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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1 외 4편
최 기 종
동풍이 불었다.
대나무 숲에서 속삭이는 소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이발사가 몰래 풀었는데
이젠 대나무들이 소근 거렸다.
궐내사람들이 관모를 눌러 씌워서
임금님 귀는 음지의 귀가 되었다고
대금 해금 쇠북 소리도 듣지 못한다고
대나무들이 소문놀이 귀엣말을 해댔다.
임금님 귀는 음지에서만 열린다고
관모에 가려서 평형감각이 없어졌다고
새나 쥐가 저자거리로 물어 날랐다.
삽시간에 저자가 들끓었다.
궐밖사람들은 진실을 밝히라고
궐문 앞에서 촛불을 들었다.
어서 빨리 관모를 벗으라고
난쟁이 떼잡이 땅거지 소리도 잘 들어 달라고
광장에서 촛불을 높이 들었다.
그래도 임금은 관모를 벗지 않았다.
거슬리거나 막아서는 말은 내치고
안으로 굽는 말만 받아 들였다.
이렇게 입으로만 정치하다 보니
임금의 목소리가 날로 커졌다.
촛불들을 난동으로 몰았고
소문의 진원지를 수색했다.
촛불이 혹세무민한다고
법망을 훼손시켰다고
코나 귀에 걸어서 잡도리 했다.
결국 촛불들은 해산되었고
대나무도 새도 쥐도 거세되었다.
폐허가 된 대밭에서는
양달개비 자리공만 잘 자랐다.
입이란 입이 봉쇄되어서
저자거리엔 바람 하나 들지 않았다.
귀가 관모에서만 놀다 보니
떨어지는 말씀마다 법이 되어서
때리고 쪼아대고 내몰기만 잘 했다.
귀 2
임금님이 병환중이다.
궐안에는 음원(音源)이 없는데도
귀뚜라미, 매미 소리만 들리고
반향의 불면증에 빠져서
옥체가 많이 상했다.
어의가 백방으로 뛰어서
신기능 탕약을 쓰고
경혈점을 찾아 침을 놓았어도
이명(耳鳴)은 깊어지고
임금은 아예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궐밖의 사람들은
음원(音源)이 많은 데도
이명(耳鳴)같은 건 없었다.
귀뚜라미 매미 소리 요란해도
밤은 고요하고 거룩했다.
반향의 불면증 같은 것도
살이 통하고 피가 통하다 보니
양분이 되고 생기가 되었다.
귀와 귀가 이어지다 보니
시내가 되고 강물이 되어서
너른 바다로 향했다.
궐안에서 명의를 찾는 방이 붙었다.
임금의 병을 고치는 사람에게
정승 판서를 제수한다는 방이었다.
용하다는 의원들이 나섰으나
이명(耳鳴)에는 차도가 없었다.
보이는 소리만 치료하다 보니
파도소리, 바람소리만 극성이고
두 귀 평형이 기울어서 그런지
전자, 금속성 소리도 끼어들었다.
궐안에는 음원(音源)이 없는데도
막힌 소리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귀 3
임금님의 이명이 더욱 심해졌다.
궐밖에서 편향되었다는 소리들이 쇠북을 두드려댔고
백성답게 살고 싶다는 요구들이 산울림 되었다.
기나 고동이나 목소리만 높인다고 했다.
백성의 임금이라고 조선의 고뿔이라고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살으라고
때를 쓰며 콜록거린다고 했다.
그래도 임금의 대답은 단호하기만 했다.
좋은 소리 듣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법과 질서를 강조했고 강자의 원칙을 세웠다.
고소영이나 강부자를 평균대 삼아서
궐밖의 소리들을 이단으로 몰았다.
궐밖사람들은 몰리고 몰려서
더 많은 이명을 만들어 냈다.
깨물어도 아프지 않은 열손가락들이
일터에서 망루에서 고주파 확성기를 틀어댔다.
조선팔도 임금의 물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데
백성도 아닌 반골분자들이 좌충우돌한다고 했다.
궐밖사람들도 반박했다.
백성이 없으면 임금도 없는 것이라며
굳게 닫친 궐문을 두드려댔다.
임금은 아예 귀의 문을 닫아걸었다.
입이란 입이 봉쇄되었다.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압수되었고
목소리 있는 곳마다 병력이 출동했다.
이태백 사오정 명퇴들이 숨을 죽였고
토박이 철거민 부랑자들이 땅에서 쫓겨났다.
취발이 살살이 샌님들만 궐내를 드나들었다.
귀 4
결국 임금님은 고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고뿔은 사사건건 임금의 이명을 도지게 했다.
신종 기침소리들이 요란하게 귀의 문을 두드렸고
촛불이 되어서 화살이 되어서 온갖 괴담을 퍼트렸다.
이건 난동이었다. 두려운 반역이었다.
그래서 임금은 귀에 거슬리는 입들을 단속했다.
고뿔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군대가 파견 되었고
난쟁이 떼쟁이 시위꾼 논객들을 옥사에 가두었다.
그런데도 궐밖사람들은 고뿔이 떨어지지 않았다.
먹거리를 저당 잡히고 생업을 잃고 사는 집까지 빼앗겨서
남은 것은 기침소리 하나 밖에 없었다.
궐문에 대고 사정없이 기침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법치주의였다.
그래서 궐밖사람들은 망루에 올라서
임금의 귀에 대고 구애의 기침을 해 댔다.
난쟁이 아버지도 달에다 쇠공을 쏘아 댔다.
또 다시 임금은 귓병이 도졌다.
귀가 쑤시고 아프다 못해 대로했다.
저런 고뿔들은 초장에 뽑아 버려야 한다며
병력을 투입하고 물대포를 쏘아 댔다.
인명도 돌보지 않는 쥐잡이 작전이 벌어졌다.
이제 궐밖사람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질긴 고뿔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에서는 기침소리만 요란했다.
귀 5
대궐로 가는 행길이 막혔다.
임금님의 홍색증 이명을 고친다고
마파람 막는 인의장막이 쳐졌다.
문지기가 겹으로 음원을 차단했고
고관들은 사인교 산성을 쌓으면서
갈수록 백성들의 행렬이 길어졌다.
육조대로(六朝大路) 사대문이 막히고
귀의 침묵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서
궐밖으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청계천 광통교, 수표교가 잠기면서
백성들은 답교놀이를 그만 두었다.
운종가 시전 거리도 침수 되었고
연어 숭어 잉어 빠가가 뛰었다.
예장용 관모 때문이라고 했다. 임금의
성가시고 거슬리는 이명을 고친다고
턱밑까지 관모를 눌러 썼는데
그것이 행길을 막고 수중보가 되어서
소리란 소리들을 모두 불러 모았고
한꺼번에 간청하며 빗발친다는 것이다.
벽이란 벽에는 소자보 대자보 벽서가 나붙었고
시천주(侍天主)하라는 주문이 성벽을 기어올랐다.
입만 성한 포격전이 벌어지면서 이제
궐문에서 마포나루까지 늘어선 행렬의
아픈 소리들이 칼날처럼 우뢰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임금의 이부를 후볐다.
임금은 아예 관모를 벗어 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큰 귀를 가지고 아픈 소리를 들어주다 보니까
거짓말처럼 이명이 사라졌다.
죽은 말들이 되살아나고
막힌 강물도 원래대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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