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 제10회

기 둥

원 시 림

 



 

 1.

어, 어! 넘어간다--.

아랫녘 이씨의 기겁을 하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흙덩어리가 벽에서 쏟아져 내렸지만 사람들은 피할 생각도 없이 기둥 하나씩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흙벽의 휑한 구멍 사이에선 먼지덩어리가 또 한번 쏟아져 들어왔고, 햇볕과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집 안을 휘돌았다. 온통 뿌연 흙먼지 속이었다. 재채기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지만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들보와 도리의 이음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지만, 그래도 아주 넘어갈 기미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잠해지는 사이로 사람들의 안도하는 표정들이 보였다. 뒷벽을 해머로 내리쳤던 건너마을 최씨는 아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텁텁한 마른 흙 냄새가 가라앉을 때쯤이 돼서야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잊고 있었던 듯 얼굴에 묻어 있는 먼지를 한번씩 훔쳐주었다. 그러면서도 그예 살얼음 같던 것에 금이 가고야 말았다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이제 그냥 지나칠 수는 없게 되었다는….

가끔씩 집이 살아있는 생명체로 느껴질 때가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경우도 있을까. 약간 안쪽으로 쏠리기는 했지만 별일은 없을 게라고 여겼던 기둥이 이제는 눈에 띄게 기울어져 들보와 도리로 연결되는 이음새는 손가락이 드나들 만큼 벌어졌고, 고임돌이 몇 개씩이나 빠져버린 주춧돌은 기둥 밑자락과 반 뼘 남짓이나 어긋난 채 흔들거렸다. 사실 '우지끈' 했던 소리는 뒷벽이 해체되면서 일어난 굉음에다 가슴 속에서 일어난 공명이 합해져 그만 철렁했던 것일 테지만, 사람들은 가슴이라도 무너져 내린 것처럼 기둥을 쳐다보았다.

아랫녘 이씨는 기우듬한 기둥을 쓸어내리며 사람에게나 지을 법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칭 우리 동네에서 한옥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대목(大木)'을 자처하는 그였지만, 이렇게 조심스런 집은 처음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사백 년이나 된 희귀한 집이라는 점도 그랬지만, 오랫동안 집을 상대해온 그로서는 집과의 어떤 교감 같은 것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노련한 사냥꾼은 느낌만으로도 사냥감의 크기나 성질을 직감하는 것처럼.

이 집이 이래봬도 명당자리에 세워진 집인디.

아버지는 지주목 세 개로 뒷곁의 기둥들을 받쳐놓고도 불안했던지 대못으로 기둥과 도리, 그리고 들보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러면서 계속 읊조린 말이 바로 그 말이었다. 명당자리.

이 집이 사방 백리 근동서 질로 좋은 자리에 세워진 집이란 말이지. 일정 때야 독립운동 헌다구 이리 휘둘리구 저리 내둘리구 혀서 허리를 못 피구 살었지만, 이 집 생기구 사백 년 동안 정승 판서가 대여섯은 족히 나왔다니께….

겨우 명맥만은 유지하던 조선 말엽, 그나마도 '서원(書院)'이라는 현액이 걸려 있을 때 몇몇 서생들이 관복 자락이나 얻어 입었던 걸 가지고 아버지는 대단한 벼슬아치들이 기거했던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건 명당자리에 대한 하나의 믿음인지도 몰랐다. 이후 당쟁의 언저리에 끼기는 커녕 아예 죽어지내야만 했던, 몰락한 학파의 추종자들이 입신양명에 대한 꿈을 끝내 버리지 못했던 것처럼.

대목 이씨를 선두로 집을 한바퀴 돌아보고 나서,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는지 어른들은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부터 빼물었다. 아까부터 대문 밖에 서서 안마당을 기웃거리던 아랫녘 김씨 영감님은 엉거주춤한 모양새로 지팡이를 움켜쥔 채 간신히 집으로 돌아갔고, 이런 저런 말참견을 하던 동네 아주머니들도 하나둘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다만 아버지만이 여기 저기를 기웃기웃 살피며 다음 작업을 어디서부터 손써야 할지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계속 되뇌고 있는 말은 이런 것일 터였다. '괜한 공사를 벌여서 사고를 내는 거 아녀. 이 집이 벌써 우리만도 오 대(代)를 내려오는 집이 아닌가 말여. 입식 붴이구 뭐구 여편네 말을 듣는 기 아녔는디…' 하는.

명당자리라는 말이 아버질 이 산골짜기에 평생동안 가두어 두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나는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는 구들장을 마당가로 옮겨 놓으며 그런 질문들을 눈빛으로 보냈다. 아버지는 부모 돌아가시고 삼 년 내로 집구조를 바꾸지만 않아도 그 사람은 효자라고 했었는데, 결국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사 년이 지나기가 무섭게 대공사를 벌이신 걸 보면 이 집에 대해 그리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 성싶었다.

사백 년. 한 세대를 삼십 년으로 잡아도 족히 십삼 대가 넘는 세월. 바둑판만한 것부터 크게는 웬만한 책상 넓이쯤 되는 구들장을 끌어내며 나는 사백 년이라는 시간을 느껴보려 했다. 고래 가득 낀 사백 년 된 그을음 덩어리, 흙벽 속으로 얽어 놓은 대나무와 수수깡, 그리고 해독 불능의 한자가 앞뒤로 빼곡이 써져 있는 벽지 쪼가리들. 이 방 안에서 몇 명이 새로 태어나고 다시 눈을 감았을까? 그러고 보면 내가 이 집에서 태어난 마지막 사람이기도 한데….

나는 구들 밑에 쌓였던 시커먼 흙을 끌어내고 나서, 흙벽에서 뜯어낸 한지들을 모아놓고 한장 한장 살펴보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간은 서원으로 ―사실은 서당보다 조금 큰 정도였겠지만― 쓰였다는 말이 사실인지, 벽지 앞뒷면은 각양각색의 서체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보기에 괜찮거나 혹시나 가치가 있을법한 몇 장의 한지를 골라 뒷뜰 장독대 옆에 늘어놓았다. 햇볕이 제법 따갑기는 했지만 바람이 선선해서 한지를 말리기엔 괜찮은 날씨였다.

