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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궁樂弓
김민정
유한한 것이 아닌 무한과의 사랑을……이라고 씌어 있는
신비의 서를 오래, 펼쳐두었네
텅 빈 허공을 어두운 방 안으로 인양해 온 전망창을
눈먼 적의의 흰자위만 날카롭게 키운 수직의
블라인드로 밀폐시키네
오, 캄캄하여라 파온!
레스포스 섬 로이카스 절벽 위, 발끝
치켜들고 두 팔 벌린 사포의 붉은 심장, 짙푸른
갈망의 물결 속으로 무한을 겨냥하는 낙법落法의
한순간, 일제히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수직의 블라인드
보름 달빛 밀물져 오는 만조의 수면 위를 갈가리
찢겨져서 내리꽂힌 열 번째 뮤즈의 긴 손가락, 한 음 한 음
찢겨진 자신의 심장에서 핏물 번뜩이는 화살을 뽑아내며 탄주하는
악궁의 운지법運指法
악궁은
무한의 굴대를 겨냥하지 않고 아르페지오…… 아르페지오…… ……로
건드릴 뿐이네
*플라톤은 사포를 열 번째 뮤즈라고 칭송했다.
빗살무늬토기2
김민정
진흙 그릇에 빗살무늬 새겨 넣던 흰 손을 가진 이가 있었다 흰 구름을 양떼처럼 거느리고 빈 하늘가에 자신의 마음을 촘촘히 그어 간 이가 있었다 손끝에서 바스스 부서지는 마른 흙덩이를 거머쥐고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고자 한 이가 있었다
하늘과 땅을 잇는 길은 수직의 가파름만 있는 게 아니어서 비스듬히 어깨 기대기 가슴과 가슴 사이 빈 하늘 한 줌 담아내기 위하여 손톱 같은 무지개 같은 물결 같은 툭, 불거진 이마의 점 같은 빗살무늬를 새겨 넣는 이가 있었다
그러므로 너와 나 태초였다고 빈 하늘을 가득 채운 그릇 속에 불꽃으로 일렁이는 속마음을 산머루며 도토리 명아주 쑥 냉이 고사리 애기똥풀꽃으로 담아낸 이가 있었다
빗살무늬토기를 따라가다가 덜컥, 빗살무늬 없는 토기를 만난다 자신의 마음을 촘촘히 비추어내던 흰 손의 그림자 더는 어른대지 않고 뾰족한 진흙 항아리 안에 비스듬히 고여 있던 지평선, 출렁이며 부서지며
빈 하늘을 감으며 기어오르는 인동넝쿨처럼 한겨울 한데에서 새파라니 우리 함께 두 손 들고 벌을 서 보는 것, 어떻겠니?
약력:1995년 한국여성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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