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조회 755 제목 청호댁 이름 최기종 청호댁   최기종 친정이 /'/청호리/'/라고 해서 붙여진 댁호 부르는 소리가 달작지근한 청호댁, 본래 이름은 잊혀지고 최씨家의 최시리 되어서 부뚜막 물항처럼 心中만 퍼주면서 시부모 모시고 지아비 섬기고 자식 키우면서 황촛불 다 닳도록 공복으로 살아온 청호댁, 댕기머리 혼담 오갈 때에 시집 안 간다고 도망 다니다가 친정어머니께 머리채 잡히고 꾸지람 톡톡히 듣고서야 등 떠밀리듯이 시집와서는 맵디매운 시집살이 견뎌야 했던 청호댁, 호랑이 시아버지 때문에 오금이 저렸고 시어머니 잔소리에 속이 저렸고 대가족 밥해 댈랴 빨래할랴 소지할랴 낮에는 논밭에서 밤에는 베틀에 앉아서 눈코 뜰 새 없이 지냈는데 지아비까지 군대 가서 붙일 곳도 기댈 곳도 없이 하루를 일년같이 살았다는 청호댁, 땡볕 아래 만삭으로 콩밭 매다가 해산기에 부랴부랴 방에 들어 짚풀 깔아놓고 첫애기 낳았는데 청호댁, 그게 길한 태몽이었다고 친정아버지 쇠풍경 주면서 도장을 꽉 찍었는데 그게 아들 낳는 꿈이었다고 이젠 정 붙일 곳 생겼는데 젖줄이 터지지 않아서 젖통이 잘못되었다고 구박 받고 다 죽어가는 애기 업으고 친정으로 쫓겨 와서 친정어머니 등살에 족발 다려 먹고 젖샘 열려서 한시름 놓았다던 청호댁, 시집살이 삼 년 만에 분가하여 논 닷마지기에 밭 한뙤기 놋쇠밥그릇 세 벌, 수저 세 벌 받아 들고 초가삼간 들었어도 어찌나 홀가분했던지 날아갈 듯 기뻤다며 살림살이 늘리는 재미로 계집애들 단발머리 해주고 품삯도 받고 모내기, 벼베기 작업반도 나가고 악착같이 농사 지어서 양택 함석집 사서 이사 들고 전답도 늘릴 만큼 늘렸다던 청호댁, 다홍치마 시절, 당봉리 새각시들 아침마다 사립짝에서 청호댁 불러대던 소리 품앗이 하자고 장구경 가자고 돌떡 돌린다고 그 아득한 봄바람이 새벽잠을 깨웠지. 새각시들 모여서 송학도 놓고 수다도 떨고 장구도 치고 춤도 추고 요리강습도 받고 박물장수 물건도 구경하면서 /'/청호댁! 이거 어떼?/'/ 하며 자글자글 웃던 동동구루무 꽃내에 취해서 빨간 고리뗑바지 사달라고 옷탐도 부렸지. 어쩌다가 동무들이 청호댁 보고 내 누님 같다고 추어올릴 때는 어깨 으쓱거리며 색시마냥 불러 보았던 청호댁, 학력이라고는 소학교 2학년 중단하고 혼자서 국문 깨쳐서 자식들 /'/가나다라/'/ 가르쳤고 동화책도 띠엄띠엄 읽어 주셨던 청호댁, 낡은 수첩에는 굵직굵직한 글씨들이 빼툴거렸는데 일가친척 전화번호도 적혀 있고 유행가사도 빼곡히 적혀 있었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며 최희준의 /'/고향무정/'/도 있고 김수희의 /'/남행 열차/'/며 송대관의 /'/사랑해서 미안해/'/도 있고 태진아의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등 최신곡도 있었는데 틈만 나면 그 수첩 보면서 옛날노래 드높이 부르던 청호댁, 자식들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잘 하라고 아프지 마라고 불공 드린다고 미륵굴도 가고 석굴도 가고 초파일이면 연등도 밝히셨지. 나이 육십 넘어서는 개종하여 넷째동서 따라 성당에 나가면서 십자가도 안방 벽면에 걸어두고 성모 마리아상도 모셔두었지. 