사람이구 짐승이구 햇볕을 잘 쪼이구 살어야 병이 읎는 거마냥, 책두 일 년에 두어 번은 햇볕을 쬐줘야 탈이 안 생기는 법이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만 해도, 봄 가을 햇볕이 좋은 날이면 사랑 앞마당이 누런 빛의 고서(古書)들로 발딛을 틈이 없곤 했다. 그리면 나는 책들이 골고루 햇볕을 쪼일 수 있도록 이따금씩 책장 넘겨주는 일을 맡았다. 해가 질 녘이면 사랑방 다락 속에 눅눅하게 쌓여 있던 책들은 한껏 뻣뻣한 생기를 되찾아 다시 서고에 채워지곤 했다.

니들은 풍수(風水)가 무슨 미신인 것처럼 생각덜 하는 모냥이다만, 그게 아주 틀린 것두 아니다. 햇볕 잘 쪼이구, 좋은 물이 지척에 있구, 바람 잘 통하구, 거기다 도적덜이 넘보기 쉽잖은 땅을 찾어야 사람덜이 기를 펴구 살 수 있는 건 당연헌 이치 아니겠느냐.

할아버지가 풍수를 거론하시는 날이면 어김 없이 할머니의 묏자리 얘기로 이어지곤 했다. 할머니 산소에서 바라다 뵈는 산에 낙타 등처럼 두 개의 형제봉이 솟아 있는데, 할머니 산소를 거기다 쓴 다음에 딸만 내리 넷이 태어났던 우리 집에 형과 내가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풍수는 아들만 점지하고 딸들하곤 아무 상관도 없는 모양이죠?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결국 여쭤보지 못한 의문을 삼키면서 사랑방에서 마주 내다보이는 우복산(牛伏山)을 바라보았다. 소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이름지어진 우복산의 남쪽 언저리, 그러니까 소로 치자면 오른쪽 앞발 정강이 쯤에 할머니의 산소가 있었다. 풍수지리에서는 묏자리가 소의 형국이면 자손이 부(富)해진다고 했으니, 좋은 자리임에 분명했다. 그리고 사 년 전엔 할아버지마저 들어가신 그 땅 속. 햇볕 따스하고, 바람 잘 통한다는 곳.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 결혼한 형은 딸만 내리 둘을 낳았다. 형제봉이 자매봉으로 바뀌기라도 한 건지….

우복산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을 때 대추나무 중간께에서 '개선행진곡'이 들려왔다. 누군가 내게 할 말이 있다는 신호. 그러나 내가 막 휴대폰을 꺼내 들었을 땐 행진곡이 뚝 멎은 뒤였다.

우리 집에서는 대추나무 부근에서 휴대폰이 제일 잘 터졌다. 집수리가 끝날 때까지 임시 거처로 사용하는 사랑채에서는 '통화권이탈'이라는 메시지가 뜨기 때문에 휴대폰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급한 대로 뒷뜰에 있는 대추나무 중간께에 비나 피할 수 있도록 궤짝을 올려놓고는 대추나무 시집 보내듯 휴대폰을 그 속에 집어넣어 둔 것이었다. 그나마 첩첩산중 산골까지 전파가 들어온다는 게 다행스런 일이었다. 현대판 명당자리라고나 할까. 휴대폰이 잘 터지는 창문 옆을 도서관 최고의 명당자리로 치는 학생들처럼.

나는 멋적게 휴대폰 안테나를 꺼냈다 집어넣다 하면서 만지작거렸다. 오 분이 넘도록 휴대폰은 개선행진곡을 울리지 않았다. 유리일까? 나는 대추나무 가지 위에 얹혀진 궤짝에 휴대폰을 집어넣기까지 몇 번이나 메시지가 들어온 게 없는지, 수신상태는 양호한지 확인을 했다. 수신상태를 나타내는 'ＴＹ' 옆으로 막대기가 두 개에서 네 개를 오가며 반짝거렸지만, 들어온 메시지는 하나도 없었다.

이제는 다른 남자의 품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는 여자. 마주 보이는 것 같아서 뛰어들다보면 턱없이 부딪치고 마는. 차갑고, 날카롭고, 예리하게 파고드는 여자. 하지만 뻔히 상처 입을 걸 알면서도 자꾸만 빠져들고 마는…. 나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대추나무 그늘 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자 한동안 소리를 죽이고 있던 매미들이 배 밑에 붙은 발성기와 공명기를 울려대며 일제히 짝짓기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2.

"아 글쎄, 그냥은 안된다니까. 이릏게 기둥이 기우뚱헌데 부루꾸(block)만 받춰준다구 마냥 서 있을 줄 알어? 접때 김 영감님 말씀두, 기둥부터 바로잡어야 탈이 없다구 안허드냐?"

"저걸 잘못 건드맀다간 빼두 박두 못할 텐디…. 부루꾸만 잘 굳으먼, 저눔에 나무쪼가리가 뭔 소용이냔 말여."

대목 이씨와 건너마을 최씨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니가 언제 한옥을 지어봤다구 아는 소리냐? 소리가…. 부루꾸를 받춰주자면 이눔 저눔 지붕을 건드리잖고는 안될 것인디…."

"건드리긴 그걸 왜 건드려. 이래 똑바로 쌓아 놓구는 시멘트루 쳐발라서 굳기만 허문 만사 오케이지."

"허, 그눔. 말은 그럴싸 혀두…, 봐라! 문제는, 우리가 지붕은 고스란히 놔두구 벽허구 바닥만 보수를 한다는 겨. 벽허구 지붕허구 딱 맞추기도 힘든디, 거기다 그눔덜이 궁합을 맞추자먼 천상 지붕이 한번 자리를 잡구 내리앉어야 될낀데. …그 하중(荷重)을 못 이기구 삐끗하기라두 허문, …니가 책임을 질래?"

