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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
- 찔레꽃
찔레꽃을 생각하면 한 소녀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소녀도 도회의 소녀가 아니라, 물동이 이고 어린 동생을 질질 끌다시피 집으
로 걸어가는 그런 시골 소녀가 떠오릅니다.
소녀는 치마를 입었습니다. 치마도 몇년째 같은 치마를 입은 탓에 키와 함께
자라지 못한 치마가 무릎 근처에서 살랑거립니다.
길에서 동네 어른를 만나면, 이고 있는 물동이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살짝
미소만 보이며 지나갑니다.
그런 소녀의 잇속같은 꽃이 찔레꽃입니다.
그런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 찔구순
찔구는 찔레를 일컫는 전라도 말입니다.
찔구는 언제나 어덕이 시작되는 깔끄막에 있습니다.
가파라서 다른 식물들이 쉽게 자리를 잡지 않는 곳.
길에서 가까워 사람 손길이 쉽게 닿는 곳.
비탈진 곳이지만 사람 가까이 있는 찔구의 마음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심
성과도 같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가난하게 살더라도 항상 남에게 자신의 것을 내주려는 사람
들.
찔구는 제 새순을 잘라 다른 사람의 허기와 갈증을 풀어줍니다.
어린날, 항상 배가 고팠던 내게 간식이 되어 준 것은 삐비와 찔구였습니다.
삐비(삘기)는 꽃을 주었고 찔구는 가지를 주었습니다.
어느날 나는 형과 함께 찔구를 꺾어먹으러 갔습니다.
하지만 키 작은 나에게 찔구는 좀체 제 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형이 꺾어주는 찔구를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참 동안 찔구를 꺾어 먹는데, 형은 꼮 작은 것을 나에게 주고 자기는 큰
것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작은 것을 받아먹던 나는 어느 순간 심통이 났습니다.
'성아넌 우째서 짜근 거슨 난테만 준가?'
그러자 형은 '찔구순은 큰 것일수록 맛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형의 말을 곧이대로 믿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나의 뗑깡(떼)을 이기지 못한 형은 그후부터 큰 찔구순을 내게 주었습
니다.
'맛태가리 읎지야?'
큰 찔구순을 하나씩 먹고난 후 형이 던진 말이었습니다.
'무슬? 겁나 마싯구마.'
나는 형이, 큰 찔구순을 욕심내서 하는 말인 것으로 생각하고는 오히려 큰
순이 더 맛있다는 듯이 말을 하였습니다.
형은 이전처럼 두 개의 찔구순을 꺽었고, 큰 순을 연이어 나에게 주었습니
다.
그러나 사실, 큰 찔구순은 맛이 없었습니다.
달짝지근함도 별로 없었고, 씹다보면 뻣신 섬유질이 성가시기만 할 뿐이었습
니다.
그러나 다시 작은 찔구순을 달라고 하기에는 조금 전의 뗑깡이 심했습니다.
나는 정작 더 좋은 것을 나에게 주려 했던 형의 마음을 몰랐던 벌로 오래도
록, 뻣뻣한 찔구순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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