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소설가 조혁신의 첫 소설집 [뒤집기 한판]
(도서출판 작가들, 2007년 3월)

이 책은 인천의 송림동 산동네를 주된 배경으로 하여, 산동네 서민들의 진솔한 삶과 희로애락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집이다. 이 소설집에는 모두 여섯 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는데 작품들은 각각 독립된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부처산 8번지’라는 산동네를 동일한 배경으로 하며 가난한 동네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등장인물이 그물처럼 서로 얽힌 관계를 맺고 있는 일종의 연작소설 형태를 띠고 있는 작품집이다.

이 소설집은 개인적, 사변적, 심리적 주제로 흘러가는 최근 우리 소설의 문법에서 벗어나 인간존재를 해명하고 삶의 지표를 제시하는 정통적 의미의 리얼리즘을 고수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즉 새로운 형식미학을 거부하며 인간 삶의 근원성에 접근해왔던 우리나라 소설 전통을 이어받아 진실한 삶의 모습과 시대정신을 사실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는 점에서 우리나라 민중문학의 계보를 잇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중문학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이 소설집은 IMF 이후에도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서민들의 삶과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살아있는 인물묘사와 치밀한 디테일, 주제를 향한 집중력과 통일성, 서민들의 일상에서 끌어올린 언어와, 위트, 유머를 버무리며 삶의 비애와 삶에 대한 희망을 그려내고 있다.

조혁신
1968년 경기 의정부 출생. 인천지역 노동단체에서 일을 했으며, 공사장 인부, 목수 등의 일을 하며 소설습작을 했다. 2000년 계간 <작가들>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현재 인천일보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고 있다.

::책 속에서

계속해서 다섯 명의 사내들이 시작과 동시에 나가 떨어졌다. 남구는 상대방의 치우친 무게중심과 힘을 이용해 끌어당기듯 하다가 밀어붙이고, 끌려가듯 하다가 끌어당기며, 양쪽 어깨로 상대를 밀치기도 하고 달려드는 상대를 그대로 맞받아 일순간 몸을 내빼며, 손으로 상대의 앞 뒤 왼 오른 무릎을 치고 미는 현란한 손기술로 가볍게 상대를 주저앉혔다. 손동작과 어깨 동작, 몸과 발의 움직임, 중심 이동이 찰나적 순간에 이뤄지고 바람을 부르는 변화무쌍한 수법이었다. 상대가 하나씩 쓰러질 때마다 모래판에서 먼지가 피어올랐고 구경꾼들 사이에서 감탄사와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느새 씨름판 주변은 어른 아이 예비군 할 것 없는 군중으로 벽이 둘러치게 됐고 문구점 주인과 쌀집 아저씨 등 북 초등학교 앞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재밌는 씨름판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군중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남구는 씨름판 한가운데에서 유아독존의 기세로 버티고 서 있었다.
-<뒤집기 한판> 중에서

::추천글

변두리 인생의 애환을 따뜻한 필치로 그려낸 조혁신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가슴 한 쪽이 저릿해온다. 한 때 내가 등을 붙이고 살았던 송림동과 주안의 골목들이 여러 날 눈에 밟혔다. 그가 아니면 무엇에 의해서도 기억되지 못했을 생의 이면을 향해 문자의 투망을 던지고 있는 그의 작업이 익숙한 새로움으로 범람하고 있는 우리 문학을 향한 ‘뒤집기 한판’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 방현석(소설가)

조혁신의 리얼리즘은 독자들에게 강한 기시감(旣視感)으로 다가온다. 언제든 대문을 열면 만날 수 있는 활어처럼 펄펄 뛰는 골목길의 삶들이 지금, 여기의 일상의 모습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민중문학의 계보를 잇는 조혁신의 소설은 치밀한 디테일과 수줍은 서정시인 같은 감수성으로 송림동 골목길을 또 다른 한국소설의 풍경으로 영토화하였다. 설익은 듯한 투박함이 은근하게 매력적인, 묵은 장맛같은 작품집이다. - 조성면(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