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서평>

사랑의 샤머니즘
사랑이라는 뜨거운 덩어리를 우주에 만나고 부르는 노래

이재호(문학평론가)

여기 사랑 샤머니즘이 있다. 만유사랑설을 지독히 믿는 시인의 영가가 있다. 그의 시들은 그가 사랑하는 그대에 대한 초대장이고 마당밟기이고 영접이고 부르르 떨리는 전율이고 슬프지 않은 귀곡성이고 소곤소곤 두근거리는 뒷담의 수다이고 가만가만 달빛 그림자 밟는 배웅이기도 하다. 김유철이 이 시집에서 보여준 낭창낭창한 사랑의 노래들은 사랑에 대한 미사이자 고해성사다.

그에게 그대를, 당신을, 너를, 먼 바람, 저 물결, 저녁노을은, 뭐라고 부르던 사랑의 정령이 깃든 님이다. 사랑으로 만나고 느끼고 사랑으로 되돌아보고 자신을 추스른 숭고한 신앙생활 나날의 기도들이다. 그의 사랑은 직접적이고 일상적이다. 그래서 거칠고 생생한 토템이다.

사랑이라는 아주 커다란 화두를 조각내어 설명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고 분별하여 말하기란 기어이 불경스러운 단 하나의 인식과 생각의 틀로 세상을 보고, 나무를 보고, 바다를 보고, 섬을 보고, 길을 보고, 꽃을 보며 얻은 깨달음이다.

시인 같은 사랑에 대한 인내와 안목을 다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야 좀 어지럽지만, 더러 긴장감이 조금 덜한 대목에 리듬이 잃긴 하지만, 세상을 사랑으로 그렇게 나뉘지 않은 커다란 덩어리로 느끼고 기록하는 시인의 마음까지 탓할 수야 없는 일이다. 그가 길어다 주는 사랑 노래들을 듣고, 우리가 덜 사랑하고 덜 그리워하면서 세상사와 사람들에 훨씬 더 무덤덤했음을 늦게나마 깨칠 일이다.

시인은 사랑을 인간에게서 자연에서 온갖 만물에서 느낌으로 철학으로 종교로 역사적 안목으로 심지어 사회과학으로도 다 담아내려 한다. 뜨거움도 있고 열렬함도 있고 진정함도 있고 때론 저무는 나이 탓인지 고마움과 애틋함도 느껴진다. 우주와 그 우주의 많은 것들과 관계 맺은 시인이 그것들에 대한 인식론의 한 종합으로 사랑이라는 화두를 붙잡은 듯하다. 귀한 체험이고 결단이다. 청춘의 뜨거움을 걸러낸 가을 빛 같은 눈으로 보편의 힘을 획득한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하다. 그 힘에 의지해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재주를 넘어 숭고하다.

그는 스스로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던가? 그를 보면 시를 쓴다는 것이 오롯하게 작품을 남기려는 재주꾼들의 노름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소리거나 한숨이거나 하품임을 실감하게 한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도거나 반성문이거나 연애편지이기도 하다는 것을, 무릇 시란 그런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김유철은 열심히 보여준다.

내가 아직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해뜰녘부터
해질녘까지
어쩌면 깜깜한 밤중이나
폭풍우속에서도
내가 아직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나는
참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고결한 일인지 그는 간결하게 말할 줄 안다.

그대였나요
먼 바람이

그대였나요
저 물결이

그대였나요
저녁노을이

그는 사랑을 참 애틋하게도 햇빛처럼 쉽게 만나고 또 간절하게 느낀다.

땅이 언들
물이 언들
마음이야 얼겠는가

그에게 사랑은 사람과의 동맹이며 푸른 빛 쫓는 도전이기도 하다.

북두칠성이
국자모양으로 하늘에 박힌 것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
그것은 그대와 나의 이야기

결국 사랑은 우주이고 우주를 거니는 나그네의 찬란한 역사다.

