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늑대의 오감도
정여운
네마리의여우가산에서내려와도로위를어슬렁거리고있소.
늙은늑대가킁킁킁,암내를맡으며눈에불을켜고뒤쫓아가고있소.
(네마리의여우가머리풀어헤치고맨발로여의도광장을뛰어다니고있소.)
첫번째여우가늙은늑대에게모가지가물렸다고그랬소.
두번째여우가늙은늑대에게젖가슴이물렸다고그랬소.
세번째여우가늙은늑대에게엉덩이가물렸다고그랬소.
네번째여우가늙은늑대에게새끼까지바쳤다고그랬소.
다섯번째여우가늙은늑대에게유령이면나가라고그랬소.
네마리의여우는배움에허기를채우려다잡아먹는늑대와잡아먹히는여우들과
그렇게한소굴에모여글공부를했소.
(네마리의여우들은늑대의소굴에가지않는것이차라리나았소.
늙은늑대는일주일에한마리씩여우요리를했소.
늙은늑대의집앞을어슬렁거리는여우들은모두잡아먹혔소.)
그중에모가지가물린첫번째여우가힘이없는여우라도좋소.
그중에젖가슴이물린두번째여우가돈이없는여우라도좋소.
그중에엉덩이가물린세번째여우가빽이없는여우라도좋소.
그중에제물까지바친네번째여우가혼자사는여우라도좋소.
길거리로나와서살려달라고외치기라도하시오.
광화문사거리에나와서살려달라고외치기라도하시오.
(네마리의여우들은시나브로피흘리며죽어가고있소.
사방은트인길이요길끝에는방송국도있소.
빨리문을열고방송국안으로들어가는것이마땅하오.)
하늘
정여운
거실에 꽃기린이 하늘을 기다리며 피고 있다
꽃밭에 매화가 하늘을 열며 피고 있다
그 곁에 개나리가 하늘을 달래며 피고 있다
그 뒤에 라일락이 하늘을 흔들며 피고 있다
담장에 기대 목련이 하늘을 찌르며 피고 있다
앞산에는 진달래가 하늘로 함성을 지르며 피고 있다
-『시마을문예』2022. 여름호 발표
▲정여운
대구 출생. 2013년『한국수필』에 수필, 2020년『서정시학』에 「문에도 멍이 든다」외 2편으로 시 등단.
2019년《불교신문》10·27법난 문예공모전 산문 부문 대상. 시집 『문에도 멍이 든다』(현대시학,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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