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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과 밭
김용락
아파트가 좁아 소장한 책 일부를
시골집 아래채에 갖다 놓으려 했다
한 때 내 꿈은 어마어마한 장서가가 되는 것이었다
자다가 책에 깔려 죽어도 좋을 만큼
책상머리에 많은 책을 쌓아 두고 싶었다
대학 때는 라면도 굶어가면서
하루 빨리 책 만 권을 사 모으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이 지긋지긋한 책 욕심이
공부나 세상에 대한 진지한 탐구심이나 열정이 아니라
사실은 내 무의식 깊은 곳에 있던
어떤 열등감의 표출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책 구매에 순순히 동의하던 집사람도
언제쯤부터는 보지도 않을 책 제발 좀
그만 사 모으라고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삿짐 트럭을 불러 포장이사를 시작했다
각이 잘 짜여진 매끄러운 종이박스에다가
도서분류 번호와는 상관없이 우선 낡고 오래된 책부터 채워
작은 트럭에 잔득 싣고 시골집에 도착했다
큰 신작로 가에 포장 박스를 내려 놓고
바퀴에 바람이 빠진 리어카로
몇 번 꺽어진 골목 안 쪽 옛 우거에
책을 실어 나르느라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구경 나온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멀찍히 서서 이 장면을 구경하던 우리 어머니에게 물었다
"영자야(맏누님 아명이다), 저게 뭐꼬?"
어머니의 천연스런 대답
"우리집 논 밭이다"
어머니 친구분
" ? ? ... "
정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서 계셨다
김용락 1959년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푸른별]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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