<발문>

사계절, 그대를 절규하는 백 편의 사랑 시 한 묶음
박노정(시인)

󰊱 이번 여름, 처음으로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의 ‘층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부용대의 층층 절벽 3부 능선을 따라 나있는 높고 험준한 옛길이다. 층길은 ‘형제의 길’, 둘도 없는 깊은 우애와 격조 있는 교감의 길이다. 부용대 서쪽 옥연정사에 기거하던 서애 류성룡(1542~1607)이 맞은 편 겸암정사에 머물고 있던 형, 겸암 류운룡(1539~1601)을 만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걷던 길을 말한다. 명재상 서애의 맏형 겸암도 임진왜란 때 사복시 첨정, 풍기 군수, 원주 목사를 거쳐 뒤에 이조판서로 추증된 인물이니 두 형제가 만나면 나라를 걱정하고 학문을 논하는 자리가 자주 펼쳐졌을 것이다. 4백년 묵은 오솔길 따라 슬슬 번져 나오는 뒷이야기가 향기롭기 그지없다.
내친김에 얼핏 상상의 ‘친(親)길’ 하나 주섬댄다. 강진 읍내 사의재에 살던 1805년 봄에 혜장스님과 조우한 정약용은 귀양 8년째인 1808년 귤동의 다산 초당으로 거처를 옮긴다. 열한 살 연하의 아암 혜장이 1811년에 죽기까지 두 사람은 종교와 신분과 연령을 초월하여 주역과 경전, 차를 매개로 격의 없는 교분을 두텁게 이어간다. 친길은 구강포 앞바다를 내려 보며 만덕산 능선을 타고 백련사로 또는 초당으로 향하던 오솔길이다. 부질없는 바람소리 문풍지를 울리던 밤으로, 핏줄 같은 서책을 엮다가도 불현듯 솔숲 사이 칡넝쿨을 헤치고 듬부렁듬쑥을 밟으며 봉두난발, 지친 보폭으로 달려가던 고맙고 친숙한 길. 마음이 먼저 내는 길, 그리움이 열던 길. 아암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다산은 붉은 울음을 토하며 혜장스님의 비명을 쓰면서 논어와 율려(律呂), 성리의 깊은 뜻을 잘 알고 있는 유학의 대가와 다름없다고 새긴다. 이즈음 안철수와 박원순의 서로 격려의 뜨거운 포옹이나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스님이 통렬한 자기반성과 함께 다른 종교를 배우고자 하는 종교평화 선언은 대장경 천년맞이 해에 새롭고 벅찬 희망경(希望經)으로 읽힌다. 여러 분야에서 새 길을 내는 때가 기어이 오고 만 것인가.
이쯤에서 그간 김유철 시인이 새롭게 낸 길, 그대에게 이르는 길을 부지런히 좇아가 보기로 한다.

󰊲 언젠가 지현(至玄) 김유철 시인의 포토포엠 에세이 ｢그림자 숨소리｣를 읽고 “천하에 둘도 없는 잡놈” 일거라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지현은 그의 아호대로 이른바 ‘현(玄)’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이다. 곧 “하늘, 고요한 것, 신묘한 것, 빛나는 것, 도(道), 마음”을 온몸으로 구하는 이다. 선생 노자(老子)의 말씀에 따르면 이들은 모양 없는 모양, 모습 없는 모습이라 어리벙벙함(홀황(惚恍))이라 하는 바 지현의 어리벙벙한 모습을 잡놈의 그것으로 표현한 나름의 우정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엄살이 아니라 나 같은 ‘선천성 외로움 병’ 인간은 혼자 못산다. 같이 어울려 산다고 해도 나 같은 ‘태생적 애정결핍증’ 인간은 ‘사랑’ 없이는 못산다. 더욱이 예술가가 사람 사는 세상을 등지고, 사랑이라고는 찾아볼 길 없는 삭막함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사람은 홀로 있지 않고 많은 것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흙과 바람, 물과 나무, 새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무생물과 생물이 어울리면서 커다란 ‘생명’의 흐름을 만든다.
- 김유철 칼럼 <예술가로 살아가는 일>중에서

이런 소신의 지현이 마치 ‘잡놈’에 대한 화답이듯 ‘우라질 사랑’(?)을 들고 나왔다.
지현, 스테파노 김유철 시인이 ｢그대였나요｣란 표제 아래 총 백 편의 시를 보내며 발문을 써 보라고 넌지시 표정을 살핀다.

