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중진 작가 박범신의 신작 장편소설 [나마스테]
(한겨레신문사, 2005년 3월 24일)

'나마스테'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어서 오세요, 건강하세요, 행복해지세요, 다시 만나요" 등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는 네팔말이다. 만나고 헤어질 때 두루 쓰이는 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름다운 다리를 놓는 소통의 시작이 그 말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박범신의 신작 장편소설 <나마스테>는 히말라야 마르파 마을에서 온 사내 카밀과 또 다른 희망을 찾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신우의 사랑 이야기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카밀과 신우의 사랑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결코 곱지만은 않다. 그러나 둘은 서로의 역사와 문학, '옴 마니 밧 메훔'이라는 주문까지 받아들이며 서로를 깊이 사랑한다.

카밀과의 첫 만남부터 카밀과 신우가 딸 애린을 갖게 되는 과정, 애린이 또 다른 카밀과 함께 하는 카일라스 여행까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과 함께 모든 사랑이 갖게 마련인 양면성을 감성적이고 가슴을 울리는 문체로 그려낸다.

아름다운 마을 마르파에서 꿈을 쫓아 서울까지 날아온 카밀은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신우에게 삶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심어준다. 서로 너무 다른 삶을 살아온 둘의 사랑은 결국 하나로 완성된다. 박범신은 후기에서 "필요한 말은 티베트말로 모귀, 갈망과 염원을 가지고 우리 마음속에서 계속, 끈질기게, 상주불멸의 본성과 같은 카일라스를 품는 일이다. 그것을 히말라야에서 마야, 라고 한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작가는 인간 본성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박범신
1946년 충남 논산 출생.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여름의 잔해'로 등단. 1981년 장편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신인 부문)을 수상. 장편소설로 [죽음보다 깊은 잠], [겨울강 하늬바람], [불꽃놀이], [불의 나라], [물의 나라], [킬리만자로의 눈꽃] 등이, 소설집으로 [토끼와 잠수함], [덫] 등이, 연작소설로 [흉기], [흰 소가 끄는 수레] 등이 있다.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책 속에서

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나는 새로운 시간들이 내 앞으로 햇빛같이 환하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진실로 변화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내 영혼이 부르는 사랑을 부정만 해왔던가. 나는 내가 이미 죽은 나무라고 생각해왔으며, 죽은 나무로 썩어 문드러지는 게 나의 할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나의 영혼이 혹 어느 때 사랑을 부른다고 해도, 그 부름과 갈구 자체가 죄라고 여겼다. 그런데, 카밀과의 첫 키스 후, 나는 마침내 인정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사랑한다는 것을.

::작가의 말

곧 봄이 와서 천지에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났는데, 그러나 어떤 때 소스라쳐 돌아보면 죽은 그들이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 꿈을 꾸고 난 날엔 하루종일 히말라야 설산 너머, 티베트의 광야에 우뚝 서 있다는 만년빙하의 얼음산 카일라스가 그리웠다. 한바퀴 오체투지로 산돌이 하고 나면 삶과 죽음의 경계도 없고, 부자와 빈자의 층하도 없고, 문명과 반문명의 간격도 없는 곳에서 살게 된다는. 욕망에 따른 온갖 번뇌 망상과 원죄가 다 씻겨져, 마침내 다르마타의 눈부신 흰빛과 같은 순정한 본성만 떠오르게 된다는, 영혼의 심지, 그 카일라스. - 박범신

::추천글

감히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박범신 선생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그의 글 속에서는 결국 인간이 밥 먹고 살고 하는 일이 결국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애정 때문, 이 되고 만다. 이상하다, 이번 소설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이 소설은 그냥의 사랑을 넘어서고, 고통스러운 노동을 넘어서고 국가를 넘어서고, 그의 지평이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화두처럼 다시 사랑으로 귀착한다. 이 단순함이 던지는 어마어마함 때문에 깊은 밤 봄눈은 내리는데, 책을 다 덮고 나서 한동안 잠을 못 이루었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젊은가보다. 그가 그 말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그는 젊다. 그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럴 것 같다. 그는 사랑을 알고, 사랑이 인간의 궁극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나마스테... 안녕하세요, 도 되고 행복하세요, 도 되고 건강하세요, 도 되는 말...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누구에게든 그렇게 말하고 싶다. 나마스테! - 공지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