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법
이영주
그녀들이 염산을 뿌린 것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죠. 모래에 묻힌 창문을 손톱으로 긁는 것도 푸른 알을 배고 쏟아지는 새벽 때문입니다. 이제 그만. 그녀들은 매달 태어나는 아기들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뱃속을 열어보니 곰보 핀 빵뿐이었어요.
아기를 업은 포대기에 손을 넣고 맨발을 시멘트벽에 콩콩 찧으며 소녀는 영원히 멈춰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서진 문틈에서 번뜩이는 흰자위를 핥고 있는 검둥개. 소녀는 꼬리를 물고 컹컹거렸습니다.
큰언니들은 붉은 손바닥으로 어두운 골목의 온도를 쟀습니다. 남의 옷을 훔쳐 입고 남의 치즈를 훔쳐 먹고 어른이 될 때마다 이 도시의 하나뿐인 병원은 미어터질 지경입니다. 포성이 멈춘 시간이면 희희낙락하던 어제의 소년과 오늘의 소년이 함께 문병을 오곤 했습니다.
자살에 실패한 밤은 염산으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얼굴을 소녀의 머리 위에 올려놓습니다. 이 시간을 돌아서 거리의 끝으로 걸어가는 무거운 구름들. 모래언덕을 건너가면 이 전쟁에서 남은 것은 저 숲으로 기어가는 수많은 소녀들.
늙은 정령들은 숲이 낳은 뭉툭한 아기들의 손발을 물어뜯으며 컹컹거립니다. 그게 끝이라면 그녀들은 또다시 뱃속을 열어볼 텐데요. 숲의 입구에서 뒹구는 염산병들은 소녀의 검은 거웃을 아직도 태우지 못했습니다. 젊은 군인들이 병원을 지나 도시의 끝으로 행진할 때마다 자꾸만 가려워지는 소녀의 옆구리에서는 눈먼 짐승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이영주 1974년생.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108번째 사내』가 있다.
|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