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확대 법안 절대 반대 성명서 -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국가여 그만 뺑뺑이 돌려라

- 비정규직 확대 법안을 절대 반대한다

겨울 초입이다. 가진 게 없으면 몸과 마음이 더욱 스산해지는 겨울이 닥쳐온다. 지금 경제위기라는 시대적 유행어가 봇물처럼 터져 퍼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안돼 휘청거리고 월급쟁이들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수난을 겪고 있다. 경제부처는 해묵은 갑론을박으로 해법을 내세우고 있으나, 수십 년 전 낡은 축음기에서 흘러나왔던 ‘선성장 후분배/'/ 라는 느끼한 레퍼토리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월급쟁이의 60%가 비정규직인 마당에, 가난한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는 대통령도, 노동문제를 오래도록 연구했다는 교수출신 장관도 자본 살리기에만 급급해 대다수의 국민이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문자메시지 한 줄이 해고통지서인 세상

지난 9월 발표한 노동부 입법 예고안을 보라. 기존에 1년 기간으로 제한했던 노동자 파견시한을 최대 3년까지 기간제 고용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법안인 포지티브(파견업종을 일정수로 제한하는)에서 네거티브(파견 제한 업종 몇 개를 정하고 전부 개방하는)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을 더 늘리겠다는 것이며, 사용자의 우위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의미이다. 즉, 파견 노동자들을 3개월이고 6개월이고 혹은 2년 11개월 29일을 마구 부려먹은 뒤에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그 노동자를 다시 기간제로 고용하든가, 내 쫒아도 그만인 것이다. 법적 재고용 의무가 없는 까닭이다. 물론 노동자는 부당노동행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사용자가 몇이나 될 것이며, 대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기까지 3년여 기간동안 송사에 매달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요즘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문자메시지는 생사여탈의 신호라 한다. 더 이상 고용의사가 없으면 "그간 고생하셨습니다"와 같은 짧은 한 문장이 해고통지서가 된다.

전 노동인구의 신노예화?

이 엄혹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노무현대통령은 /'/비정규직에 무심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가 문제라/'/며 비정규직의 본질을 여러 차례 호도했었다. 바꿔 말하면(다른 건 몰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살 길만은 열어주겠다는 ‘의지표명’인 셈이었다. 허나, 뒤통수를 쳐도 유분수지 어찌 이런 개악 안을 들이밀도록 방조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파견업체 사장들은 파견노동자 1명당 년 200~300만원의 수수료를 챙겨 간다. 1,000명이 넘는 파견업체도 부지기수이니, 도대체 누구를 배 불리고 누구를 뜯어 먹자는 법이겠는가? 전 노동인구의 신노예화가 선진 노사정책이란 말인가?
지적컨대, 조직노동자(노조)에 대한 각계의 비판은, 본질에서 벗어나거나 악의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정규직들이 기업별 노조의식을 못 벗어나는 이유 중 핵심에는 "쫓겨나면 다른 일자리 구하기도 어렵고, 비정규직이 된다." 라는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이든 차별이 거의 없는 선진국과는 다르게 대한민국의 비정규직은 삼류인생으로의 전락을 의미한다는 걸 그들도 잘 아는 까닭이다. 물론 정규직노동자들의 경제적 전투주의나 느슨한 사회연대의식은 비판받을 점이 적지 않다. 비판의 성역은 어느 계급계층도 비켜갈 수 없는 문제이나, 보수언론의 저주에 가까운 정규직(특히 노조에 가입된)노동자들에 대한 비난은 다분히 정파적이다. 그들은 비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애정을 전제로 정규직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자본편향과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재료로 조직노동자들의 이기심을 질타한다. 경제의 핵심주체이자 사회구성원의 다수인 노동계층이 성찰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돕는 일, 그 층간의 차별을 상향식으로 줄여내는 일, 그것이 지성의 역할이고, 제도는 이의 기초이어야 마땅하다.