대목 이씨는 기둥을 똑바로 해놓지 않고는 작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쪽이었고, 건너마을 최씨는 일단 벽돌로 벽을 튼튼히 만들어 놓은 뒤에 기둥을 적당히 맞춰 놓으면 된다는 쪽이었다. 둘은 양손으로 연신 지붕과 벽 모양을 만들어가며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대목 이씨가 한옥쪽인 반면, 건너마을 최씨는 양옥쪽의 전문가를 자처한다는 데 있었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주장들이었지만 쉽게 결론이 날성싶지는 않았다. 이번 공사의 총감독 격인 대목 이씨는 어차피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며 핏대를 높였고, 말끝마다 둘째아들이 사법고시 1차에 합격을 했으니 조만간 집안에 판검사 나오게 생겼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오죽하면 별명이 판검사일까― 최씨도 좀체 물러설 기세는 아니었다. 평소에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지만, 언쟁이 붙기라도 하면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왕고집으로 소문난 두 사람이었다.

게다가 집주인인 아버지는 아까부터 입을 꾹 다물고 추녀 끝자락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대목 이씨가 김씨 영감님 얘기를 들먹일 때마다 슬며시 외면하는 눈치였다. 대목 이씨는 김씨 영감님이 일제시대 때부터 몇 번인가 우리 집 보수 공사에 참여했다는 얘기를 덧붙이며, 연신 판검사 최씨를 설득하고 나섰다. 그때마다 판검사 최씨는 괜한 일로 큰일 벌이지 말자는 투로 손사래를 쳤고, 아버지는 최씨 의견에 무게를 실어주는 기색이 역력한 채로 입만은 굳게 닫고 있었다.

어머니는 대단치도 않은 일로 시간을 허비한다고 성화를 댔다. 아버지도 나도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인정하는 터였지만, 어머니는 모두 집안 내력으로 치부하곤 했다. 그렇지 않고야 이런 산골에서 오 대를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특히나 이번 공사에서 결단력 부족으로 지지부진했던 것 중의 하나가 하수구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한옥일 때야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양옥구조로 바꾸자면 어떻게든 하수를 처리할 공간이 집 구조물 안에 필요했다. 아버지는 하수구를 밖으로 빼내서 그냥 흘려보내자는 쪽이었고, 나는 뒷마당 중앙에 하수통을 깊이 파서 땅 속으로 스며들도록 하자는 쪽이었지만 누구도 강력히 밀어부치질 못했다. 아버지의 의견대로 한다면 일은 쉬울지 모르지만 겨울이면 하수구가 얼어붙어 큰 낭패를 겪을 가능성이 컸고, 내 의견대로 한다면 괜히 힘만 빼고 공은 없을 게라는 거였다. 더구나 우리집 자리가 땅 파기가 쉽지 않은 자리라는 소리까지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대목 이씨나 판검사 최씨마저 그 일 만큼은 집주인이 알아서 결정하라는 투여서 좀체 결론이 나질 않았다.

기둥을 바로잡는 문제로 어른들간에 의견이 분분한 와중이라 하수구 문제는 사실 큰 논쟁거리도 못되었다. 결국 어머니가 내 의견에 가세해 뒷마당을 파기로 했지만, 예상했던 난관을 피할 수는 없었다. 허리 깊이까지 파내려갔을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아무리 곡괭이질을 해도 모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대목 이씨와 판검사 최씨는 역시 좋은 집자리라고 감탄을 연발했지만 모래층이 나와야 물이 잘 스며들 수 있는데, 밑으로 파내려갈수록 찰흙만 곡괭이에 철썩 철썩 달라붙어 올라왔다. 결국 점토를 겨우 면한 지점에서 작업을 마무리하기로 했지만, 그렇게 하기까진 여름에도 땅은 밑으로 내려갈수록 온도가 떨어진다는 걸 한참이나 실감한 뒤였다.

나는 어머니가 내려준 물 한 사발을 한입에 들이켜고는 삽자루를 깔고 구덩이 바닥에 앉았다. 서늘한 냉기와 축축한 습기. 반지하방에 들어앉은 서울의 내 자취방이 꼭 그랬다. 여름이면 지상의 방보다 시원하긴 했지만, 그건 쾌적한 느낌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늘상 곰팡이와 바퀴벌레가 들끓는 데다 방바닥에 누워 낮잠이라도 들라치면 한여름에도 으스스한 몸살기가 한나절이나 실하게 따라다니곤 했다. 양택(陽宅)이 별로 안 좋은데. 이런 방에서 공부를 해가지고, 어디 교수님이 될 수 있겠어? 유리가 처음 내 방에 왔을 때 했던 말이었다. 종일 형광등을 켜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 설령 기(氣)가 들어온다고 해도 다 빠져나가버릴 창문 구조.

삼 년 전, 대학교 4학년 때 나는 유리와 함께 '한국의 풍수사상'이란 교양과목을 들었다. 양택(陽宅)이나 음택(陰宅), 그리고 지기(地氣)니 혈(穴)이니 용(龍)이니 맥(脈)이니 하는 말을 한 학기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서구적 합리주의 사고로 정리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시간강사의 마지막 강의를 듣고는 힘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우리는 서구적 합리주의가 아니라면 뜬구름 잡는 미신으로 치부하는 게 상식이었으니까.

하기는 그 때 우리에게 자취방의 양택이 문제거리는 아니었다. 함께 샤워를 하기엔 욕실이 너무나 비좁았고,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바퀴벌레와 아침 여섯시만 되면 어김없이 울리는 이웃해 있는 고아원의 종소리가 너무도 짜증스러웠던 것이다. 언젠가 유리가 내 위에서 몸을 움직이다 말고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네 방에선 언제 바퀴벌레가 나와 내 등 위를 기어갈지 불안해서, 도저히 오르가슴을 느낄 수가 없어.

