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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림과 되찾음
신현림
살면서 사람이든 물건이든 잃어버린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꼭 헤어진 것이 아니라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꽤 많다. 눈에서 멀어지면 기억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얼굴을 마주하면 죽은 사람이 다시 나타난 것처럼 신기하고 반갑다.
그리고 누구나 살아온 세월동안 잃어버린 물건의 목록을 적어보면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펜만 해도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우산,모자,목도리,액세서리….
어제도 1년간 함께 살아온 수첩이 사라졌다. 한 두 시간 정도 겪은 마음의 혼란은 커서 다른 일은 손에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 내가 거쳐간 길을 뒤따라가보고,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며 수첩에 무엇을 적어놓았던가,마음 속에 그려보았다. 수첩 속의 은밀한 메모들을 나 외의 다른 사람이 본다는 것. 견딜 수 없이 싫었다. 그러면서 어차피 사는 건 조금씩 닳고 잃어가는 건데,그러려니 하자고 나를 타일렀다.
일에 지쳐 사느라 내 물건 하나 제대로 챙길 여유가 없는 생활에 대해서도 깊이 반성하였다. 그러나 어디 세상이 맘 먹은 대로 되던가. 고민하다가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새 물건 사서 잃어버린 마음을 씻어버리게 되듯 어차피 내년도 얼마 안남았는데,새 수첩 사면 되지 뭐,하고 휴식을 하였다.
그런데 마침 살펴봐달라 부탁한 사람들 중에 한 친구가 함께 탄 자신의 차에서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얼마나 반갑고 기뻤던지. 그것을 잃었다면 1년의 기억은 어느 날 들쳐볼 수도 없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리리라.
얼마 전에도 1년 넘게 달고다닌 귀고리를 잃고 더없이 마음이 아리고 쓰렸다. 정이 많든,미련해서든 잃는다는 건 가슴에 잠시 구멍이 나는 일이다. 그런데 후배랑 만나 식사를 하는 중에 그녀가 아주 작은 분홍색 복주머니를 내미는 것이다. 뭘까 싶어 열어보니 잃어버린 거랑 똑같은 귀고리였다.
“금이 아니지만 달아봐요.”
후배의 눈만큼이나 반짝이는 귀고리. 누군가에게 이렇듯 원하던 선물을 받는다는 게 이리도 기분좋은줄 몰랐다. 나 스스로 친구에게 귀한 존재라는 기분이 들고 뻥 뚫린 구멍이 아주 향기로운 꽃으로 메워져갔다.
하나의 물건은 그냥 돈 주고 산 물체가 아닌 것이다. 함께 한 세월이 담겨 있고 무엇보다 정들인 마음이 담겨 있어,그건 살아있는 생명체다. 내 귀에서 귀고리는 빛나는 눈물처럼 흔들렸고 손에는 어느 새 곱게 때묻은 군청색 수첩이 도시락보다 따뜻하게 내 몸을 데워갔다.
[국민일보 2004년 12월 20일]
신현림1961년 경기 의왕 출생. 아주대 국문과 졸업. 1990년 <현대시학>에 「초록말은 타고 문득」 외 9편을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으로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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