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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실력과 민족자존심의 관계
지난 11일 법정 스님 타계에 애도를 표한 이명박 대통령의 /'/조전/'/ 내용은 가히 명문에 가깝다. 수식어들이 자못 눈부시고 매우 /'/알찬/'/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개해 본다.
"살아생전 빈 몸 그대로 떠나셨지만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남겨주신 존경하는 법정 스님의 입적에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법정 스님은 자비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말씀만이 아니라 삶 자체로 보여주셨습니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무소유/'/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해 오셨습니다. 많이 갖고, 높이 올라가기를 욕심내는 현대인들에게 비우는 삶, 베푸는 삶의 소중함을 보여주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원적에 드셨지만 수많은 저서와 설법을 통해 남겨진 맑고 향기로운 지혜와 마음은 우리 가슴속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 부디 서방정토에서 극락왕생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조전 내용을 상세히 전한 청와대 김은혜 대변인은 법정 스님과 이 대통령의 /'/인연/'/도 소개했다. 이 대통령이 법정 스님의 열렬한 독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대통령님은 법정 스님의 저서를 항상 가까이 두시고 추천도서 1호로 꼽으셨습니다. <무소유>는 여러 번 읽으셨고, 해외 순방을 갈 때나 휴가를 떠날 때도 항상 법정스님의 수필집을 지니고 가셨습니다"라고 했다.
그러고는 <조화로운 삶>에 대해서도 "2007년 말 대통령님께서 추천하신 바 있다"며, 추천 사유에서 "산중에 생활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감성과 깊은 사색을 편안한 언어로 쓰셔서 쉽게 읽히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밝혔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조전 내용을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조전 내용과는 너무도 다른 이 대통령의 삶에서 /'/희극/'/을 보는 것 같다"는 조소도 있었고, "해외 순방이나 휴가 갈 때도 항상 법정 스님의 책을 챙겼고, 그래서 <무소유>는 책이 닳을 정도로 읽었다는 그가 법정 스님의 책에서 도대체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도 많았다. 그리고 <조화로운 삶>은 책이름이 아니고 출판사 이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색다른 조소가 빗발쳤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법정 스님의 열렬한 애독자였다는 사실, 책이 닳을 정도로 읽었다는 말 앞에서 대뜸 그의 /'/국어 실력/'/을 떠올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편없는 국어 실력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영어몰입교육/'/을 주도한 것으로 보아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 확실한(?) 것 같지만, 국어 실력은 실망과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취임 초 국립묘지를 방문하여 방명록에 남긴 짧은 글줄에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여러 개나 틀린 사실, 또 소설가 박경리 선생 별세 때 문상을 하면서 주어와 술어가 전혀 호응하지 못하는 말을 적은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슬픔과 어떤 우려를 갖게 했다.
일찍이 화려한 무대에서 부족함 없이 문명(文明)을 누리며 살았겠지만, 빈약한 국어 실력으로 미루어 문화적 혜안이나 소양은 매우 부족하고, 그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기현상들이 생겨날 수도 있으리라는 우려였다.
그런 우려는 우리나라를 미국의 언어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식의 영어몰입교육 제창으로 현실이 되었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일련의 거친 행동들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난폭하고 조악하며 코미디 같은 현상들의 속출로 확실하게 입증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독서를 잘하시는 분이 왜 그토록 엉터리 국어 실력을 노출하게 되었을까? 이런 의문을 이번에 새롭게 가지게 되면서,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우리나라의 현 상황은 그의 국어 실력 수준과 거의 비슷하게 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나는 일찍이 30대 시절에 /'/국어사랑과 민족자존심의 관계/'/를 묘파한 단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말/'/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치인들이 사리에 맞지 않는 거친 말을 많이 하고 거짓말과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것은 국어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또 국어사랑이 없다는 것은 유머 능력이 빈약함과 민족자존심이 결여되어 있음을 반증한다. 다시 말해 지적 수준과 철학이 매우 빈곤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내가 30대 시절에 소설로 제시했던 현상이 오늘 더욱 적나라한 현실로 전개되고 있음을 본다. 물론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이 온전한 글, 주어와 술어가 적절히 호응하는 글을 쓴다고 해서 누구나 다 국어사랑과 민족자존심, 더 나아가 지적 수준과 철학을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인들이 차고 넘치는 나라에서, 머리 좋은 머저리들, 외눈박이 영혼 없는 겉똑똑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양심과 균형 감각과 높은 정신/'/이다. /'/분별력과 너른 포괄적 시야/'/다. /'/무소유/'/를 사유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무사유/'/를 소유하는 식이어서는 옳은 길을 찾을 수 없다.
법정 스님의 타계를 애도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조전 내용을 보면서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이 대통령의 독선과 밀어붙이기와 경박한 행동 양식들을 보면서 그가 명명백백하게 /'/무사유/'/를 소유하고 실천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누리꾼의 지적처럼 대통령이 /'/무소유/'/를 실천하지는 못하더라도 /'/무사유/'/를 실천한다는 것은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25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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