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촛불은 지금 한 달 이상 그칠 줄 모르고 타오르고 있습니다. 촛불을 들고 서울 시내 한복판을 걸으며 나는 최고 권력과 맞선 한 개의 촛불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촛불이야말로 불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불입니다. 라면 한 그릇을 끓일 수 있는 불도 못 되고, 차가운 방바닥을 따듯하게 덥힐 수 있는 불도 아닙니다. 그저 한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 정도를 밝힐 수 있는 조그만 불입니다. 그러나 그런 촛불을 천 사람 만 사람이 들고 있으면 그 불은 불의 강물이 되어 흘러갑니다.

촛불 하나가 자신을 밝히고 사람들을 일깨우며 세상을 바르게 바꾸는 거대한 빛이 되어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 달 이상 촛불이 타오르고 있어도 제대로 된 답변 한마디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은 이제 횃불로 바꾸어 들어야 하는 건 아니냐고 묻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지금 우리 손안에 들린 이 촛불은 작은 것 같아도 횃불보다 큽니다. 횃불을 들면 더 가열차게 불길이 휘날릴 것 같지만 이렇게 거대한 흐름을 만들지 못합니다.

촛불을 들고 시작했기 때문에 여중생들이 얼굴에 고양이 모양의 훼이스 페인팅을 하고 참여하고, 유모차를 끈 젊은 어머니들과 아기를 밴 임신부까지 거리로 나올 수 있으며, 아이들이 아빠 어깨 위에 목말을 타고 웃으며 행진할 수 있고, 가다가 막히면 풍자와 해학으로 신명을 불러낼 수 있는 겁니다. 답답한 것은 아무리 국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외치고 또 외쳐도 자기들이 정확하게 무얼 잘못하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대통령과 권력 핵심에 있는 이들의 태도입니다.

이 촛불 시위가 이렇게 오래 지속되고 있는 건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참으로 안이하고 무책임한 발언들이 주는 분노의 힘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촛불 시위를 끝내고 돌아가 잠시 피곤한 몸을 눕히고 쉬려할 때마다 대통령과 권력 핵심에 있는 이들의 기가 막힌 발언이 다시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곤 할 때가 많습니다.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지난 5일 한국기독교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축사를 통해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는 마태복음 구절을 인용하며 “이 말씀이 지금 온 국민의 비난을 받는 대통령의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합니다. 그는 특히 축사를 마치면서 “사탄의 무리들이 이 땅에 판을 치지 못하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감히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요즘은 먹기 좋은 떡도 골라서 먹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수입하는 떡 중에 독이 든 떡가루를 사용하여 만드는 떡이 있다고 해서 그걸 안 먹겠다는 겁니다. 안 먹는 것이 아니라 그런 독이 든 음식을 마구 수입하겠다고 대통령이 덜컥 약속을 하고 왔기 때문에 그걸 취소하라는 거 아닙니까? 지금 국민들은 독을 쥐어주며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다고 하는 걸 보고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정권을 맡기고 100일 간 지켜보았더니 악의 씨를 온 나라에 뿌리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촛불을 든 국민들이 사탄이라면 도대체 누가 천사입니까? 장로이신 대통령과 대통령과 같은 교회에 나가는 청와대 관료와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16% 국민들만이 천사입니까?

추 비서관은 또 “마치 모든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 걸린 것처럼 순수한 학생에게 촛불을 주고, 마치 이 나라 정부가 미국인이 버리는 것을 국민에게 먹이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세력” 이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촛불 시위를 하는 학생들 중에 모든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 걸린 거라고 알고 있는 학생들이 누가 있습니까? 30개월 이상 된 소와 20개월 미만 소를 구분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학생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온 국민을 광우병 전문가로 만들어 놓고 아직도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말 한마디가 다시 수십 만 개 촛불을 거리로 불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에도 촛불시위의 원인을 사탄에게 돌리며 대통령과 함께 기도하느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시간을 끌고 있었던 거라면 정말 큰일입니다. 왜 여고생들한테 “내일 기말고사인데 나라가 걱정되어 나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2008. 6. 11. 미디어오늘. 시인 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