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가 피어 있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폭염의 계절
젊은이들도 힘든 계절에 늙은이들은 오죽하랴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넘어 어려운
정보화 시대를 견디는 사람들
기성 세대라고도 하는 세월을 견뎌온 사람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니며
국민교육헌장을 외며 자랑스럽게 교가를 불러 댄 세대
그리고 무수하게 불러봐서 꿈속에서도 잠꼬대로 부를 수 있는
애국가
애국가를 부르던 세대가 지고 있다
폭염에 스러지고 있다
7말8초의 열대야를 견디며 무궁화는 피어 있다
이 찌든 여름을 견디면서 피로한 몸이 애국가를 잊었을까 무궁화를 보며
애국가를 불러보는 이 여름의 아침
젊은이도 견디기 힘든 세월을 늙은이들은 또 오죽하랴
형제들 이름도 기억 못 하는 늙은이에게 애국가가 불려질까
그렇게 견뎌온 열대야와 폭염의 계절
늙은이의 눈에 무궁화가 화려하게 피어 있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화려한 무궁화는 이 여름에도 무궁할저
열정의 종류
열정의 종류가 많기도 많은 것은
사람들의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게 사람들 나이이다
살면서 타오르는 열정과 조용한 열정과
단순한 열정과 마지막 열정을 보았다 그러나
꽃들이 피는 것은 열정 때문만이 아니었다
열정을 다스린 나머지 힘으로 꽃들은 핀다
피지 못하고 봉우리째 마른 나무들도 열정 탓이다
그 열정으로 말라 죽은 봉우리들이 있다
열정을 뿌리 밑으로 내리고 그 나머지 힘으로 하늘을 향해
타오르는 힘으로 꽃들이 피어 있다 그 나머지 힘들을
무슨 색으로 피어 올릴까 하는 것은 꽃들의 몫이다
사랑의 향연으로 꽃밭이 향그럽다
※ 나정욱
1990년 <한민족문학> 창간호에 「실습 시간」 외 2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를 출간함.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