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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읽기/김별아]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이름 관리자



다시 한 해가 저물 무렵, 난마와 같은 세태와 마음의 정처를 잃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풍진 세상, 어지럽고 편편찮은 세상을 만나 바람에 날리는 티끌처럼 살며, “너의 희망이 무어냐?”고 물으면 무어라고 대답할까? 희망이 없는 상태는 절망이고, 절망이야말로 마음의 자살이니, 어쨌거나 삶이라는 권리이자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희망의 끈을 그러잡고 살아야 할 터이다. 희망이란 미래에 대한 기대 어린 바람임과 동시에 현재를 견디는 의지가지이기 때문이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유치한 것부터 거룩한 것까지, 옹근 것부터 속절없는 것까지, 희망은 다양할수록 좋다. 가짓수가 많아야 아무러한 염세가에게라도 하나쯤은 얻어걸릴 수 있을 테니, 술 취한 밤 귀갓길에 산 복권 한 장과 토요일 오후 갑자기 잡힌 소개팅 약속에도 빠짐없이 희망 있어라!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삶을 견디게끔 하는 수수한 희망은 이 풍진 세상에서 설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동시에 그 이름도 거창한 역사를 살고 있다. 분노나 염오를 넘어선 일종의 피로감 때문에 뉴스를 멀리해 보아도 잡티와 먼지 같은 세상사는 한순간 득달같이 달려들어 사소한 희망마저 몰아친다. 언젠가 나는 졸저의 한 대목에 정치란 호흡, 들숨과 날숨의 조화라고 썼다. 숨은 그저 언제 들이마시고 내쉬는지를 모르면 그만, 숨을 의식하는 그 순간부터 위태롭고 위험해지기 마련이다. 숨가쁜, 숨찬, 숨죽인, 숨막힌 정치는 곧 삶의 곤란을 낳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과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양산한다.

굳이 역술가나 예언자가 아니더라도 알겠다. 내년은 또다시 힘든 해가 될 것이다. 살림살이가 어려운 사람은 더 어렵고, 마음이 괴로운 사람은 더 괴롭고, 욕심에 가득 찬 사람은 제풀에 짜부라질 때까지 더 욕심을 부릴 것이다. 이건 신기를 누설하거나 저주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과관계로 인한 필연이다. 누더기 같은 새해 예산안에 삭감된 항목만 살펴보아도,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전쟁의 충동질로 동요하는 민심을 보아도, 그 와중에 개화기의 외세와 매국도당을 연상시키며 알뜰하게 잇속을 챙기는 무리를 보아도, 숨이 가쁘다. 숨통이 콱콱 막힌다.

어차피 그때 나는 이 세상에 없을 테니 마구잡이로 무책임하게 에멀무지로 장담하건대, 100년 후에 역사가가 기록하는 2010년은 ‘4대강 사업으로 민생파탄’으로 요약될 것이다. 후손들은 그놈의 사업성과를 유지하는 데, 혹은 보를 뽑고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피같은 세금을 쏟아부으며 어리석은 조상들에게 이를 득득 갈 것이다. 한줄 요약이 아쉬운 역사가는 ‘대북정책 실패로 한반도 긴장 격화’를 덧붙여 쓰고, 국사 과목을 배우는 아이들은 반복되는 귀접스러운 역사에 분통을 터뜨릴 것이다.

희망을 말한답시고 절망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았지만, 모순처럼 역설처럼 그래도 나는 여전히 희망을 믿는다. 역사가가 아니면서 역사를 쓰는 또 하나의 손, 문학가의 손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100년 후의 문학가가 쓰는 2010년은 블랙코미디일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 와중에도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극을 묘파해줄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지난번 칼럼에 쓴 대로 인권 에세이 공모전에서 ‘잘’ 쓴 글이 아닌 ‘좋은’ 글을 뽑은 덕택에 시쳇말로 ‘고딩’에게 사정없이 ‘까이고’도 혜안을 자랑삼으며 우쭐해하는 심사위원이라든가, ‘원숭이 꽃신’의 동화를 현실에 구현하는 듯한 피자와 통닭 대란이라든가, 보온병을 들고 적진으로 돌진해야 할 정도로 긴박해진 국방 상태라든가…2010년의 수많은 희비극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기억되길 바란다.

우리가 없어도 미래는 있을 테니, 그 미래는 어쨌거나 지금과 다르길. 그래서 이 풍진 세상에서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희망이다. 2010년이여, 잘 가라! 다시는 비슷하게라도 오지 마라!


김별아 소설가<201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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