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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알쏭달쏭한 부분이 하나 있다. 우리는 흔히 지능이 고도로 발달한 외계인이나 미래 인류를 허약한 몸체에 거대한 머리가 붙어 있는, 콩나물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상상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 의문이다. 말인즉, 우리의 두뇌가 늘 커진 게 아니라는 거다. 선사시대 인류보다 역사시대 인류의 뇌가 평균적으로 조금 작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의 일상을 규정짓고 강제하는 체제의 성립이 그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국가나 법과 같은 제도들의 공통점은 구성원들의 복종을 요구한다는 점에 있다. 복종하라, 안락한 삶을 보장받을지어다. 이게 바로 체제, 제도의 모토다. 복종에는 상상력과 창조력이 필요치 않다.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들에 무한한 신뢰와 동경을 보내고 그것들의 권위를 인정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뇌가 커지기는커녕 외려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촛불집회에 단 한 번이라도 참여한 사람이라면 다 안다. 그곳이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었는지를, 재치와 기지를 발휘하면서도 어떻게 진정성을 희생시키지 않았는지를, 여태 양립불가라 여겨졌던 이질적인 요소들이 얼마나 자연스레 서로에게 스며들었는지를. 그건 하나의 진화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저항을 발명했다기보다는, 한마디로 저항도 하나의 예술이 되었던 거다. 물론 우리가 겪어야 할 고통 역시 진화할 것이다. (예술은 여전히 배고프고 고통스럽다.) 체제와 제도라고 해서 늘 같은 형태의 협박과 회유를 사용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신종 협박과 회유에 군말없이 복종한다면,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21세기의 뇌는 왜 그 전보다 작아졌는가 따위로 고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진화하는 고통에 맞설 때, 우리가 상상했던 미래가 실현된다.
<2009. 5. 5 손홍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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