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지난 10월 9일 열린 제10회 전국고교생백일장 수상작을 발표합니다.
운문과 산문의 장원작품을 이곳에 게재하며,
이하 수상작과 입상작은 <알림터> 내의 "자료실"에 게재합니다.
자료실 게시판의 한글 아이콘을 클릭하시면 바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운문 장원>

가로등

임동언｜경복고등학교 3학년

별자리가 돋아나는
가을저녁 무렵이면
우리 집 뒤뜰을 지키는 감나무에
외로운 가로등이 서 있곤 하였다
그런 감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감나무 둘레인 듯
내 마음속도 가로등처럼
환해지곤 했다

나는 마음의 충만을 안고
감나무 너머 별자리를
혼자서 바라보곤 했다
감나무가 켜준 외로운 가로등을 보고 있으면
감나무가 스스로
발전기를 돌리는걸 알 수 있었다
작고 푸른 땡감 안에
미세하게 떨리는 필라멘트를 만들어
전기를 공급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외로운 가로등이 뿜어대는
가느다란 색실들이 보이고
얇은 유리 막에 따뜻한 열이 나고
나는 따뜻한 기억을 잡고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살며시
눈을 감고 있었다

내 마음 속환한 감나무를
한없이 바라보곤 했다

<산문 장원>

모자를 쓰고 있는 나

이보람｜하남고등학교 2학년

사람들이 자꾸 쳐다봤었다 “저게 뭐야?” 라는 듯 경멸하는 그 시선이 부담스럽고 싫었다 정말 싫었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외출을 위해 벽걸이에 걸어놓은 수많은 모자들 중 하나를 고르고 있다.
“부디 저를 써주세요 . 당신을 멋지게 포장할 수 있죠”
“용기 없는 당신에겐 제가 어울려요 . 자 어때요?”
나는 검은 색의 모자를 골랐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양 손으로 검은 색 모자를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내가 서 있다. 거울 속의 나는 꽤나 당당한 모습이었다 . 아직 벗겨지지 않은 까들한 얼굴 ... 거울 속의 나는 나를 실컷 비웃은 후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곧 사라졌다
10월의 하늘은 어김없이 높고 맑았다 약 2개월 만에 사람들을 만나는 나인지라 정말 초긴장 상태였다. 사거리를 돌아 횡단보도가 나오자 나는 전신을 감싸는 지독한 불안감 때문에 숨이 막혀왔다 .얼굴을 잘 가리고 있는 모자, 그 녀석 덕택에 좁아진 시야는 내 발걸음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것 같다 아니 쳐다본다 .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는 것 같다 .아니 소곤거린다. .,,, 나는 두 귀를 막고 그늘진 얼굴을 푹 숙이고는 사람들을 만나기로 한 장소로 뛰어갔다 . 버스를 타는 시간도,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는 그 시간들도... 낯선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듯 나에게는 두려움과 모험의 연속이었다. 괜히 나왔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울 즈음 어느 새 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제일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모자에 가려진 내 시선이 자꾸 내 발끝을 향했다. 더러운 신발이 창피했다. 신발 끝에 묻은 흙덩이들이 못 견디게 더럽고 창피해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재지 못하도록 툭툭 바닥을 치며 털어내었다. “A씨 맞죠 ? 조금은 경직 된 여자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쳐들고 말았다. 40대의 여자가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급히 모자에 손을 갖다대며 고개를 숙였다. 까들한 얼굴이 싫어서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 얼굴인데.... 여자가 다시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짧은 시간에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죽음보다 무섭고 지독하리만큼 추악한 자기 피해의식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모였으니 어서 중앙에 마련된 테이블로 날 이끌었다. 한마디의 대꾸도 없이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여 나온 테이블 . 그 주위의 사람들의 수많은 발끝이 보인다. 목발도 보였으며 다리 한 쪽이 없는 상태도 보였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이 모임은 나 같은 자기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아니 그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
나의 이름을 불러준 40대 여자 B씨는 선천적으로 한 쪽 안구가 없는 사람이었다 . 헌재 작은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 조금은 수다스러운 20대 초반의 C군 역시 사고로 하반신을 못 쓰는 사람이었다. 전쟁으로 한 쪽 귀와 양 팔을 잃은 60대 후반의 D씨, 타인을 구하려다 오히려 사고를 당해 얼굴전체를 붕대로 감고 있는, 전직 소방관 E씨 . 그 외에도 기타 등등의 이유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신의 신체적인 결함에 대해 나처럼 지독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도 처음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 저렇게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고 웃어넘기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여유.... 나는 언제쯤이면 내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 아침에 보고 나온 거울 속의 나에게 다시 조롱당하는 것은 싫다 모자로 훌륭하게 가린 내 까들까들한 얼굴을 보인다면 사람들은 한결같이 너무도 고마운 동정의 시선을 보내준다. 그리고 더불어 전신을 박살낼 듯한. 훌륭한 소곤거림과 낮은 욕지거리도.....모든 비난은 나에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불길 속에서 구해지던 그 날, 날 조금이라도 더 일찍 구해주었다면 지금 이렇게 살지는 않을 텐데 하는 원망도 했다. 하지만 저들 앞에서 나는 반성해 본다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조금의 유연성도 가지지 않았던 이기적인 모습! 만약 당신이 모자를벗는다면 우리들은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는 40대 여성 B씨 세상의 모든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는 가장 피하고 싶은 순간이 왔다. 다시 손이 떨려왔고 나를 비웃던 거울 속의 나 자신이 떠올랐다. 모자 아래로 보이는 내 신발 끝에 묻은 흙덩이가 다시 신경 쓰인다. 털어내고 싶다. 털어내고 싶다. 나는 발을 굴러 흙덩이를 털어냈다. 내가 발을 구른 소리가 컸던지 각자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몰렸다. B씨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기운을 내라는 말을 했다 . 나는 여전히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천천히 검은색의 나의 무게에 갖다댔다.
이렇게나 멋진 모습이면서 이런 걸 왜 쓰는 거죠 C군의 목소리가 들린다 . 이걸로 나는 까들까들하고 얼룩진 내 얼굴을 타인에게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죽을까도 했었던, 그 무서운 용기를 내어 검은색의 모자를 조금은 옆으로 쓰고 왔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길을 갈 뿐, 누구도 나를 쳐다보며 쑥덕거리지도, 손가락질 하지도 않았다. 난 그동안 나 자신을 죽일듯한 눈으로 노려보던 거울 속의 나에게 한 마디 해줄 수 있었다.
“널 이긴 건 네가 아니라 바로 나란다.”
나는 모자를 벽걸이에 걸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