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기의 첫 소설집 [숲의 기억]
(작가들, 2007년 12월)


<숲의 기억>은 홍인기의 첫 소설집이다. 이 작품집에는 이합하는 가족들의 신산한 삶의 모습과 상처받은 가족의 운명에 대한 작가 나름의 질문이 변주되어 있다.이혼으로 헤어졌던 아들을 다시 만날 날을 학수고대하는 이혼녀의 이야기를 다룬 ｢금｣이라든지, 친구에게 소개했던 옛 여자를 다시 만나는 판화가의 유년회상기를 담은 ｢숲의 기억｣ 등이 그것이다. 생전에 증오하던 아버지와의 화해를 다룬 ｢섬｣ 역시 가족사의 모티브를 소설의 중요한 플롯으로 다루고 있다. 자식으로부터 버림받은 노인의 을씨년스런 삶을 제시한 ｢평일｣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이들 작품이 다루고 있는 인간군상과 인간관계 가운데 가족의 해체와 균열 양상은 우리 소설사에서 산업화가 본격화한 6-70년대부터 다뤄 왔기 때문에 다소 해묵은 주제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같은 양상이 후기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과 근대 가족의 위기적 징후가 뚜렷함에도 대안적 삶의 지평이 떠오르지 않고 있는 사정을 상기할 때, 그와 같은 문제 설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겠다.

요컨대 홍인기는 삶의 보금자리나 정서적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형해만 남은 근대 가족의 투시도와 가족의 구성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상처를 주시하며 소설적 도정을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홍인기 1960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9년 계간『작가들』로 작품활동을 시작, 한국작가회의와 ‘리얼리스트 100’, 인천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하는 월간「희망세상」의 객원기자로 일하고 있다. 공동소설집 <오, 해피 데이>가 있다.

::추천글

소설가 홍인기는 이 소설집을 통해 휴머니스트로서의 두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한다. 그 하나는 과학의 발전으로 자연생태계가 파괴되고 인간의 정체가 완전히 기호화되어버린 미래사회와 그것을 기반으로 세계 권력을 장악한 집단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경고다. 거기에는 인간 영혼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란 없고 오직 물리적인 육체만 존재한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의 미래를 비극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소설가는 과거, 젊은 날의 기억들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그것을 미래에 연결할 수 있을 때 인간은 영혼을 보존할 수 있음을 전언한다. 삶은 고달픈 시간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연속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 소설집이 말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다.― 김용성(소설가)

홍인기의 글에서는 후미진 선술집의 눅진한 곰팡내가 난다. 외로움을 먹고 자란 형의 곰팡내를 맡다보면 잊고 살았던 원시적 욕망이 전신에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너무도 집요하고 끈적끈적한 욕망, 돌연 나는 그 속에서 파편화된 현대인의 일상을 보았다. 저마다의 가면을 쓴 채 무미건조한 일상의 궤도를 빙빙 돌기만 하는삶이란 얼마나 아슬아슬한가. 동일한 욕망의 틀에 갇혀서 그게 욕망의 전부라고 치부해 버리는 야만을 향해 던져진 원시적 욕망의 바이러스. 일방향으로 치달아가는 세상의 한 쪽에 비켜서서 특유의 온화한 표정과 어눌한 목소리로 처녀지의 욕망을 보듬는 그의 글에서 나는 한 줄기의 희망을 발견한다. 너무도 당연하고 인간적인 욕망이 죄악시 되는 이 세계에서 순수하면서 끈끈하고 집요하면서 폭발적인 욕망의 발현을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 오늘밤 나는 홍인기 형과 함께 이슥토록 술잔을 기울이며 그간 억눌려왔던 모든 인간적 욕망을 마음껏 발산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 또한 원시적 욕망의 곰팡이가 되어 낮고 외롭고 쓸쓸한 모든 이의 밤을 떠돌고 싶다.- 김한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