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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中年)
김선향
h, 요실금
시도 때도 없이 오줌이 샌다고
현관문을 열다가도
손을 씻으려고 흐르는 물만 봐도
소설을 쓰는 중에도
대머리 의사가 ‘케겔운동’을 권한다고
하고 싶지 않다고
차라리 생리대 대신 기저귀를 차겠다고
말미에 열 살 어린 나를 질투한다고
p, 황반변성
시를 읽는데 글자의 공백이 보인다고
그림을 볼 때 지워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중심’은 볼 수 없고 ‘주변’만 볼 수 있다고
수 개월 혹은 2년 이내에 실명할 거라고
h의 수치심, p의 절망을 읽는다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하나 나는 쩔쩔맨다
앙큼하게도
저울 위에 돼지고기를 올리고 눈금을 보듯
누가 더 절박할까 저울질한다
그리고는 안도한다, 열 살이나 어리므로
곰국을 끓이는 동안
김선향
석양은 쪽창문 틈새로 우리집 부엌을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자꾸 기웃거리고
엄마, 저 솥 안에 정말 곰이 들어 있어요? 네?
까르륵―
딸들은 심심하면 와서 약을 올리고
남편은 틈만 나면 전화해 지금 어디야? 캐묻고
졸음에 겨워 시어머닌 허벅지를 꼬집으며 현관문을 지키고
참을성 없는 애인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마침내 러브호텔을 떠나고
그나저나 곰국은 언제쯤 다 끓는 걸까
몇 시간째야 도대체 이렇게 지키고 서 있는 게
나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곰국을 뒤집어엎고
지금이라도 애인의 발목을 붙잡으러 뛰쳐나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땀인지 눈물인지 아이섀도우인지 범벅이 되어 흘러내리고
오밤중이 되어서야 졸린 눈을 끔벅이며 솥뚜껑을 열어 보니
한 국자의 곰국도 남아 있질 않고
(심지어 말끔한 밑바닥은 송곳니처럼 번쩍거리기까지 하고)
나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약력: 2005년 <실천문학> 신인상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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