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선언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단식 60일
김희정
우리도 사람이다
희로애락 느낄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자식들이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불의에 분노하는 정신도 가지고 있다
이웃이 아파하면
눈물 고이는 맑은 눈도 가졌다
올림픽 경기에서 메달을 따는 모습 보면
어깨춤이 저절로 올라가는 감정도 있다
우리도 사람이란 말이다
계절의 변화를 누구 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봄날 꽃들이 세상 밝히면
곱고 아름다운 자태에 눈길 쏠린다
여름 날, 더위 피해 가까운 계곡이라도 가서
새끼들과 미지근한 수박 한 덩이라도 나누고 싶다
가을 단풍이 물들었다고 뉴스에서 오두방정을 떨 때
회사에 잘 심어져 있는 몇 그루 나무를 보고
꺾인 허리를 펴
높고 깊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울이 오면 김장을 하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 걱정도 했다
우리도 사람이다, 오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휑한 눈으로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기다렸다
내일은 비정규직이 사라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라디오를 들었다
PCB기판에 납땜을 하다, 아찔한 연기가 올라와도
언젠가 가족과 주말 함께 할 수 있다는
소망 품었다
회사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때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숟가락을 혀로 애무했다
한 달 80시간 잔업에 100만원 채우기 힘든 주머니를
무디어진 팔과 다리로 위로하며 하루를 보냈다
지금 우리의 몸은 단식으로 장기 하나하나
기능이 떨어져간다
서서히 죽어가는 오장육부를 느끼며
내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처음으로 해 본다
|
게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