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찬의 다섯 번째 소설집 [희고 둥근 달]
(현대문학, 2006년 7월 11일)
소설가 정찬의 다섯 번째 단편집. <빌라도의 예수>, <베니스에서 죽다> 등 이전 작품들과 연장선상에 위치에 있으면서도, 소설의 주제 면에서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이전까지의 소설들에서 보여준 부조리한 현실과의 불화와 저항의 차원을 넘어, 인간이 종교를 갖지 않고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시킬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표제작 '희고 둥근 달'은 칼리굴라 역을 맡은 배우의 이야기.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서 영원을 추구하기 위해 칼리굴라 역에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이혼한 지 오래인 아내를 찾아가 누이인 드루실라 역을 맡아달라고 한다. 이밖에도 '야윈 몸', '인간의 흔적', '허공을 걷다' 등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과 운명을 살아가는 몸과 영혼의 함수관계를 밀도 높게 그려내는 열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정 찬
1953년 부산 출생.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중편 '말의 탑'으로 등단. 1995년 '슬픔의 노래'로 제26회 동인문학상 수상. 지은 책으로 <기억의 강>, <완전한 영혼>, <아늑한 길>, <세상의 저녁>, <황금사다리>, <로뎀나무 아래서>, <그림자 영혼>, <광야>, <베니스에서 죽다>, <빌라도의 예수>, <희고 둥근 달>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바꾸어 말하면, 내 영혼의 실체를 모른다. 나는 나를 확인하고 싶었다. 내 영혼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었고, 내 영혼의 소리를 듣고 싶었고, 내 영혼의 냄새를 맡고 싶었고, 내 영혼의 살을 만지고 싶었다. 하지만 한번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실재하므로 동시에 실재하는 내 영혼의 집은 불가사의하게도 텅 비어 있었다. 영혼은 들끓고 있는데 영혼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이 텅 빔을 나는 못 견뎌 했다.
- '희고 둥근 달' 중에서
::추천글
정찬이 소중하게 여기는 영혼이 육체와의 단순한 이분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깊은 탐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한다. 그의 종교적 성향은 배타적 독선적 구원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에서 발견한 공허한 무상성과 삶에서 나타나는 허공의 깊이를 알고자 하는 그의 유랑자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혼을 천착하는 그의 소설은 천박한 현실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끝없는 상상의 세계에서의 유랑이다. 그것은 때로 정찬 소설을 관념적인 것으로 폄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또한 정찬 소설을 사실주의 소설로도 환상소설로도 분류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정찬 소설은 일반적으로 한국 소설이 가지고 있는 단순성을 벗어나 복합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의 문학적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들을 수 없는 두께와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도 거기에 영혼의 목소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천천히 읽는 사람에게 작가 정신의 저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영혼의 목소리와 같은 감동을 안겨준다. - 김치수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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