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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배기 고시원
유순예
죽은 지 일주일 만에 발견된 점식이 형은 이제 신수가 훤하겠다. 법률서적 대신 작업복이 들어 있는 가방을 메고 이른 새벽, 고시원을 나서는 모습은 고시촌 어디에도 없다.
삼천 원짜리 김치전에다 막걸리 예닐곱 잔이면 하늘을 가질 수 있다는 그의 단골집 컨테이너박스도, 무보증에 월 십만 원이면 찬기는 피할 수 있다는 언덕배기 고시원도, 황파에 떠밀린 장기 고시생들이 밤마다 목 축이러 나온다는 일명 고수들의 거리도, 천팔백 원짜리 식권 한 장으로 하루치 끼니가 전부인 사람도, 법률서적 구입할 요량으로 공사장에서 번 돈으로 술 사먹는다는 사람도, 저보다 잘난 사람이 없는 고수들이 고고하게 살아가는 곳이다. 술자리에서 법조문 하나만 꺼내면 옆자리에 있던 사람도 금세 혈연관계가 맺어진다는, 난해한 법조문이 펼쳐지는 곳이다. 술값 내는 사람이 형님이 되고 빌붙는 사람은 동생이 된다는. 합격해서 차고 나간 사람은 소식이 없고, 또 아무개가 죽었다는 소문들이 합격자 명단보다 크게 허공일보에 게재되는 고시촌, 언덕배기다.
그날도 점식이 형은 술을 마셨단다. 일삼아 시비 걸어 맞은 돈으로 술 사먹는다는 동생과 한 잔 하다 그놈한테 된통 맞았단다. 삼십여 년, 친구해주던 술이 괄약근을 미치게 한 줄도 모르고 잠들었다가 저승법조인과 눈이 맞아 아예 지하로 내려가 버렸단다.
쉰다섯, 점식이 형은 늘그막에 지하 재판장이 되었겠다. G법대 수석 입학생답게 G법원 재판장이 되어서 판결문을 쓰고 있겠다. 그를 밀어준 동생한테 어떤 답례를 할 것인지 관심 없다는 듯, 언덕배기 고시원이 개축 공사를 하고 있다.
학
유순예
사람 냄새 먹어치운 잡초들의 안내에 따라
낯선 집 마당을 훑어보는 중이다.
철컥~철컥~
안방 창살문 고리를 흔드는 퀭한 눈망울이 나를 찍고 있다.
“저어… 사진 좀… 찍고… 갈게요”
당황하는 인기척에도 온기가 도는지
고개만 무겁게 끄덕여주고 이내 천천히 몸을 눕히는
할아버지, 홀로 먼지가 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너처럼 나도 곳곳을 배회한 적이 있었지”
가누지 못하는 몸을 감싸 안은 솜이불이 대신 말을 건넨다.
맞은편 창살문을 뚫고 들어온 오뉴월 뙤약볕이 따끔하다.
지붕 위로 올라선 잡초들이 하늘을 두드리고 있다.
까꿍~까꿍~
저 둥지에서 한때 새끼들을 품고 어깨춤을 추었을
할아버지, 홀로 문드러지고 없는 날개를 추스르고 있다.
마을 이장이나 간간이 들러볼 것 같은
센 깃털 몇 가닥,
목욕은 하셨는지
녹슨 세숫대야가 잠방잠방 빗물을 받아놓고 있다.
안방으로 달려간 거미줄이 옷장을 뒤지고 있다.
군위군 금매리 마을 뒷산에 군락을 이룬
학, 무리들이
항라저고리 다소곳이 차려입고
큰상을 차리느라 동서분주하다.
약력: 2007년 《시선》 등단. 시집 『나비, 다녀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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