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한밭춘추

                      ‘정의사회구현’과 ‘공정사회추구’의 유사성

                                                                                                                           지요하
                                                                                                                           소설가

1980년대 험난한 세월을 살아왔던 나 같은 사람들은 80년대 초엽을 강압적으로 뒤덮었던 ‘정의사회구현’이라는 구호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라는 낱말이 그렇게 뼈아플 수 없었다. 숭고한 뜻을 지닌 말이 저렇게도 악용되고 왜곡되고 타락할 수도 있구나! 언어타락의 전형을 보는 느낌에 온 뼈마디가 저리고 절절히 슬펐다.

전혀 정의롭지 인간들이 ‘정의’라는 말을 입에 달고는 정의사회를 구현한답시고 이리저리 설치며 멀쩡한 사람도 붙잡아 ‘삼청교육대’로 보내는 현실 속 암담한 절망 속에서 ‘미친 세월’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시절이 지나고 나서, 그토록 정의사회구현을 열창했던 무리의 우두머리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다. 진짜 정의 앞에서 가짜 정의가 심판을 받은 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 정의구현을 열창했던 수많은 졸개들은 더욱 강건해진 모습으로 오늘도 사회 곳곳에서 기세를 올리고 있다. 그들에게 ‘반성’이라는 낱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불의한 사람일수록 쉽게 정의를 차용한다는 사실, 불의로 출발한 세력은 아무리 정의를 차용해도 결국엔 심판을 받는 법이라는 사필귀정의 실체를 목도하고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때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이번에는 ‘공정사회’라는 구호가 열창되는 것을 본다.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1980년대 초엽의 ‘정의사회구현’이라는 구호가 갑자기 부활한 것만 같은 생뚱한 느낌이다. 꼭 필요할 것 같지 않은데도 불쑥 등장한 ‘공정사회’ 구호에서 이상한 부조화를 느낀다. 무리한 ‘차용’이라는 느낌도 들고,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다.

그 구호의 창시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공정’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릴 수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구시대적인 구호 따위에 연연하지 말고, 진짜로 공정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도 모르지만, 아는 사람 다 아는 빈약한 토대 위에서 아무리 공정사회 구호를 열창해봤자 이미 식상할 대로 식상한 구시대적인 느낌만 줄 뿐이다.  

무릇 구호가 다 그렇듯이 ‘공정사회’ 구호의 실질성이나 생명력 역시 오늘이 아닌 내일에 판가름 날 것인즉, 모름지기 사필귀정의 철리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80년대에 이미 체험했듯이 누가 아무리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으며 치장을 해도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바탕은 그대로 남는 법이니….

*<대전일보> 2010년 10월 28일/목, 오피니언 면 ‘한밭춘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