옛날 정안수 떠놓고 치성 드리듯이 법당에서 두 손 모아 합장 하듯이 새벽마다 몸단장하고 자식들 하나하나 호명하면서 바란대로 뿌린대로 거두게 해달라고 천주님께 수없이 되뇌시던 청호댁, 새마을운동 한창일 때 당봉리 부녀회장 맡아서 지붕개량한다고 마을길 넓힌다고 스레이트도 실어오고 땅도 희사받았지. 보건소사람 모셔다가 둘만낳기 운동도 벌이고 협동조합도 복작지근하게 열었던 청호댁, 민주주의가 무언지는 모르지만 귤나무 심으면 탱자 되니까 한국적 민주주의 해야 한다며 집집이 유신헌법 홍보지도 돌리고 통대 선거 운동도 적극 도와서 군수님 표창도 받았던 청호댁, 광주 5.18 겪고 나서는 야당 후보 찍어야 한다고 일가친척 국회의원 후보 밀다가 그러면 자식에게 피해가 간다는 누군가의 귓뜸에 몸져 눕기까지 했던 청호댁, 군입대 하는 아들놈에게 밥 굶지 말고 몸 성히 다녀오라고 /'/비 내리는 고모령/'/ 부르다가 눈물 쏟던 청호댁, 그래도 눈에 밟힌다고 이틑날 전주 집결지까지 따라와서 얼굴 가리고 눈물 훔치던 청호댁, 눈물이 하도 많아서 친정식구들 그립다고 눈물 흘리고 아픈 자식 가엾다고 눈물 흘리고 집 나서는 자식 고생한다고 눈물 흘리고 연속극을 보다가도 코를 팽팽 풀어대시던 청호댁, 자식들 모두 결혼시키고는 한갓져서 좋다고 하면서도 이집저집 김치담아 나르랴 집안 청소하랴 손주 보아주랴 인생살이 분주하기만 했던 청호댁, 명절 때마다 이바지 지어 보낸다고 송편이며 백설기며 약과며 밥산자며 떡갈비도 넉넉히 재어놓고 이제냐 저제냐 자식들 기다리던 청호댁, 전교조 파동 때는 불섶으로 뛰어드는 아들 보고 정권 이겨 먹는 놈 못 봤다며 인공 때도 똑똑한 사람 다 죽어났다며 소나기 올 때는 피하는 게 상수라며 내 손목 잡아 앉히셨던 청호댁, 조국이니 자유니 경제니 이런 건 모르지만 오로지 자식들만을 위하면서 없는 걱정도 사서 하시던 청호댁, 좋은 일도 나쁘게 될까 봐 걱정하시고 나쁜 일도 좋게 되지 않을까 봐 걱정하시고 날이 날마다 차조심하라고 불조심하라고 사람조심하라고 전화통 붙잡고 자식들 집집이 신호 보내는 청호댁, 이젠 팔순이 다 되어서 눈이 침침하다고 수족이 굳었다고 어서 죽어야 한다고 입엣말 하면서도 이웃들이 찾아와서 마실 나가자면 만사 제치고 따라 나서던 청호댁, 산으로 들로 갯가로 나가서 채집하는 것이 몸에 배였는지 고사리도 취나물 나문재도 꺾어 오시고 고구마도 생강도 바지락도 캐어 오시던 청호댁, 김장철마다 자식들 몫까지 김장한다고 손 크게 배추 이삼백 포기 받아 놓고 일욕심 부리다가 뻔히 몸살 나시던 청호댁, 자식들이 부엌일 그만 두시라고 해도 두 손 내저으며 뜨신 밥 내고 찌개 나르면서 맛난 반찬은 접시채 들어서 이것 들으라고 요것 먹으라고 옮기는 일이 버릇이 되어버린 청호댁, 당신일랑 조금도 돌보지 않고 당신일랑 조금도 뒤돌아 보지 않고 오직 자식들만을 위하여 장성한 자식도 물가의 애처럼 보이는지 앉으나 서나 애가 타서 간도 쓸개도 다 빼주고 이젠 허물만 남기고 헛것이 되어서 동천을 날아가는 팔랑나비처럼 청호댁, 잘룩거리며 살아온 길 되돌아 가는가?       로그인 하신 후에 의견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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