가지마라! 참여정부

지금 시행하고 있는 법안만으로도 60%의 비정규노동자들을 양산해냈다. 100% 비정규노동자로 채우는 일이 국가의 노동정책이라면, 이 정부는 악질적인 자본참여정부이며, 신자유주의의 마름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우려스럽게도 정부의 입법 예고안에는 국제투자(투기)자본의 요구를 그대로 쫓는 사대성이 우글거리고 있다. 구제금융 이후 금융 등의 곡간을 장악한 그들이 이제 몇 개 남은 제조업까지 이익의 전진기지로 삼으려 한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는 형국이며, 이제 한일자유무역협정(FTA)까지 체결되면 한국의 모든 산업은 그야말로 장례식장이 될 것이다. 세계8위의 무역대국이던 멕시코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뒤 밑도 끝도 없는 경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얻은 것이라고는, 무려 80%나 삭감된 임금과, 자유롭게 해고당할 수 있고 부초처럼 떠돌 수 있는 거주이전의 자유뿐이었다. 미국 국경을 몰래 넘어가다 총에 맞아죽을 수 있는 권리였다. 이라크파병이 ‘총의 살인’ 이라면, 얼핏 공평한 듯 보이는 ‘자유무역’ 이라는 수사는 일국의 경제를 초토화를 시키는 ‘자본의 살인’ 인 것이다. 이라크 파병을 일컬어 우리는 경고 했었다. 가지마라! 이 길도 결코 사람의 길이 아니다.

창작자의 먹고사는 비애도 커진다

자신의 지식노동으로 먹고 사는 작가들 역시 삶이 곤궁하기는 마찬가지다. 늘 비정규노동에 시달리며 생업을 메우기 위해 돈 안 되는 글에 매달린다. 여타 문화예술 영역에 몸담고 있는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다, 객원단원 객원연주자라는 그럴싸한 이름 뒤에는 /'/비정규 문화종사자/'/ 라는 한숨이 숨어 있다. 호구지책이 급한 살림살이에서 문화예술을 즐기며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러므로, 다수의 민중이 불행할 때, 덩달아 창작자의 먹고사는 비애도 커질 수밖에 없다. 아픈 시대와 인간을 모토로 위대한 문학이 탄생된다 하더라도, 덜 아픈 세계가 어서 와야 한다.


가난한 밥상은 수구가 발호할 좋은 토양일 뿐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우리 경제 위기의 핵심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핵심요소가 아님을 밝힌다. 오히려 이런 차별구조를 만들어 낸 책임에는 관료 정치 경제 집단에 있음을 주시한다. 덧붙여 상대적으로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정규직노동자들과 노조에게도 바란다. 다소 객관성을 잃은 비판일지라도 겸허히 귀를 기울이고, 보다 헌신적으로 비정규직과 연대하기를.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보다 못한 노동형제들의 손을 이끌어 잡기를. 공의를 실천하는 노동계급이 되기를.

이제 이 법안이 온전히 집행된다면 국민의 절대다수는 한 끼 끼니를 채우는데 온 몸과 정신을 소진하고, 비굴한 삶에 치를 떨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그만 최소한 중립지대로라도 돌아가기를 바란다. 한때 이름까지 바꿔 노동현장에 투신했던 국회의원들도 있는 줄 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생각해서라도, 벼랑에 선 그들의 등을 떠미는 악역을 자처해서는 안 된다. 1996년 겨울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를 주도했다, 결국 지도자의 신망을 잃은 김영삼씨를 보라. 8년여 세월이면 충분한 학습시간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타협하라. 제대로 상생할 기회를 저버리지 마라. /'/가난해야 시가 나온다./'/라는 시인의 한탄 아닌 한탄을 증명이라도 해 보고 싶어 지금 죽음의 불을 서러운 심장에 붙여 대고 있는 것인가? 가난한 밥상은 수구가 발호 할 좋은 토양일 뿐이며, 우민화의 길을 재촉할 뿐이다. 국가여 제발 그만 뺑뺑이 돌려라! 제발, 제자리에 세워두라!




2004년 11월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