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죽음을 많이 생각하고 싶은 날

이진명

나에게도 가족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 있다. 열아홉 전후해서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연달아 돌아가셨다. 삶을 모를 나이니 죽음은 당연히 알 수 없는 거였고,문학 습작에 빠져 있을 때니 감성은 예민했을 거였다. 어머니의 죽음의 여파로 바로 겪게 되는 질곡의 가정사가 있었기에 더욱 더 한 인간의 죽음,한 여자의 죽음,한 어머니의 죽음이란 것에 대해 수십년 사유가 멈춰지질 않았다. 생존했다 사라진 한 존재란 남겨진 자의 현실에서 외적 내적으로 지속적으로 일하고 있는 거였다.

어쨌든 어린 시절에 접한 죽음에 대한 감상과 중년이 되어 접하는 죽음의 감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죽음과 친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올해는 죽음의 해라 할 정도로 죽음의 소식이 우리 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메아리쳐댔다. 전쟁의 살육,민간인 포로 학살,강간살해,연쇄살인,가족동반자살,자녀살해에 이어 영화에서마저도 살인이 난무하였다. 좀 조용해지나 싶었는데 최근 한 달 여 사이 노인들의 비관자살이 또 보도되기 시작했다. 자녀들에게 짐되기 싫다는 90대 노부부 자살에 이어,오늘 60대 부부의 ‘쓸쓸한 죽음’이 보도됐다. 빠르게 노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노인 문제와 노후문제대책 등에 대한 기사와 칼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 만난 죽음은 거동 못해 부인의 질식사를 지켜만 본 ‘쓸쓸한 죽음’ 정도가 아니었다. 중풍을 앓으며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남편을 간호하던 부인이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숨지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할 수 없어 아내를 구하지 못한 남편이 출동한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가던 중 아내의 뒤를 따라 숨을 거뒀다고. 하루 전 배달된 우유가 문밖에 그대로 있는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보니 부인은 숟가락을 입에 문 채 숨져 있고 남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이 죽음의 광경은 기이하면서도 친근했다. 곧바로 가슴 속에 찍혀들더니 마구 인화되어 눈돌리는 곳마다 생생하게 따라와 걸렸다. 너무나 구체적이고 익숙한 일상의 모습을 하고 있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어떤 진정성을 띠며 오히려 무섭게 죽음이 전달됐다. 나(또는 우리)는 어쩌면 이런 모습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밥 먹는 일과 죽는 일의 겹침. 그것은 따로 있는 일이 아니다. 학살과 살인 같은 죽음은 스치는 간접 경험의 감상만을 남겼지만,여기 죽음의 모습과 이야기에서는 죽음의 어떤 실체를 만난 것만 같았다. 밥숟가락이 입에 물린 채 나는 죽는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눈물 머금은 그 누가 있다…. 아,눈물 머금은 신이 나(또는 우리)를 바라보신다….

[국민일보 2004.10.27]

이진명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1990년 계간 '작가세계' 에 <저녁을 위하여> 외 7편의 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단 한 사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