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조선일보의 굿거리와 MB의 장단
                       조선일보 대대적 보도에 이명박 적극 호응

집에 다니러 온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들었다며 어떤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소개했다.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여 2008년의 거의 절반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를 부정하면서, “미국 수입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수백만 분의 일에 불과한데, 그 수백만 분의 일 확률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고일어난 것은 군중심리에 약한 우리 민족의 기질과 관련이 있다”라는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수업이 끝난 후 아들 녀석은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와는 시각이 너무도 다른 교수님의 강의 내용이 부담스럽다”는 말을 했다나.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아들 녀석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 교수님이 또 그런 식의 강의를 하거든 이런 질문을 해봐. ‘교수님은 로또 복권을 산 적이 없으십니까?’ 만일 로또 복권을 산 적이 있다고 하면, 또 없다고 하더라도, ‘수백만 분의 일 확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로또 복권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로 그 수백만 분의 일 확률 때문에 수백만 명이 로또 복권을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해보라고.”

미국 쇠고기 협상은 그 교수님 말씀처럼 수백만 분의 일에 불과한 광우병 확률 때문만으로 문제화된 것이 아니다. 졸속 외교 안에 국가의 자존심 결여와 굴욕, 속임수 따위가 결부되기에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아들 녀석과 좀 더 진지한 얘기를 나누면서도 문득 아들 녀석이 측은해지는 느낌도 감내해야 했다. 명색 대학교수라는 사람의 지적 수준과 시야가 그 정도라는 사실도 씁쓸했고, 그런 교수에게서 강의를 듣고 점수도 받아야 하는 아들 녀석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는 느낌이었다.    

국민의 자각과 ‘시민정신’의 결집으로 촉발된 들불과도 같았던 2008년의 촛불집회는 이 나라를 70, 80년대 ‘경찰국가’의 모습으로 환원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국민 속에는 엄청난 자각 능력과 응집력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해주었다.

일시적 결과야 어떻든 이미 ‘역사적 사실’로 자리매김한 2008년의 촛불집회로부터 2년이 흐른 오늘 촛불집회에 대한 기억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확연히 일깨워주는 일이 벌어졌다. <조선일보>가 2년 전의 촛불집회를 대대적으로 부정하고 왜곡하고 폄훼하는 작업을 벌이자 이명박 대통령이 순발력을 발휘하기라도 하듯 적극 호응을 하고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는 조작과 왜곡의 명수답게, 치졸하고 저열한 습성과 능력을 적나라하게 발휘했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오래 준비해온 작전을 펼친 듯한 느낌이다. 어찌 보면 발악 같기도 해서,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조선일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촛불집회의 정당성과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3.1만세운동도, 4.19혁명도, 5.18민주화운동도, 6.10민주항쟁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신문이다. 우리 역사의 중요한 봉우리들을 부정하고 폄훼하는 관성과 그 연장선상에서 촛불집회에 대한 왜곡·폄훼 작업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러므로 조선일보의 그런 작업은 오히려 역사적 관점으로 볼 때 촛불집회의 정당성과 가치를 더욱 확인시켜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아울러 국민 속에 잠재된 자각 능력과 응집력을 고조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조선일보 독자들 중에는 조선일보의 굿거리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교회가 간 사람들이 목사가 제멋대로 엉터리 설교를 하고 괴상한 정치적 발언을 하는데도 그게 다 성령이 하시는 옳은 말인 줄 믿고 “아멘! 아멘!”하는 것처럼(그런 신도들이 있어 교회가 유지되는 것처럼) 조선일보에는 그런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이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찌 보면 부분적으로는 다시 그런 세상이 온 것도 같지만, 조선일보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와 변화의 징표를 느끼고 있기에 조선일보가 그런 굿거리를 다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상은 이명박 대통령뿐이다. MB는 조선일보의 촛불집회 폄훼 작업에 크게 고무된 듯하다. 심기일전한 것 같은 모습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일개 보수언론의 굿거리에 단박 맞장구를 치고 나서는 것은 아무래도 사려 깊지 못하고 경박하다.

2년 전 촛불집회 당시 청와대 뒷산에 올라 장대한 촛불들을 보며 ‘아침 이슬’ 노래도 떠올리고 많이 반성했다고 하면서 국민들에게 두 번이나 머리 숙여 ‘사과’를 했지만 그는 그것을 금세 잊었고 또 뒤집었다. 그의 사과는 심각한 망각증과 변덕을 입증시켜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의 ‘반성’을 손쉽게 뒤집는 이상한 자기부정과 자가당착을 국민들은 이미 예전에 알았지만 조선일보의 굿거리장단에 단박 걸려들어 국민들에게 아침부터 반성을 요구하는 MB의 적반하장 태도는 참으로 이해난망이다.

혹시 청와대 주방장이 미국 수입 쇠고기를 너무 자주 내놓아서 MB의 망각증이 더욱 심해지고 사리분별력이 저하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마저 든다(오해마시라, 이런 표현은 조선일보식 표현이다).    

조선일보의 2년 전 촛불집회에 대한 굿거리와 그것에 즉각 호응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장단을 보면서 아 2년 세월이 금세 바람같이 흘렀구나, 앞으로 2년 세월도 금세 바람같이 흐르겠지! 인생무상에 대한 생각도 해봤다.

10.05.12 15:23 ㅣ최종 업데이트 10.05.12 15:23
태그 / 촛불집회, 이명박, 망각증과 변덕, 조선일보
출처 : 조선일보의 굿거리와 MB의 장단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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