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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인의 편지/도종환] 잡초
이름 관리자



한 사흘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지나가고 나면 풀들은 비의 기운을 받아 부쩍 자라 오릅니다. 마당가운데 자라는 쇠뜨기풀이며 토끼풀, 질경이를 뽑다가 지쳐 그냥 둘 때가 많습니다. 결국 풀을 이길 수 없어서 망연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뽑고 또 뽑아도 이삼주일 지나고 나면 다시 마당에 풀은 가득합니다. 남들이 보면 집주인이 게을러서 잔디밭에 풀만 수북하다고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저 풀들을 뽑아내려 하고 풀과 싸우려 하지만, 내 노력보다 풀의 생명력이 훨씬 더 강합니다. 아니 사실 풀들은 우리와 싸우려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해코지하기 위해 마당으로 쳐들어오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렇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지니고 있으므로 살아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시기가 햇빛과 물이 가장 풍성한 시기이므로 왕성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없는 생명의 몸짓을 김해자 시인은 '부지런한 침묵'이라고 말합니다.

밤새 비 내린 아침
옥수수 거친 밑동마다
애기 손톱만한 싹이 돋아났다
지가 잡초인 줄도 모르고
금세 뽑혀질지도 모르고
어쩌자고 막무가내로 얼굴 내밀었나
밤새 잠도 안 자고 안간힘을 썼겠지
푸른 심중 투성이, 저 징그러운 것들,
생각하니 눈물난다
누구 하나 건드리지 않고
무엇 하나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게 솟아오른 저 순한 새순 앞에
우리네 시끌벅적한 생애는 얼마나 엄살투성이인가
내가 인간으로 불리기 전에도
내 잠시 왔다가는 이승의 시간 이후에도
그저 그러하게 솟았다 스러져갈 뿐인 네 앞에
너의 부지런한 침묵 앞에
이 순간 무릎 꿇어도 되겠는가

---김해자 '스스로 그러하게' 전문


"누구 하나 건드리지 않고 / 무엇 하나 요구하지 않고" 풀들은 그저 새순을 내밀고 있습니다. 우리네 인간의 삶은 요구가 많습니다. 요구 때문에 옆에 있는 이들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건드리고 싸웁니다. 채워지지 않는 욕심 때문에 남을 괴롭게 하고 나도 괴롭습니다. 잠시 왔다가는 동안 내내 싸움이 그치질 않습니다. 그러나 비온 뒤 얼굴을 내민 애기손톱만한 새순은 다른 생명을 시기하지도 않고, 질투하지도 않습니다. 미워하거나 욕설을 내 뱉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렇게 있다가 갑니다. 그저 그렇게 있는 것을 자연이라 합니다.

"내가 인간으로 불리기 전에도" 저 하찮은 풀들은 이 땅에 있었고 "내 잠시 왔다가는 이승의 시간 이후에도" 풀들은 다시 얼굴을 내밀 것입니다. 우리는 저 잡초보다 긴 생명을 지니고 있는지, 풀들만큼 자연스럽게 살다가고 있는 것인지, 시인은 눈물 고인 맑은 눈으로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2009.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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