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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절 우리 사회는 인간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으며 그만큼 뜨거웠다. 이제 그런 치열함은 먼 과거의 일인 듯만 하다. 요즘 수입되어 회자되는 철학들은 좀처럼 재미가 없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이야기들이 물 건너갔다가 역수입된 것에 불과하다는, 결국 현대 서구어로 윤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 탓만은 아니다. 그들이 관찰하고 분석한 인간과 세계는 적어도 내게는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아무리 들여다보고 귀 기울여도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철학이 사라진 자리 어느 곳에나 경제라는 괴물이 주인처럼 똬리를 틀었다.
인문학의 몰락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예상 가능했던 세상을 살 따름이다. 예상 가능했던 길을 걷고 마찬가지로 그러한 삶을 영위할 따름이다. 세계는 더는 변화가 불가능할 만큼 견고하게 완성된 듯하며 체제는 그 어느 때보다 폭력적으로 자신을 변호하는 듯하다. 세계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던 용감한 자들은 사라졌다. 우리에게 남은 가능성은 변혁이나 변화가 아니라 오로지 ‘재개발’뿐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불철저한 믿음은 수정되는 중이다. 관념 속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현실 속에서는 진행 중이다. 검찰이 용산 참사 관련자에게 중형을 구형했고 문규현 신부가 쓰러졌으며 용산 범대위 관계자들이 단식을 시작했다.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게 마련이고 진리의 기준은 실천이다. 이 오래된 명제가 용케도 살아남았다. 내가 의심했던 그들은 지금 세계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이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간신히 버티는 중이다. 오래전 산산조각 났어야 할 세계가 여태 살아남은 건 그이들의 고통스러운 불복종 덕분이다. 고맙습니다.
<2009. 10. 27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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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