내가 유리의 몸 위로 올라가 2층을 이룬다고 해도 결국 지표면에는 도달할 수 없는 땅 속의 방. 나는 유리의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다는, 그리고 종국에는 유리의 차지가 될 것이 틀림 없는 대학 재단에서 전임교수 자리를 얻으리라는 희망 하나로 그녀의 몸 위에서 기를 모아가며 용을 썼었다. 당장 이번 학기라도 석사논문만 잘 끝냈다면 시간강사 자리 쯤은 배정받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난 가을 유리가 결혼을 한 이후 나는 단 한줄의 논문도 쓸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휴학원을 제출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사백 년 된 한옥을 양옥으로 탈바꿈시키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정략적으로 팔려간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유리의 결혼을 말리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그러니 제발 날 버리지 말라고 애원하지도 않았다. 그때만해도 유리는 내 장래를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자기암시를 불어넣던 때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허탈함이란….

 

"아, 그 참 집자리 한번 기맥히게 좋구마는."

"그러게, 이릏게 딴딴한 자리가 흔헌 기 아니지."

대목 이씨가 구덩이 속의 나를 내려다 보며 말했고, 판검사 최씨도 구덩이 밖으로 퍼올려진 흙덩어리를 매만지며 맞장구를 쳤다.

"저기 저, 산줄기를 좀 봐. 좌청룡 우백호가 확실한 데다가 남주작에 북현무까지…."

"지가 풍수를 알믄 얼마나 안다구 문자를 쓴댜? 개코나, 노름할 땐 돈 따는 자리도 지대로 못 맞춰서 툭허믄 주머니를 몽땅 털리구 일어나는 주제에."

둘은 나를 내려다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구덩이 속에서 바라본 지상의 두 사람은 거꾸로 누운 그림자처럼 음침한 채로 흔들거렸다.

한동안이나 일손을 놓아 어머니한테 지청구만 들었던 대목 이씨와 판검사 최씨가 물 만난 고기처럼 달려들어 하수구 구덩이에 돌을 쌓기 시작했다. 큰 돌들을 사이가 뜨게 묻으면 그 사이로 물이 고일 테고, 그 다음엔 땅 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들 것이었다. 결국 구들 밑에서 나온 돌들이 고스란히 하수구를 메우는 데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길이나 되는 하수통이 전부 메워졌다.

그러나 빗물이 들지 않도록 하수통 위에 장판지를 깔면서 나는 등줄기를 내려오는 서늘한 기운을 느끼고 말았다. 명당자리는 파고 뚫는 일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반드시 지기(地氣)가 소진되기 쉽다던 풍수학 강사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땅을 판 그 자리가 지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일테면 뒷산의 산줄기에서 이어져 내려온 땅의 기운이 평지와 맞닿은 지점이 바로 뒷마당 언저리껜데, 땅을 두 길 가까이 파고도 모자라 돌무더기로 채워 놨으니 지기에 영향을 안 주고 배기겠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하수통 속으론 늘상 지저분한 물이 고이고 스며들기를 반복할텐데.

마당과 나란하도록 하수통을 덮은 뒤에 떠오른 생각이니, 다시 돌을 끄집어내고 전처럼 땅을 메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에게 그 생각이 들었다면 필경 돌을 다시 헤집어내라고 호통을 쳤을 테지만.

오대조께서 지금의 우리집을 선택할 때 조금의 주저함이나 동요가 없었던 데는 우리집 자리가 명당자리라는 사실 외에 다른 건 없었다고 했다. 병이 넘보지 못할 집, 어떤 화근이나 흉이 생기지 않을 집. 그런 집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보셨던지 강원도에서 충청도를 넘나드는 열 달 간의 여정을 우리집 처마 밑에서야 풀었다고 하니, 필시 보통집은 아닐 거라는 게 어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물론 내가 보기에도 여염집과는 다른 뭔가가 서려 있다는 느낌이 분명했다. 불끈 불끈 일어섰던 산줄기들이 쭉 이어져 내려오다 우리집 언저리에서 좌우로 말려 조심스레 감싸 안은 품이라든가,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솟은 자리, 그리고 뒷산의 느티나무 무리에 둘러싸여 바람에 흔들리는 운치를 우복산 언덕배기에서 내려다볼라치면 누구라도 무릎을 치는 명당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시청 문화계 사람이라든가 역사학자들은 거의 해마다 찾아와 ―명당자리라기보다는 학술적인 의미였겠지만― 우리 집 사진을 찍어가거나, 동네의 나이 드신 어른들 인터뷰를 따가곤 했다.

물론 어느 자리라고 완벽할 수가 있을까. 마을을 싸안고 부설된 충북선 철도가 지맥을 모두 끊어놓았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근동에서 좋은 자리를 찾으라면 단연 거론되는 곳이 바로 우리집 자리였다. 가타부타 말들은 많았지만 뒷산을 돌아가며 쓰는 묏자리의 숫자가 해마다 늘어가는 것만 봐도 충분한 증거가 되고도 남았다.

나쁜 기운은 나무를 심어서 걸러내고, 좋은 기운은 탑을 쌓아 모이게 한다고 했던가. 나는 땅에 파묻힌 돌들은 땅 속으로 탑을 쌓은 셈치고, 뒷뜰의 느티나무가 액(厄)을 걸러줄테니 아무 문제가 없을 게라고 혼자 자위하고 말았다. 그러나 꺼림칙한 마음이 아주 없어지지는 않아, 하수통 위의 흙을 다져 밟으면서도 연신 뒷산의 산줄기를 올려다보았다.

 

 

3.

1907호실 문을 열자 유리는 목욕가운을 걸친 채로 달려들어 내 가슴에 안겼다.

아무 말 하지마. 이러구 하루 종일을 있으래도 좋아.

유리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은 채 샴프향을 풍겼다. 유리를 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동시에 나는 그녀의 입술을 찾아 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입 속으로 찝찔한 눈물 줄기가 스며들었다.

안녕 나야, ……. 몇 번씩이나 전화를 했는데 안 받는구나. 우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 지금 너무 보고 싶은데…. 메시지 받는 대로…(녹음 중단되는 소리).