그대의 눈빛을 보았네
찡긋 웃는 그 눈빛
내 가슴에 꽃이 피어나네
(중략)
저녁빛에
그대의 눈빛을
새벽빛에
그대의 눈빛을
온 우주 속에 새겨진
그대의 눈빛을 내가 보네
-<눈빛> 중에서

먼저 화자에게 있어서 그대는 늘 고맙고 잊지 못하는 당신이자 그리움의 대상이다. 흐르면서 늘 거기 있는 강물처럼, 사람 그리워하며 밤새 내리고 또 내리는 장맛비 같은 사랑이다.
흐르는 빗물에 / 사랑한다 / 사랑한다 되뇌이며 실어 보내는 바로 그 사랑 -<장맛비2> 부분
시집에 그은 밑줄 하나 다시 보니 / 내가 부르는 그대 이름이다 -<밑줄 하나> 부분
그런 그대에게 아직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고 노래하는 화자의 열정은 끝이 없다. ‘내가 있는 한 그대는 가엾지 않다’를 반복하고 있는 화자는 오직 너만을 생각하는 저 ‘우라질 사랑’의 주인공인 것이다. 먼 훗날 어느 때 맞이할 그대가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충만한 사랑이다.

너를 듣는다
너를 바라본다
너를 생각한다
너만을
-<저녁 창가에서> 전문

보고 싶다고
백 번쯤 말하는 동안 날이 저물었습니다
날이 저물어도 여전히 보고 싶습니다
마음속으로 불러도
목이 쉬었습니다
-<혼자 하는 말> 전문

이렇듯 화자의 사랑은 날이 저물어도 여전히 보고 싶고 마음속으로 불러도 목이 쉬는 사랑이다.

먼 바람 / 저 물결 / 저녁노을
- <그대였나요> 부분

모두가 그대요, 사랑인 것이다.

󰊳 다시 더 말 할 것도 없이 지현은 수행자이다. 스테파노 김유철! 그는 길 가는 이요, 길 닦는 사람이다. 때로 온몸을 던지는 기도로 가장 단순하게 보고 들으며 실천으로 곧장 옮기는 자다. 가장 종교적이면서도 어떤 틀 속에 묶이기를 거부하며 먼 길을 뚜벅뚜벅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 그리움은 끝도 시작도 없는 벼락같은 사랑이요, 최초이자 최후인 만유인력, 그대임에 틀림없지만 그대라는 대상은 오히려 불특정 다수로 하나속의 여럿, 여럿속의 하나인 그대에게로 귀착된다. 그 대상은 뜻이 맞는 사람, 친구, 스승과 진리의 보다 넓은 포괄이다. 김유철의 시가 순정에 열정을 보탠 전폭적 사랑을 품은 노래요 춤이지만 특정 대상을 고집하지 않는 까닭으로 종래는 그대가 있어도 그대가 없어도 가야할 길이 있음을 천명한다.

가야하는 길이 있다
(중략)
그대가 있어도
그대가 없어도
가야하는 길이 있다
-<길>중에서

해탈, 저 언덕, 이상, 상상, 환상 다 보탠 그의 마지막 서원은 저 하늘까지 함께 가자는 외침이다. 스스로 곡비(哭婢)가 되어 울부짖는 광야의 기도다.

