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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교의 교정을 거닐다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보았다. 흰 종이에 검은 매직으로 쓰인 간결하기 짝이 없는 대자보였다. 하지만 나는 저 멀리 사람들 속에 섞인 애인을 알아볼 때처럼 그 대자보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학생시절 나는 경비 아저씨들과 친분이 좀 있었다. 원만한 관계는 아니었다. 방 한 칸 없이 지내던 터라 학생회관을 숙소 삼아 살았는데 그러기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이 경비 아저씨였다. 경비 아저씨들은 때로는 근엄한 아버지처럼, 때로는 살가운 삼촌처럼 윽박지르고 타일렀는데 젊고 무례했던 나는 그이들을 거추장스러운 존재로만 여겼던 거다.
군대에 갔다 와 복학을 한 뒤에야 내가 그이들과 얼마나 많은 추억을 공유했는지 알게 되었다. 자정 지나 현관문을 열어 달라며 떼를 쓰던 나를 기억해 주었고 노동자의 날이면 몇 푼씩을 추렴해 선물했던 싸구려 양말이나 넥타이마저도 기억해 주었다. 마치 자식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내듯. 밤새 술판이라도 벌이면 잔뜩 화난 얼굴로 귀가를 종용하다가도 한 잔 드시고 순찰하라고 눙치면 못 이긴 척 받아주던 그이들이 떠올랐으며 경찰의 압수수색이 예고된 깊은 밤 채 처분하지 못한 불온도서들을 복도에 모아 천으로 덮고 ‘건들지 마시오-경비’라고 써 놓으면 한쪽 눈 질끈 감아주던 그이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복학했을 때 그이들은 더 이상 교직원이 아니었다. 경비 아저씨는 쓸쓸한 얼굴로 이제는 파견직원일 뿐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투에서 어떤 박탈감을 느꼈다. 나는 가족을 잃은 기분이었다. 이제 세월이 흘렀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우연히 마주친다면 소설가도 비정규직이라고 너스레를 떨 수도 있을 듯하다.
<2010.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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