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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인의 도항사
허영선
그 겨울 천둥치는 제주해협 넘었지
외지인이라고 고개 돌리지 마
변방에서 온 여자라고 무시하지 마
두터운 속울음 실은 항구를 떠나
현해탄 건너던 열다섯 잠녀
군인한테 계란 삶아 목숨 건진 할머닌
나침반 없는 작은 고깃배에 나를 태웠지
기항지도 방향도 잃은 새의 부리처럼
뱃머리는 감각 없이 돌고 돌다가 끝내 다시 돌아 부산항
서른 날 지나 다시 뜬 밀항의 밤
갈기갈기 찢기듯 검은 바다 시커먼 밤의 쓰시마
이리저리 흔들리던 닻줄 하나에
목숨줄 내렸다 올렸다 반복했지
파죽지세로 덤벼드는 물 천둥에
와들랑와들랑 심장은 떨어져나가
질끈 감은 목숨줄 내려 보니 다시 부산항
어둠 절인 짐칸에 앉아 귀를 막았지
마르지 않는 가슴골 눈물처럼
사라지지 않는 그해 그날의 고향 바다로 떨어지던
죽은 숙부의 눈동자 둥둥 떠다니던
흐를 대로 흐르리라 목숨 뉘인 밤
돌 속의 바람
물 위의 바람 속에서도
기록하지 못한 씨앗이
눈물로 떨어져 소금꽃으로 피어날 때까지
견뎌내고 살아남아
오래 살아남아
끝내
초라한 오사카 이쿠노구의 가겟방 앞에서도 살아남아
숨
허영선
바로 그 순간
끊어질 것 같더라
숨과 맞바꿀 순 없느니
다만 저 큰 전복의 유영을 참고 올라오는 법
익혀야 하느니라
돌 틈 사이사이로 확확 스쳐가는
소라 문어가 부른다고
욕심내지 마라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 숨이더라
흔들리지 않는 돌 붙잡고 물건 하나 획
낚아챌 때 한 모금만 남겨둘 것
그 한 숨 떨어져갈 때 잡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
실겁만 해도 탁 놓고 마는 것이 목숨이야
네 손바닥만한 전복 서성거려도 물리쳐야지
도망가는 문어의 배후에 전복 소라 있다 해도
지상에 숨 보냈다가 내려가야지
무릇 사랑도 그러해야지
검은 돌 숨구멍이 휘익 드나들듯 그리해야지
그런 숨 한 톨쯤은 남겨둬야지
약력 : 제주출생. 80년 《심상》신인상. 시집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 『뿌리의 노래』, 산문집 『섬, 기억의 바람』, 역사책 『제주4.3』, 그림책 『바람을 품은 섬, 제주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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