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우리 때도 한자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어서 한자 공부를 따로 했었던 건 아니지만, 한자에 대한 관심이 지금과는 달랐었다. 한자 생활권에서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우리 때와는 다르다. 아예 한자를 무시하거나 거부한다. 상황이 변했고 매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휴대폰은 한자를 거부하는 매체인 것 같다. 이런 한자 거부 경향은 현대매체뿐만이 아니다.일부 책에서도 그런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한자를 병기(倂記)하기만 해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말을 그냥 방치함으로써 혼란을 가중시키거나, 괄호 속에 영어를 병기하는 데는 익숙한데 한자를 병기하는 데는 인색한 것 같다. 그런 경향이 한자 무용론(漢字無用論)을 부채질하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한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 없이 학문, 특히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게 편저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한자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러나 수능(修能) 체제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고전문학이나 한자(한문은 아예 생각도 못할 정도고.)를 시류에 뒤진 고리타분한 것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시험에 직접 관련 없는 것은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현대문학(소설과 영화)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고전이나 한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에, 한 가지 결심을 했다. 학생들에게 고전과 한자를 가르치려 들 게 아니라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서사의 시대에 살고 있는 학생들인 만큼 이야기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결심이 서자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고전과 한자를 이야기로 풀어 들려주자 학생들이 듣기 시작했고,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에 힘을 얻어 내 수업을 듣는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책으로 낼 생각을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랴, 대학원 공부도 해야 하랴, 논문도 써야 하랴, 짬을 내어 책을 편집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차분히 앉아 글을 쓸 수 없었다. 또한 기존에 출간되어 있는 많은 책들은 나에게 부담이었다. 기존 서적과는 달라야 한다는, 하나라도 나만의 독창성을 드러내 줄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내 능력으로는 너무 벅찼다. 그러나 이미 먹은 마음이었다.
하루에 최소한 2편 이상을 정리하지 않고는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그 결과, 어줍지 않지만 작년에 󰡔이야기로 풀어가는 우리 시조󰡕(푸른사상)를 펴냈고 이제 고사성어를 세상에 내놓는다. 막상 책으로 내려니 미진한 것,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이제라도 그만 둘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첫 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우리 속담을 무기삼아 책으로 펴낸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이제 선학(先學)이나 동학(同學)보다는 후학(後學)들의 눈을 살피게 된다. 이 책 앞뒤에 밝혀놓은 전자우편으로 질책을 부탁한다.

2011년 새봄
백마산 기슭 晩翠齋에서李成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