하수통을 파느라 피곤했던 나는 간밤에 울린 개선행진곡을 듣지 못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일어나자 마자 휴대폰 메시지부터 확인해봤고, 편지봉투 모양의 아이콘은 누군가 내게 남겨놓은 말이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유리의 목소리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다. 평소 같지 않은 분위기도 이상했지만, 특히나 마음이 가는 말은 인사말 부분이었다. 분명히 '안녕, 나야.'가 아니고 '안녕 나야,'였다. 안녕이라는 말과 나야라는 말은 곧바로 이어졌고, 그 뒤로 한참의 사이가 있었으므로 그 어법은 많은 연상작용을 불러일으켰다. 혹여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넘겨들을 수도 있을 인사말이었지만, 학부와 대학원을 합쳐 6년이나 국문학을 전공한 내가 듣기에는 쉼표가 어느 자리에 찍히느냐에 따라 전혀 색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나'가 지칭하는 사람이 누굴까? 내가 들은 대로라면, 게다가 '나야'를 말하는 음조를 감안한다면 '나'는 메시지를 남긴 당사자인 유리가 아니라 메시지를 듣게 될 나를 지칭하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유리)처럼 여길 만큼 나를 사랑한다는 의미. 너(나)와 나(유리)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나는 유리가 원하는 대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눅눅한 고서를 햇볕에 말리듯 가볍게 뒤척여 가며 알몸이 되었고, 이내 뻣뻣한 생기를 되찾아 그녀의 자궁 속으로 스며들었다. 유리는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을 맞받아 튕기며 하얀 다리를 내 허리로 감아올렸다. 그리곤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나팔꽃처럼 덩굴손을 내밀어가며 필사적으로 내 몸 이곳 저곳에 흰빛의 덩굴을 감아올렸다.

시청 앞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시원스레 흩어지는 모습이 커튼 사이로 보였다. 그 너머엔 붉은 빛 노을을 남기고 넘어가는 해와 덕수궁, 그리고 옛 러시아공사관과 경향신문사 건물도 보였다. 돌담길을 걸어나오는 연인들을 보면서, 나는 왜 하필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치는 고종황제의 모습을 상상했을까. 직선거리로 잰다면 불과 이삼백 미터나 될까 말까한 거리를 옮기면서 그는 어떤 수읽기를 했을까 하고.

유리의 덩굴손이 내 어깨를 잡아당겨 다시 침대에 눕혔다.

"나 이혼했어. 어제."

유리의 말은 꽃대궁 저 안쪽에서 흘러나온 소리처럼 꽃잎을 흔들어댔다. 그리고 그 소리는 확성기 바로 앞에서 들린 소리처럼 내 머릿속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나팔꽃. 어제 이혼을 하고, 그리고 곧바로 찾은 사람이 왜 하필 나였는지, 그게 의미하는 게 뭔지.

"너, 언젠가 나한테 암소에게 인공수정하는 얘기 한적 있었지? 내 꼴이 꼭 그 암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난 어쩌면 남편한테 하나의 구멍에 불과했는지 몰라."

할아버지 삼우제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우리 집에서 기르던 암소가 발정이 났는지 오후 내내 울어대며 다른 소의 등 뒤로 앞발을 치켜올리며 올라타는 시늉을 보였다. 아버지는 상복을 입은 채로 읍소재지에 하나뿐인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수의사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아 피자배달 오토바이 같은 걸 타고 달려왔다. 수의사는 빨간 통 속에서 길쭉한 고무장갑과 장난감 물총처럼 생긴 걸 꺼냈다. 그리곤 고무장갑 낀 손을 암소의 꼬리 아래 깊숙한 곳에 집어넣고는 눈을 깜작거려가며 뭔가를 감지하는 듯했다. 맞네요. 수의사는 그렇게 말하고, 100원짜리 모나미 볼펜심처럼 생긴 걸 장전해 빨간색 액체를 꼬리 밑에 쭉 짜넣었다. 뭔가 대단한 구경거리가 생기려나 하고 잔뜩 기대를 했던 내게는 보통 싱거운 일이 아니었다. 수의사는 10분도 안 걸려서 송아지를 만들어주곤 3만 원을 챙겨 돌아갔고, 그 동안 소는 눈만 멀뚱히 뜬 채 여물통을 뒤지고 있었다.

암소와 수소 사이엔 빨간색 액체가 담긴, 마치 빨간색 볼펜심처럼 생긴 것 외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그렇게 해서 태어난 송아지도 교미를 하고, 다시 송아지를 배고 하는, 생명의 본능을 지니게 된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구멍,

"사실, 내가 구멍 정도로 생각되는 모멸은 참을 수도 있었어. 나 역시 그 남자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한 건 아니니까. 어차피 성(性)이란 남녀 사이의 계약일 뿐이잖아. …그런데 그 남자가 먼저 계약을 파기했어. 회계사라나 법무사라나 한다는 년하고 바람이 난 거야. 첨엔 내가 결혼할 때 처녀가 아니었던 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더니, 나중엔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고 제발 이혼해달라고 손바닥을 비벼가며 빌더군. …어쩌겠어. 도장 찍어줬지."

유리는 뭐가 재미있는지 내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한참을 웃었고, 나는 까닭도 모른 채 겨드랑이가 간지러워져 함께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큭큭거리며 웃다가 우리는 허탈한 표정으로 천장을 쳐다보았다.

"내가 이혼을 한다니까 우리 아빠가 뭐랬는지 알아? '잘 됐구나. 어차피 그 집안은 정치생명이 끝난 집안이다. 물 먹인 고깃덩어릴 몰라보다니, 내 눈이 많이 흐렸던 모양이야.' 이러는 거야. 후훗, 우리 아빤 모든 게 고깃덩어리하고 돈으로만 보이는 사람이니까."

"내년 선거에 출마는 하신대?"

"그럴 테지. 거기 들인 돈이 얼만데. 우리 아빤 소백정 소리 면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야. 게다가 금뺏지를 달 수만 있다면…."

