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상처의 호흡 外 1편/ 나정욱:시인뉴스 포엠 (poetnews.kr)]
상처의 호흡
다친 김에 빼꼼하고 다른 세상을 보고 말았습니다
다른 세상의 공기를 호흡하고 말았네요
닫힌 세계 거기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어쩌다가 다쳐
다른 세상을 빼꼼 보고 말았네요
그래서 감염된 그 부분이 이렇게 화끈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탈난 것이지요
이게 무슨 상인가요 벌인가요
다른 세상을 본 게 내 죄인가요
상처받지 않았으면 꿈도 꾸지 못할 세상을 빼꼼 내다본 게 그게 죄가 되나요
상은 바라지도 않지만 그게 죄가 되고 벌까지 받는 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상처를 받고 상처가 호흡한 것뿐인데 그렇지 않으면
상처를 받고 모두 죽는다는 건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요
상처받는 즉시 죽어야 하는 건 아무래도
너무한 것 아니예요?
마음이 들어가 사는 곳
마음이 들어가 사는 곳이 마을이 되었을까
마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미소가 되었을까
마음으로 읽을 수 없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
골짜기가 생겼을까 그곳에도
봄이 오면 꽃이라는 게 피는 걸까
마음으로 읽다가 미소를 보이면 그곳에 마음이 쉴 집이 생겨날까
그 집들의 지붕 위에도 마음이 얹힌
별이나 달이 돋을까
겨울이 아무리 두꺼워도 그것들을 다 덮어둘 수는 없다
마음은 이불 밖에서 겨울을 다독일 수 있겠다
그런 마음은 너의 어디에 살고 있는 걸까
겨울아 부르면 너는 도대체 춥지 않은 곳이 없으련만
새로 돋은 이빨처럼 너의 마음은
지치지도 않고 다시 얼굴에 미소로 피어나니
네 이름을 품고 너는 봄으로
살고 있구나
※ 나정욱 시인
『한민족문학』(1990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2019년),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2019년),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2021년)의 시집이 있음.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