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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아, 미안하다
최기종
남산에서 북악에서 삼각산에서 내려온 물이
미안하다
청개천에서 중랑천에서 의정부에서 흘러든 물이
정안수 자리끼 소셋물 눈물 콧물 허드렛물이
삼천리 방방곡곡 물이란 물이 미안하다
너희들 모이고 모여서
유유히 흐르고 흘러서
가람이 되고
언어가 되고
사랑이 되고
역사가 되어야 하는데
강물아, 이를 어쩌나
너희들, 청산이고 구릉이고 나루이고 목계이고
연어 송어 쏘가리 모래무지 뛰노는 폭포가 되어서
아우라지 뗏목이 되어서
하회마을 별신굿이 되어서
백마강 달밤에 구드레가 되어서
영산강 구비구비 느러지가 되어서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들판을 지나서
필생의 염원, 인의예지 만나러 가야 하는데
강물아, 미안하다
조선이 막히고
길이 막히고
생활이 막히고
말이 막혀서
허릿병 도지고
배불뚝이 되고
손님마마 되고
벙어리 냉가슴 앓아서
강물아, 미안하다
바위늪구비 파헤지고
퇴적토 오니층이 드러나고
여주보 이포보 강천보 금남보 금강보 부여보
승천보 죽산보 상주보 낙단보 구미보 칠곡보
강정보 달성보 합천보 함안보가 들어서니
나라가 동강나고
고향이 동강나고
자연이 동강나고
목숨이 동강나는구나
독새기 물여귀 수련이 마름이 자라풀이 가시연꽃이 신음하는구나
쇠기러기 고니 흑두루미 논병아리 고방오리도
개개비 해오라기 물떼새 쇠백로 도요새도 떠나는구나
강의 위로가 된다고
식생의 위로가 된다고
나라의 위로가 된다고
지구의 위로가 된다고
붕어 잉어 장어 매기 빠가사리 송사리도
도룡뇽 무자치 남생이 맹꽃이 송장개구리도 울어대고
왕버들 국수나무 누리장 갈대 부들 창포 물봉선도 수신호를 보내는데
미안하다 강물아,
금모래빛 엄마야 누나야 어디갔나
몽돌도 자갈밭도 풀수밭도 물바위도
내고장 청포도, 징검다리도 깨북쟁이도
금빛 울음 우는 황소도 망아지도 수달이도 어디갔나
물은 흘러가야 하고
길은 이어져야 하고
생은 살아야 하고
명은 하늘의 것인데
이를 어쩌나 강물아,
살림의 위로가 된다고
죽음의 위로가 된다고
지킴의 위로가 된다고
눈물의 위로가 된다고
예수도 석가도 공자도 서낭당도 달려왔구나
삼별초도 동학도도 독립군도 민주열사도
천신도 지신도 물신도 목신도 주신도
장씨도 이씨도 할비 할미도 손자 손녀도 달려왔구나
포크레인 기중기 지게차 덤프트럭 몰아낸다고
콘크리트 바리케이트 물막이 무너뜨린다고
너희들, 꽃마차처럼 종소리처럼 흘러가게 하려고
한수에서 금강에서 낙동에서 영산에서
다살이 해방춤을 추는구나
시천주하라고 자연이게 하라고 항소하는구나
검룡소에서 뜬봉샘에서 황지에서 용소에서 발원한 물이
미안하다
월악에서 속리에서 백양에서 팔공에서 소백에서
여주에서 부여에서 대구에서 상주에서 광주에서 내려온 물이
지장수 옥정수 매우수 추로수 춘우수가
세상천지 모든 물이란 물이 미안하다
너희들 모이고 모여서
유유히 흐르고 흘러서
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세마치 진앙조로
개구리밥 오리밥 까치밥 물옥잠 자라풀 생이가래가 되고
들꽃이 되고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자유가 되고
너희들 소원이고 등뼈이고 아픔이고 기쁨이고
기도이고 포응이고 살림이고 인내이고 끈기이고
생명이고 규휼이고 정신이고 섭리이고 윤회이고
억조창생 너른 바다가 되어야 하는데
강물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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