내가 유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푸줏간집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소를 잡아서 토막토막 낸 뒤에 돈을 받고 판다고…. 틀린 설명은 아니었다. 나는 그런 집 딸이라는 유리를 처음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푸줏간이 우리 나라 한우 유통의 상당부분을 점유하는, 1년 매출액이 수백억에 달하는 ○○축산물처리장을 모기업으로 하고, 수만 평의 농장과 ○○냉장유통을 거느린, 그리고 제법 규모가 큰 전문대학까지 소유한 중견기업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그녀를 보는 눈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순히 그녀가 부잣집 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칼자국으로 다듬어진 결과이긴 하지만 몇 번의 방학을 거치면서 유리의 얼굴은 몰라보게 달라졌고, 그렇게 다듬어진 미모는 내게 연민의 정 같은 걸 느끼게 만들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풍수는 균형보다 조화를 중시한다며 특히 성형수술은 조심에 조심을 해야 한다고 풍수학 강사는 강조했지만, 어쨌거나 유리의 얼굴이 변한 후에야 그녀의 진실한 내면을 읽게 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끝내 유리는 날 선택하지 않았다. 그녀와 나 사이엔 모종의 계약 같은 것이 존재하는 셈이었고, 내가 그 계약을 파기하려고 들었다면 우리 사이는 벌써 깨져버렸을 것이다. 애초부터 유리는 나를 결혼 상대자로 지목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으니까. 언젠가 내가 프로포즈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유리는 표정이 돌변하더니 한마딜 툭 던지고 입을 다물어 버렸었다. 넌 나에 대해 아는 게 너무 많아. 내 코 높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어디 어디다 칼을 댔는지, …별별 걸 다 아는 사람하고 같이 사는 건 재미 없어.

"난 아빠를 이해해. 아빠가 소백정 소리 듣기 싫어서 하는 게 뭔지 알아? 줄창 정치인들한테 뒷돈을 대주는 거였어. 그 걸로 아빤 지구당 위원장 자리라도 차지할 생각이지만, 어차피 정치인들도 그 돈으로 표를 사는 건 똑같은데 뭐. 표백정 말이지."

나는 유리의 가슴 사이에다 얼굴을 비비며 그녀의 체취를 들이켰다. 아기들한테서 나는 젖비린내와도 비슷한, 그리고 땀내가 섞여 고혹적이기까지 한. 내가 네 전화를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네가 이혼을 당하고, 그리고 결국엔 내게 달려오게 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유리는 내게 등을 보이고 누운 채 빌어먹을 공부도 더 하고, 아빠 밑에서 경영수업도 받고, 그리고 문화재단을 설립해서 사회활동도 할 거라며 묻지도 않은 말을 잔뜩 늘어놓았다. 그리곤 이내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잔뜩 웅크리고 누운 채 잠든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사랑 없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 그 시집살이가 얼마나 고되고 외로웠을지 나는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유리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학자출신인 그녀의 시아버지가 정계에 입문을 했다가 대의명분에 맞지 않는 곳이라며,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는 얘기는 웬만큼 정치에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얘기였다. 그리고 라디오에 나와 법률정보를 제공하는 유리의 남편이 여성지 인터뷰 기사에서 '아내와 별거중'이라 실토한 사실, 문화적인 괴리감 때문에 시댁 식구들과 불화가 심했다는 주간신문 기사 등등. 나는 그녀에 대한 정보라면 꽤 세밀하게 알고 있었다. '잘 됐구나'하고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두 부녀가 제발 이혼만은 말아달라고 빌었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 정치자금은 얼마든지 댈테니, 제발 버리지만 말아달라고.

 

 

4.

음머, 음ㅁ-머--.

소의 마른 울음소리가 아침부터 영 개운칠 않았는데 점심 때가 지나서는 급기야 굵은 눈물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처마 밑에다 허리 높이 쯤 벽돌을 옮겨 놓고는, 녀석의 점심으로 막 여물 한 삼태기를 퍼다 주고 돌아서는 길이었다. 여물에는 신경도 안 쓰고 나를 멀거니 쳐다보던 소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데야, 비록 가축이라지만 마음이 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녀석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니,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모습과 왠지 닮았다는 느낌까지 들고서야….

기둥 때문에 며칠 신경을 소진한 데다 유리에 대한 문제로 뒤숭숭한 뒤라 나중엔 별 생각이 다 든다고 혼잣소릴 했지만, 한 번 끼어든 생각은 좀체 사라지질 않았다. 우리 집에서 태어나 벌써 삼 년을 같이 살아온, 게다가 이 황소는 할아버지 삼우제가 있던 날 인공수정을 해서 잉태된 바로 그 소였다.

내가 어렸을 땐데, 아빠가 맛있는 걸 사준다고 해서 회사, 후훗, 도축장 ―그때만 해도 무척 작은 건물이었는데, 사람들은 거길 도살장이라고 불렀어― 앞에서 나하고 엄마, 그리고 동생이 아빠를 기다린 적이 있었어. 한참을 기다렸는데 아빠는 안 나오시고, 소를 실은 트럭들만 들락날락 하는 거야. 그때 마침 우리 앞에 트럭이 한 대 섰는데, 소들이 눈물을 흘렸는지 눈 밑으로 난 털이 한결같이 축축하게 젖어있더라구. 어린 마음에도 저것들이 오늘 죽는 날인 걸 아는구나 싶었지. 결국은 그날 아빠가 사주신 최고급 꽃등심을 불판 위에 다 게워내고 말았어.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알아? 전부 돈으로밖에 안 보여. 요즘은 압축된 공기를 소의 정수리에 쏘아서 기절시킨다지만, 얼마 전만해도 전기충격으로 소를 기절시킨댔어. 몇 만 분의 일초 동안 소의 몸에 흐른 전류가 하나의 생명을 상품으로 만드는 거야. 잘리고 추려져서 포장이 되면 바코드와 함께 몇 g과 얼마라는 가격이 찍혀서 박스에 차곡차곡 쌓이는 거지. 첨엔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 과정이 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생기고 했는데, 지금은 아냐. 난 고깃덩어리를 포장한 상자에는 관심도 없고, 그 상자와 교환되는 돈에만 관심이 생겨. 그 몇백억씩 한다는 매출액 말이지. 그 중 내게 얼마나 상속이 될 건지, 그 걸로 난 뭘 할 수 있는지. 어쩌면 난 아빠의 죽음 마저도 상품으로 평가할는지 몰라.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과정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포장된 상자가 바뀌어서 내게 돌아올 마진을 생각하게 되는 거야. 별거 아냐. 간단한 거야, 죽음이란.