그대, 건너자
그대, 우리함께 건너자
저기 사랑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꿈꾸던 사랑
하늘의 다른 이름으로 통째 내어준 사랑

언 강에 흐르는 물소리 들으며
건너자
우리
함께
-<건너자. 우리 함께>중에서

이 가을 지현의 화두는 단연 ‘우라질 사랑’이다.
그대에게 이르는 사랑 시 백 편을 시인은 한 단어로 묶어서 표현한다.

백 편이 모인 시집은
백 가지 주제로 쓰인 것이 아니라
한 단어를 백 날 동안 써내려 간 것

그래서 행복했다고
그래서 건너왔다고
그래서 여기있다고
다시 손 흔드는 한 단어
그저 미소 짓는 한 단어
-<한 단어>전문

지현, 스테파노 김유철 시인!
그의 순정, 열정을 더한 막무가내 전폭적 사랑에 감동하며 “하늘로도 다 덮지 못하고 땅으로도 다 싣지 못한다”는 옛 비유로 대신할 뿐.

마지막으로 당부컨대 부디 늦도록 철들지 마시길.

김유철시집 <그대였나요> -박구경 (시인. 한국작가회의 이사. 경남작가회의 회장)

死대강사업 공사 현장, 함안보 고공 크레인, 제주의 강정마을, 희망버스 속에 있었던 김유철이 돌아와 사랑시집을 턱 내 놓는다. 윗옷 호주머니에 꽂고 다니던 펜으로 적의를 쏘지 않고 스스로 내면으로 가져와 ‘그대였나요’라 자문한다. 그래서 그의 시 속에는 따뜻한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그런 그가 “졸시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을 지어주려”한다고 겸손해 했다. “하동 악양 지나가는 길/ 박순갑 문패 달린 대문 앞에 서서/ 박순갑씨! 하고 불러도/대문은 꿈쩍 안 할 것처럼 보였다”처럼 언제나 살아가는 길의 인간과 순수를 모색하는 시인이라고 기억할 것이다. 헤지고 찢겨 형편없는 남루가 되더라도 사람의 일을 다루는 펜을 슬며시 꺼내며 박순갑씨네 대문 앞을 지나는 나그네였으면 한다.

<작가의 말>

언젠가부터 마음의 마중물을 시로 택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말은 길고 마음의 마중물은 제 구실을 못한 듯합니다.
제가 간직한 사랑을 표현하려 숱한 장르 중 시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랑에 서툴고 반벙어리 표현에 가슴이 아립니다.

결코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그대를 향한 시였고
그대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붉은 가을이 먼 산부터 나리고 있습니다.
그 더웠던 여름을 기억합니다. 그대도 그런가요?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무는 동안 그대는 겨울잠을 잘 것이고
우리 곁에는 머잖아 봄이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그 날도 봄맞이꽃을 보며
시를 쓸 것이고 사랑을 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번 생 나의 몫입니다.

시인이라 불리면서 여전히 시인이 되고 싶은 내가 나를 바라봅니다.
한 남자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아내 세단에게 고마워합니다.
시들에게 아담한 집을 지어주신 리북출판사에도 절합니다.

이천십일년 가을 깊은 날
외독 김유철 두손모음

<작가소개>

이미 시인이면서 늘 시인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지현至玄’ 혹은 ‘외독’이라 부르기도 한다. 20대 후반 천주교 수도자의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벙어리로 지냈다. 30대에는 가톨릭청년운동과 청소년교육에 몰두하면서 싸움꾼과 비주류 되기를 자청했다. 40대 이후 시민운동과 함께 글쓰기를 했다. 현재 창원민예총 대표를 맡고 있으며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생명평화결사 등에서 적잖은 소임을 맡고 있지만 머잖아 홀로 가는 길로 삼은 <연구대상연구소>를 시작할 예정이다. 한국작가회의, 경남작가회의, 경남가톨릭문인협회 회원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림자숨소리』(2009. 서울. 리북),『깨물지 못한 혀』(2008. 서울. 우리신학연구소),『한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2011. 창원. 물처럼생명평화학교)을 펴냈다.
http://blog.daum.net/roading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