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섭의 두 번째 소설집 [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
(창비, 2007년 1월 8일)


부산을 근거로 활동하며 자신의 근거지에 충실하고 솔직한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 이상섭의 중.단편소설집. 2001년 출간된 <슬픔의 두께>에 이어, 두 번째로 펴낸 작품집이다. 수록된 일곱 편 소설들의 배경은 대부분 '바다'이다. 약하지만 억척스럽고, 가진 것 없지만 꿈을 꾸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 작가 이상섭이 그리는 바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담백하고 힘있고 선이 굵다. 감칠맛나는 사투리의 구수한 맛이 물씬 풍긴다.

표제작 '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는 2002년 제5회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작품. 소설의 주 무대는 난전이 펼쳐진 어시장 골목이다. 무능한 사위가 못마땅하기만 한 억척스러운 장모와, 어시장에 새로이 나타난 "이곳 사람을 닮지 않은 하얀 피부"의 새댁이 이곳에서 갈등한다.

생활이라기보다 생존의 현장에 가까운 어시장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질박하게 그려내면서도, 작가의 시선은 세태와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일 어업협정으로 물길을 잃고 방황하는 어부, 불법체류중인 양식장의 이주노동자... 바닷가를 둘러싼 삶의 현장이 일곱 편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이상섭 1961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동아대 국문학과와 부경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8년 '슬픔의 두께'로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2002년 '바다는 상처를 오래 남기지 않는다'로 제5회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했다. 2004년 제9회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2007년 현재 해운대관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소설집으로 <슬픔의 두께>, <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가 있다.

::책 속에서

매립지공사장에서 울려퍼지는 중장비 소리가 요란했다. 폭염에도 아랑곳없이 작업이 한창이었다. 올겨울까지 매립을 마무리한다니 아마 공기를 맞추느라 부산을 떠는 모양이었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그 소리가 오늘따라 더 속을 헐떡증나게 만들었다. 매립공사 탓에 눈앞에서 들썩대던 바다가 아득히 밀려났다. 이제 해안으로 밀려오던 파도의 흰 손끝은 이곳에 서서도 볼 수 없었다. 바다를 볼 수 없다면 이곳은 불모의 땅이나 진배없다. 사람들은 억울하면 할수록 하늘을 쳐다본다고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럴수록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억울함을 바다를 보며 삭이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누그러뜨렸지만 그런 일도 바다가 멀어지면서 점점 없어졌다.

- '바다는 상처를 오래 남기지 않는다' 중에서


::작가의 말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은 일년에 한번씩 돌담이 무너졌다. 닳고닳아서 지문이 없던 아버지가 손수 담을 허물었던 것이다. 콰르릉 소리가 나기 무섭게 달려가면 뒤란은 어느새 말끔히 치워져 뻥 뚫린 길이 되어 있었다. 멀찍이 보였던 교회도 그때만큼은 성큼 다가와 집 가까이 서 있곤 했다.

... 돌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다가온 크리스마스는 성경밖에 모르던 내게 세상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런 탓일까. 우리집 잔치 같은 성탄절이 지나고 다시 쌓이는 돌담을 바라보면서 나는 또 얼마나 허탈해했던가. 또다시 무너질 날을 기다리며 돌담 너머로 찰랑이던 바다를 얼마나 오래 지켜보았던가.

... 내 소설들은 어쩌면 무너진 돌담이 들려준 이야기와 그 너머 찰랑이던 바다가 떠올리게 해준 것들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이 작품은 내 것이 아니라 그네들의 것이다. 미력한 재주로 내가 살을 입혔을 뿐. 하여 내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들이 꿈꾼 것처럼 서로간에 쌓인 작은 돌담이라도 허물 수 있는 웃음과 여유가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거다. 바다에 수평선이 살고 있듯이 이 땅에도 '수평세상'이 다가올 수 있도록. - 이상섭


::추천글

이상섭의 소설을 읽으면,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는 소설은 이야기라는 원론적인 명제를 남달리 실천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은 이야기성을 잃어가고 있는 현재의 한국소설을 향해 내미는 도전장이다. 이 도전장이 의미있게 다가서는 것은, 그의 소설이 그가 태생적으로 이야기꾼임을 실감나게 보여주기 때문이며, 또한 그가 주변인들의 원초적인 생의 의욕과 고단한 삶의 속살을 걸쭉한 입담에 담아냄으로써 새로운 리얼리즘의 영토를 개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토에는 투박하지만 삶의 생체험이 내장된 질퍽한 경상도 사투리가 빚는 언어의 야생화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소설 속 주인공들이 초극해야 할 현실과 맞서면서 생겨난 아린 상흔들이 검붉은 꽃무늬로 번져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영토에 들어서는 자는 야생화가 풍기는 날것의 생기와 가슴을 울리며 스며드는 검붉은 꽃의 향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남송우 (부경대 국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물론 발명품으로서의 새로운 소설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이지만, 그것이 지나쳐 "좋은 오래된 것보다 나쁜 새것이 좋다"라는 해괴한 언설에 현혹된 채 신통한 새것을 만들지 못하면서 '오래된 것 죽이기'를 일삼기에 골몰한 작금의 문단 풍조는 정말 아니올시다이다. 신인답지 않게 이러한 새것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이상섭은 낯익어 편안하고 즐거운 전통적 이야기 방식을 택한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자본주의적 상품문화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인간 본성의 원시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그들을 형상화해내는 그의 내러티브가 구수하고 해학적이다. - 현기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