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뱀사골
지리산 하산 길에
뱀사골 병풍소 계곡물에
아내는 땀을 씻었다.
청류수(淸流水) 물방울 듣는
아내의 얼굴에는
티끌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여름날, 기나긴
오후의 햇살이 눈부셔
깜빡 눈을 감았다.
최기종 시집 <<나무 위의 여자>>에서
군말
나는 뱀사골이 뱀이 그것도 독사가 드글드글한 곳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골짜기 모양이 뱀 사(巳)자 모양이라 명명되었다고 한다.
1989년 여름은 나에게 잊지 못할 계절이었다. 전교조 문제로 학교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탈퇴 각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8월 17일 해직이 되었다. 그 때 대내외로 복잡한 문젯거리가 많았지만 머리도 식힐 겸해서 아내와 함께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
백무동 코스를 택해서 장터목 산장으로 올라서 천왕봉을 다녀왔고 세석산장, 연화천 산장을 지나서 토끼봉으로 해서 뱀사골 계곡으로 내려 왔었다. 장장 3박 4일의 일정이었다. 그 때 내려오던 뱀사골 계곡은 너무도 길었다. 계곡을 내려도 내려도 끝날 줄을 몰랐다.
기운 떨어지고 땀이 범벅이 되어서 병풍소에 다다랐다. 짐들을 벗어 던지고 계곡물에 몸을 던졌다.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피곤이 곧바로 풀리는 듯 했다. 그런데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곁에 있었는데 어디에도 아내는 없었다. 주변을 둘러 보는데 아내가 바로 옆 둔덕진 바위 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때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청류수 맑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나 고왔다. 아내의 얼굴에는 티끌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오후의 햇살만 눈부시게 비칠 뿐이었다.
|
게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