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 고료 제1회 세계문학상 당선작, 김별아의 [미실] (문이당, 2005년 2월 28일)
김별아는 1993년 실천문학에 중편 [닫힌 문 밖의 바람 소리]로 등단, 장편소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소설집 [꿈의 부족] 등을 통해 개인적 체험과 경험적 사실을 허구로 가공하여 보여 주는 글쓰기에서 탈피, 자기를 떠난 소재를 통해 말하기라는 독특한 방법론을 통해 열정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 심화시켜 왔으며 부단한 자기 성찰을 계속해 왔다.
[미실]은 신라의 전성기 때 진흥제, 진지제, 진평제와 사다함 등 당대의 영웅호걸들을 미색으로 녹여 낸 신라 여인 미실을 통해 현대와 같은 성(性) 모럴이 확립되기 전의 신라로 거슬러 올라가 가장 자연스러운 여성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작품이다.
김대문의 [화랑세기]에 묻혀 있던 신비스러운 여인 미실을 천오백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적극적인 탐구 정신, 작가적 상상력, 호방한 서사 구조 속에 형상화해 냄으로써 그간 우리 문학에서 만나지 못했던 전혀 새롭고 개성적인 여성상을 그려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스럽고도 우아한 문체 속에 거침없는 성애 묘사가 소설과 역사를 읽는 묘미를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김별아 1969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실천문학'에 중편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꿈의 부족], [개인적 체험]과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축구전쟁], [김순남]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비단 옷자락이 젖었다. 서늘한 물기가 팔뚝을 타고 흘러 은밀히 접힌 겨드랑이를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미실은 주저하거나 멈칫대지 않았다. 곧장 비어 있는 나머지 한 손을 들어 가지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렸다. 왁살스러운 손놀림에 나무는 몸을 뒤틀다가 우지끈,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곤 이내 잠잠해졌다. 미실이 굳게 움켜쥔 손아귀를 천천히 폈다. 그 속에 붉은 알들이 보석처럼 가득 빛나고 있었다. 짓뭉개져 터진 것도 있었고 얼결에 봉변당한 찢어진 이파리도 혹간 있었다. 하지만 미실은 아랑곳없이 곧장 움켜잡은 것들을 입으로 가져갔다. 붉은 세계가 입속에서 순차 없이 우두둑, 뭉클 터졌다.
미실이 불현듯 호르르 깔깔 우는 듯 웃었다. 웃음 끝에 기갈이라도 든 것처럼 가지를 휘어잡은 채 한동안 사나운 기세로 앵두를 훑어 먹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목도 마르지 않았다. 하지만 까닭 모를 갈증과 허기가 포획한 먹이를 앞에 둔 맹수처럼 미실을 멈추지 못하게 부추겼다. 천지를 안고 일렁이는 봄 햇살은 미실의 방자하고 거침없는 행동에 숨이라도 죽인 듯 괴괴했다. 옥진의 목소리는 귀를 타고 흘러내린 부드러운 자분치를 흔드는 바람 속에서도 속삭였다.
「넌 누구와도 같지 않아. 미실! 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야.」
::작가의 말
[화랑세기]와 신라 여인 '미실'을 만나 것은 우연이자 필연이었다. 때마침 나는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십 년을 살고도 지나친 아집으로 독자들을 외면했다는 반성을 하고 있던 터였다. 내가 장악할 수 없는 인물,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미실은 실제로 내가 감당하기 버거운 인물이었다. 내가 훈련받은 도덕을 간단히 뛰어넘는 여인, 내가 아는 역사를 단단히 배반하는 여인, 자신이 부여받은 시대를 가장 충실하게 살아가는 배덕자. 그녀에게 사로잡혀 시간 여행을 하는 일은 즐거웠다. 미실에게 정열과 순정을 다 바친 아름다운 남자들을 만나는 일도 행복했다. 그리고 실로 그녀의 음덕을 입은 것인지, 나는 이 부족한 소설로 뜻밖의 행운까지 누리게 되었다. - 김별아
::추천글
작가의 적극적인 탐구 정신, 거침없는 상상력, 호방한 서사 구조에 의해 진지하게 형상화됨으로써 미실은 천오백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아름다운 신라 여인으로 되살아 났다. - 김윤식(문학평론가)
거침없는 소설 문법, 정려한 문체, 도발적 캐릭터로 요약되는 <미실>은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과 함께 여성의 새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 박범신(소설가)
안정적이고 우아한 문체 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생한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인 소설이다. - 김연수(소설가)
호주제 폐지가 기성사실화된 현시점에 <미실>이야말로 여성 인권 신장에 한 켜를 보탠 혁신적인 성과다. - 김원일(소설가)
미실은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자유혼, 모성의 관능을 느끼게 해준다. 미실은 부드럽고도 강하다. 힘이란 이런 것이다. - 성석제(소설가)
작가는 이 소설에서 여성을 통제하는 제도가 확립하기 전, 현대와 같은 성 모럴이 정립되기 전의 여성을 되살려 냈고, 그녀를 통해 가장 자연스러운 여성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 김형경(소설가)
<미실>은 우리 역사의 일부이면서도 우리가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 - 서영채(문학평론가)
이 소설로 인해 미실은 천오백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한국 문학 사상 가장 개성 있는 여성으로 거듭 태어났다. - 하응백(문학평론가)
'팜므 파탈'의 전형으로 평가되어 온 <화랑세기> 속의 여인 미실은 아름답기에 치명적이고, 치명적이기에 위험한 여성 주체의 기표 그 자체이다. - 김미현(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