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의 비밀
최기종
'WORK'란 단어에는 지루한 사막이 있었다.
어둡고 춥고 살을 에는 듯 눈보라와 삭풍이 있었다.
황사처럼 강물처럼 전쟁과 질병과 공포와 기아가 깔려 있었다.
그냥 쿨하게 ‘워크’라고 발음이 된다면 노동의 신성성은 존중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악마의 소리처럼 길게 발음되는 ‘워:크’란 단어에는
출구 없는 터널처럼 허리 부러지게 아무리 걸어도 벗어날 수 없는 사슬이 있었다.
'WORK'란 단어에는 주술이 걸려 있었다.
맷돌을 돌리는 황소처럼 채찍을 맞아야 했고
가슴 없는 기계처럼 속도에 매여서 착취 받아야 했다.
돌팔매질 받으면서 쫓기는 저주받은 선구자처럼
관성적으로 물을 건너는 백수광부처럼
주술이 걸려 있는 ‘워:크’란 단어에는
피 냄새가 나고 야적장 해골들의 노랫소리가 났다.
그런데 아무리 외롭고 힘들 때에도
'WORK'란 단어는 우리와 함께 있었다.
그것은 아무리 죽여도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전기와 수도가 끊긴 극한 상황에서도
입술에 힘을 주다보면 검은 환영들이 물러났다.
황야의 매머드처럼 눈빛이 살아났다.
전염병 창궐하는 난민촌 모퉁이
밤마다 몰래 버려지는 병자들도
여럿이 ‘우오:크’ 입술을 모으면
거적 재끼고 부시시 일어났다.
시집 '나쁜사과' 77p
지부 소식
『나쁜 사과』는 1992년《이 땅의 헤엄 못 치는 선생이 되어》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최기종 시인의 작품집이다. 본문은 '촛불', '읍마동 전설', 'WORK 비밀', '일기예보'의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투박하고 소박하며 은근한 시어들로 내면의 웅숭깊은 성찰과 세사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담고 있는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최기종 : 1956년 전북 부안 출생. <만경강> 동인, <교육문예창작회> 활동. 1992년 교문창 회원시집 『대통령 얼굴이 또 바뀌면』에 작품 발표로 등단. 주요 시집으로 『나무 위의 여자』 등, 공동시집으로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시집). 전국국어교사모임 전남회장 및 전교조 목포 신안지회장 역임. 현재 전남제일고등학교 사,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문학평화포럼 이사, 목포민예총 및 목포작가회의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