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꽃이 너를 지운다]
(천년의시작, 2007년 10월 20일)


1990년 첫 시집 <도화동 사십계단>을 발표한 김주대 시인이 17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냈다. 그의 첫 시집이 발간된 시기가 상징적으로 말해주듯, 그는 1980년대의 저 숱한 생의 상처들을 아파하며 역사의 변혁과 진보를 향한 꿈의 언어를 갈무리해온 민중민족문학 진영의 젊은 시인들 중 가장 촉망받는 시인이었다.

그가 <도화동 사십계단>에서 만났던 민중들은 역사변혁의 주체들로서 그는 그들과 함께 시대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살았다. 민중에 대한 관념적 인식이 아니라 민중의 구체적 삶에 밀착하여 쓴 그의 시들은 살아 숨쉬었다. 그의 언어는 온갖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과 의지로 충만해 있었다.

비록 첫 시집을 발표한 이후 지속적이고 활발한 창작 활동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시를 향한 그의 열정은 결코 식은 적이 없다는 것이, 시집 <꽃이 너를 지운다>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김주대라는 이름의 시인은, 아름다운 삶의 가치를 염원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시쓰기의 길을 우직하게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김주대
196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9년 「민중시」,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제1회 심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도화동 사십계단>, <꽃이 너를 지운다>가 있다.


::책 속에서

동거

생각난다
신당동 중앙시장
팥 적은 붕어빵과 곱창으로 넘긴
그해 겨울의 저녁과 아침
시골 여상 출신의 그대가
졸음 쏟아지는 미싱대에서
주판알 대신 올리고 내리던 기래빠시 천과
얇은 홑이불의 동거 시절
생각난다
반찬 없이 행복했던
우리들의 겸상도
조금 어색해서 더 사랑스러웠던
첫날밤이
신당동 가다보면
들려온다
미싱 도는 소리
그대 숨소리
세상 한쪽에서
그대가 그대를 찢고
그대를 이어가는 소리.



::시인의 말

비 온 뒤의 하늘은
호수처럼 깊다
간밤에 저 호수가
그토록 범람했나 보다

- 김주대


::추천글

십칠 년 전 얼굴도 모르던 시인의 첫 시집 <도화동 사십계단>을 읽었다. 그때 나는 아, 시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연탄재가 켜켜이 쌓여있는 얼어붙은 산동네의 아득한 계단이, 그리고 우리 삶의 눈물겨운 이면들이 시인 특유의 풍자와 해학을 통해 따뜻한 풍경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십칠 년... 긴 잠수 끝에 그는 이 두 번째 시집을 들고 세상에 나타났다. 그가 바로 시인 김주대다. 익살은 여전하지만 그의 시어는 더욱 익어 마치 강에서 금방 건져 올린 물고기의 비늘에 부딪친 정오의 햇살처럼 눈부시다.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시집 곳곳에 상처와 어둠이 배어 있지만 그는 어둠 속에서 기어이 빛을 찾아내어 슬쩍 우리 앞에 내민다. 넙죽 받아들고 보면 그것은 시이고 눈물이고 사람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다. 그는 그런 시인이다. 그의 이야기 시들을 읽다 보면 시인은 타고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돌아보면 모든 속도가 슬프다'며 울다가도 '울음 속에는 그리운 것들을 부르는 힘줄이 보인다'며 고개를 들고 씨익 웃는 귀여운 동안(童顔)을 어찌 외면하랴.

그의 시에는 추사 김정희의 수묵화가 도달한 고독의 높은 경지가 있는가 하면 굶주린 도둑고양이의 슬픈 눈빛이 있고, 도회로 길을 잘못 들어 어리둥절해진 산노루의 겁 많은 큰 눈이 있다. 그리고 정신없이 사는 우리의 엉덩이를 거침없이 걷어차는 하이킥이 있다. 소설 창작이 내 주업이지만 이런 후배 시인을 둔 것이 마냥 행복하다. 시에 등장하는 몇 군데 낡은 술집들을 함께 순례하기로 한 약속이 나를 설레게 한다.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이야기를 따라 들어가 하루 빨리 그와 그의 시의 뒷골목을 걷고 싶다. 그와의 대작이 남아 있다. - 김영현 (시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