나는 외양간 앞에 서서 몇 번이나 얼굴을 비비며 마른세수를 했다. 할아버지는 소 한 마리를 팔고 사는 일도 날을 받아서 하도록 했었다. 소끔이 폭등을 하거나 폭락하는 것에는 큰 관심도 없었다. 집안에 생물이 들고 나는 일인데, 아무렇게나 돈을 받고 팔 수는 읎는 일이지 않겠느냐. 나는 눈물이 어린 소의 눈을 들여다보며, 그제 아침 호텔 카운터 앞에 서서 체크아웃을 하던 유리를 떠올렸다. 그녀는 몇 kg의 고깃덩어리로 우리가 섹스했던 자릿값을 냈을까 하고. 그녀가 지금껏 지불해왔던 호텔비, 술값, 밥값, 그리고 우족, 꼬리, 머릿고기.

 

"안돼,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두, 하필.”

"김 영감님 없이는 안된다니까유. 일정 때 그 영감님 손으로 이 집을 고친 적도 있었다면서유? …이게 우스워 보여도 까딱 균형을 잘못 맞췄다간 큰 사고 낸대니까유. 내가 대목, 대목혔지만 그 영감님한테 대면 새발에 피지, 피여.”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판단을 했는지, 대목 이씨가 기둥을 바로 세워줄 사람으로 김씨 영감님을 극구 추천하고 나선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버진 그것만은 안된다며 대목 이씨를 설득했다.

"첨엔 자네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지 않았나. 거기다 최씨까지 붙여줬는데….”

"다른 건 다 돼두, 저 기둥은 자신이 없어유. …보세유, 첨에 공사를 시작했을 때보덤 이제 벽을 다 허물고 나니께 훨씬 더 기울어진 걸.”

판검사 최씨하고는 합의를 봤는지, 대목 이씨가 기둥을 툭툭 쳐가며 제법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아닌게 아니라 벽은 허물어 앙상한 데다 주춧돌까지 사방으로 드러났으니 기와지붕이 붙어 있어 집모양이랄까, 그도 아니면 폐가나 다름없어 보였다. 게다가 그 한가운데 붙어 있는 기둥이라고 하는 것이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삐딱하니 안쪽으로 쏠려 있어서야.

"다음주버텀은 장마두 몰려온다는디, 그때까지는 부루꾸를 뺑 돌려가며 쌓아놔야 안심을 할 수 있을텐디….”

대목 이씨는 김씨 영감님을 불러오지 않으면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듯 숫제 댓돌에 걸터앉아 담배부터 빼물었고, 아버지는 난감한 표정으로 들보 도리 장여가 맞닿은 지점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천상 기둥을 바로 세워놓자면 들보와 도리를 들어올리고 기둥을 제대로 맞춰놔야 한다는 건데, 얼기설기 짜맞춰진 목조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떻게 짜여진 구존지 애매하기만 했다. 어찌보면 들보만 들어올려도 될 듯했고, 또 어찌보면 도리까지 받춰주지 않았다간 정말 큰 사고가 날 것처럼 위태해 보였던 것이다. 아버지 얼굴에는 이럴 바에는 애초부터 동네 사람을 쓰는 게 아니라 먼 데서라도 전문가를 불러오는 거였는데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한동네에 목수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있는 걸 아는 처지에 그러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판검사 최씨는 대문간 귀퉁이에 앉아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차피 한옥이니 자신이 나서서 될 것도 아니었고, 짐짓 핏대를 올리며 벽부터 쌓아놔야 한다는 주장을 폈지만 어깨 너머로 몇 번 개축공사에 참여했던 경력밖에 없었던 터라 더 나섰다간 좋은 소릴 못 듣겠다는 판단이 든 모양이었다. 물론 그 자신은 스물세 살에 두 손만 들고 분가해 삼십여 년 동안 안해본 일 없이 세상의 고초를 다 겪고 올 봄에서야 번듯한 집 한 채를 제 손으로 지었다고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무 기둥이나 서까래 하나 없는 양옥이었고, 개축도 아닌 신축이었다.

이번 만큼은 나도 뭐라고 나설 계제가 아닌지라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모래와 섞어 놓은 시멘트가 굳을까봐 비닐을 덮어놓고, 마루에서 나온 굵직한 마루널들을 뒷곁 모퉁이로 굴려 놓으며 아버지의 눈치나 살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종일 새참만 먹으면서 일은 하나도 진척이 없다고 핀잔을 하던 어머니도 언제부턴가는 집 주위를 돌며 작은 솥뚜껑으로 기둥들을 톡톡 두드리며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거꾸로 섰어두 좋다, 거꾸로 섰어두 좋다…. 처음 집을 지을 때 뿌리 쪽이 하늘을 향하도록 기둥을 쓰면 사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있다고 어디선가 들은 모양이었다. 그래, 그렇게 주문이라도 외우면 겨우 화를 면할 수 있다고.

하늘은 잔뜩 끄므러져 있었다. 여름 날씨 답지 않게 바람은 선선한 데다 간혹 비 들지 않은 먹구름들이 잔뜩 몰려다녔다. 벽도 없는 집 한가운데에 마루널을 하나 갖다 놓고 앉아 있으려니 습한 바람이 불어대는 것이, 게다가 서까래며 들보에서 느껴지는 눅눅한 느낌들은 사람의 심사를 어수선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까부터 집주위만 빙빙 돌던 아버지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다쳐서 생긴 상처들을 팔다리에서 하나하나 찾아 들춰보다가 말고, 그 기둥께로 가보았다. 사실 눈에 가시처럼 거슬리기는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많은 기둥 중에 하나가 삐딱하기로서니 설마 집이 어떻게 되랴 싶기도 했다. 물론 꺼림칙한 기분을 버릴 수야 없을 테지만.

