족문학을 일궈내기 위한 고민을 맞댈 수 있는 계
기를 만들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소설가 박태순씨(60)씨가 '나와 우리 그리고 세계와 문
학이 달라져간다'를 주제로 발제를 맡았으며, 시인 박영희·김정란씨가 '변
화의 시대에는 무엇이나 표적이 될 수 있다'와 '외파(外破)에서 내파(內破)
로, 주체의 심화와 문학의 소명'을 각각의 주제로 토론을 펼쳤다. 토론내용
을 요약 정리해 본다.
▼발제자 박태순= 현재의 작가회의 회원이자, 1974년 창립된 자유실천문
인협의회(이하 자실) 초기멤버이기도 소설가 박태순씨는 '정체성'이란 단어
에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 첫째가 '항성' 즉 변하지 않는 고정된
성질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와 상황에 따른 변화를 가진 '변성'이다.
변할 때는 변하는 진보의 성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변성은
양심과 정의를 바탕에 둔 진보를 추구함으로써 항성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
다.
70년대 당시, 과거에 외쳤던 주장을 오늘에 그대로 대입시킬 수는 없다.
박정희 시대의 문학적 의미가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중요한 것 일리 없
다. 역사는 직선이 아닌 곡선을 그리며 느리게 진보하는 것이다. 시대에 맞
는 문학, 현실을 읽는 문학. 그리하여 소외를 소통으로 극복하는 문학을 만
들어야 한다.
다만 정치와 정치인에 휘둘리며 글쟁이의 자존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
아울러 문인들이 정치와 정치인을 바로 구분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토론자 박영희= 박영희 시인은 이날 토론에서 작가회의 내부적인 문
제들을 고발했다.
그가 꺼낸 토론문의 요지는 중앙으로 대변되어온 서울 중심의 작가회의
활동에서 벗어나 지역의 문학에 힘을 실어주자는 것.
'풀뿌리 작가회의'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 서울에 집중됐던 시각을 돌
려 공유와 상생의 길을 터주어야 한다. 중앙집중적 문인대회를 지역으로
내려온다면 더 큰 문학적 의미를 도모할 수 있다.
지역의 질 높은 작품과 작가들을 이대로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또한 기
관기와 문예지의 점검을 통해 조직의 내실화를 꾀하고, 서울을 비롯한 각
지회 회원점검을 통해 양이 아닌 질로써 작가회의를 변모시켜야 한다.
▼토론자 김정란= 7-80년대 자실을 이끌어온 문인의 힘이 왜 침묵하는
지, 시대적 소명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 문인들의 방관을 지적한다.
문학은 곧 말이다. 수구언론과 대선을 앞두고 등장한 합당치 못한 코드
의 난립은 곧 언어의 왜곡이다. 문인들이 이같은 부당함에 태업이라도 해
야 할 이즈음에 오히려 시민보다 문인이 뒤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문학적 순수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현실 방관의 자세를 버리고, 힘겹게
싸우고 있는 시민들에 힘을 보태야 한다. 누구보다 앞서 시대정신을 구현
해내는 문학과 문인 본래의 발걸음이 움직임이 절실하다.
200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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