나무가 사백 년이 되면 이렇게 변하게 되는 걸까. 나는 나이테 부분이 유독 불거져 나와 규칙적으로 굴곡을 이룬 기둥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굴곡은 마치 사막에 생기는 모래 언덕처럼 들쭉날쭉한 곡선을 규칙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 중간에 생겨나 있는 상처들이 어느 때보다 눈에 잘 띄었다. 어떤 것들은 일부러 낸 상처 같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뭔가 중요한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중간쯤에 있는 불에 그을린 자리는 동학과 의병이 차례로 일어섰다가 힘도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사그러들 무렵 입은 상처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스치고 지나간 총알 자국들. 하나같이 비껴 맞았기에 망정이지 제대로만 맞았다면 이 굵은 기둥마저도 끝내 부러지고 말았을. 생각 같아서는 아예 기둥을 통째로 바꿔버리는 것도 좋을 것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아! 그리고 또 하나의 제법 큰 상처. 정말 정교하게도 때워진. 김씨 영감님을 불러와야 할지 결단을 못 내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이 상처 때문이라는 걸 쉽게 눈치챘으면서도 마치 잊고 있었던 듯, 그 상처를 쳐다보며 나는 신음처럼 '아!' 소리를 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노여움 섞인 호통에 대한 기억.

고얀 놈! 그래 그 배은망덕한 상것들한테 머리를 숙이고 세배를 했더란 말이냐?

열두어 살쯤 되었을 땐가 김씨 영감님 집에 세배를 갔다와서 들은 할아버지의 호통이 아직도 들리는 듯했다. 처음엔 이유도 모르고 그 집엔 세배를 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필 그 해에는 동네 아이들 틈에 끼어 얼결에 세배를 한 것이 할아버지의 불호령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칠순이 다 된 노인네가 조무래기들의 세배를 받으며 짐짓 머리를 숙여가며 맞절을 하는 품이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김씨 영감님이 해방이 되고도 한참 동안이나 할아버지를 서방님이라고 부르며 우리집 잡일을 도맡아 해온 일종의 '종'이었다는 사실을 안 건 할아버지의 노여움을 사고도 한참 지난 뒤의 일이었다.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요? 조선시대도 아니구.

아버지 앞에서는 괜찮겠거니 하고 슬쩍 꺼냈던 말에도 심상찮은 눈빛이 따라붙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건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 같던 아버지도 유독 김씨 영감님 집 만큼은 엄연한 선을 긋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그러면서도 우리집의 대소사에 김씨 영감님이 나타나지 않고 제대로 굴러가는 일은 별로 없었다. 큰일에는 이런 저런 잡일을 비롯해서 인근 부락의 어른들께 하는 인사치레, 특히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친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을까 싶을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장례를 챙겼었다.

물론 그때도 순하지 않은 시선들이 따라다니기는 했다. 김씨 영감님은 부르지 않아도 우리집 큰일에는 제일 먼저 달려와 손발 걷어붙이고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그러면서도 곱지 않은 눈초리를 받기는 매일반이었다.

전쟁이라는 게 참 못헐 짓을 많이 했제. 느이 큰아부지가 살아계싰으면 크게 되었을 냥반인데, …포승줄에 묶여서 저그 고개를 넘어가던 기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가 그 냥반 나이 스물 다섯도 안됐을 때지 아마. 김 영감이야 무슨 죄가 있겄냐. 하나밲이 읎는 동생놈이 완장 차고 설치는 걸 그 영감도 숱하게 뜯어말리기는 했는디…. 허기사 그 동생놈도 그릏게 처참히 죽은 걸 보면, 김 영감 가슴 속에도 커다란 대못 하나는 박혀 있을기라. 그놈의 전쟁이 뭔지, 그해 여름에 국군하고 인민군하고 수백 명이 저 고개를 번차례로 넘나들더니 결국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았다니, 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그해 봄, 마당 한가운데 지펴진 화톳불을 사이에 두고 당숙 아저씨가 들려준 이야기는 온통 그 기둥의 상처에 대한 것 뿐이었다.

사변이 있던 해, 큰아버지는 우리 나라 최고 명문대의 4학년생이었다. 아버지가 소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짓고 있었던 데 비하면 큰아버지는 집안을 통틀어서도 큰 기대주였음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전쟁은 모든 걸 한순간에 앗아가고 말았다. 어차피 군복무 중이었던 아버지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고향집 광 속에 숨어서 전쟁이 끝나기만 바라고 있던 큰아버지에게 그날 밤의 총성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았을 것이다. 인민군들의 앞에서는 완장을 찬 김씨 영감님의 동생이 큰아버지를 내놓으라고 고함을 쳤고, 결국 할아버지가 실신한 가운데 큰아버지는 포승줄에 묶여 우복산을 넘어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더 기막힌 일은 전쟁이 끝난 뒤에 벌어졌다. 마지막으로 큰아버지의 모습이 확인되었던 전투에 하필이면 아버지가 투입되었다가 무공훈장까지 받았을 만큼 대승을 거뒀던 것이다. 당시 큰아버지와 함께 끌려갔다가 생환한 이웃마을 사람의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고, 깨어난 뒤에도 한동안은 문밖 출입을 못할 만큼 앓아 누웠다고 했다.

기워진 옷모양 기둥 한가운데 디귿자 모양으로 때워진 부분. 한밤중의 느닷없는 총성이 있고도 몇 년이 지나 더 이상 큰아버지가 돌아오지는 못할 거라는 단정이 내려진 이후에야 기둥에 박혀진 상처였다. 총알이 제법 많이 스치고 지나갔던지 기둥의 반 정도를 도려내고 다른 나무를 깎아서 덧댄 것이다. 기막힐 정도로 정교하게 때워진 상처자국. 언젠가 대목 이씨는 '지금 기술로는 어림도 없지. 옛날 노인네들이니 저렇게 할 생각도 혔을껴' 하며 혀를 내둘렀었다.

어쨌거나 아버지가 무공훈장을 받았던 전투가 있고도 우복산 꼬리고개로는 인민군이 두 번, 그리고 국군이 두 번 넘나들었지만 큰아버지의 생사는 알 길이 없었고, 총탄이 열 몇 발인가가 관통한 김씨 영감님의 동생만 멍석에 말린 채 고개를 넘어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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