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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타령’의 명창 이날치
이경재
옛날 전라도 창평이라는 곳에 ‘이창숙’이라는 어린 남자아이가 살고 있었지요. 창숙이는 광대 집안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재주를 익히면서 자랐답니다. 광대는 가면극, 인형극, 줄타기, 땅재주, 판소리 같은 예술 행위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조선시대 때는 함부로 신분을 옮길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창숙이의 가족은 모두 광대 생활을 하면서 대대로 살아 왔지요.
광대놀음에도 재주를 익히는 순서가 따로 있었어요. 우선 어린아이들은 풍물이나 인형극같은 비교적 쉬운 놀이를 가르쳤고, 조금 자라게 되면 땅 재주를 배우게 했지요. 땅 재주는 ‘살판’이라고 했는데 지금의 체조선수들처럼 땅위에서 공중돌기나 물구나무서기 같은 놀이를 말한답니다.
‘살판’이라는 말은 ‘재주를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다.’라는 뜻에서 붙여진 말이 랍니다. 땅재주는 앞으로 넘기, 뒤로 넘기, 여러 번 돌려 넘기, 빙글빙글 돌며 넘기, 한발로 멀리 넘기 등 열한 가지 순서가 있습니다.땅재주는 그냥 몸동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북, 장고, 피리 같은 악기 소리에 장단을 맞춰 춤동작을 하거나 서로 재미있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재주를 부린답니다.
창숙이는 몸이 빠르고 동작이 부드러워 땅재주를 쉽게 익혀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가 어엿한 청년이 되자 아버지는 광대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줄타기를 가르쳤답니다. 줄타기는 광대놀이의 꽃으로 줄 타는 사람을 ‘어름’이라고 했지요.
‘어름’은 무대 중앙을 가로지른 높다란 외줄을 건너다니며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공중에 친 줄 위로 걸어 다니거나 앉거나 몸을 솟구치거나 거꾸로 서거나 하는 동작으로 갖가지 재주를 익혀야 했어요. 땅위에서도 힘든 일을 공중의 줄 위에서 하는 놀이라 무척 위험했지만 창숙은 이를 잘 따라 했습니다.
줄 위를 마치 땅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처럼 동작이 참 빨랐답니다. 게다가 나무 위를 자유롭게 다니는 다람쥐처럼 날렵하다하여 그를 ‘날치’라는 별명까지 붙여 주었지요. 그는 이때부터 창숙이가 아니라 ‘이날치’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날치’의 줄타기를 보려고 여러 곳에서 몰려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이날치는 너무 좋아 이리도 타보고 저리도 타보고 온갖 재주를 부리며 사람들을 즐겁게 했답니다. 하지만 그는 줄타기보다는 마음 한 곳에 꼭 배우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판소리였던 것이지요.
광대 중에서도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웃기는 재주를 다 가져야만 했으므로 제일로 높게 인정을 받았답니다. 아무리 줄을 잘 타더라도 사람들을 즐겁게만 했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거나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때문에 꼭 줄을 타며 판소리를 들려주는 소리꾼이 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날치는 세상의 온갖 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판소리를 꼭 배우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소리를 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답니다. 벌써 결혼을 해 예쁜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루 이틀 일 년 이년의 세월이 지나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날치는 간절한 소원을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 비록 가난한 광대지만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하나 있소.”
“그게 무엇인데요.”
“내 소원은 소리를 하며 줄을 타는 승창이 되는 것이요. 하지만 그것을 이루려면 당신이 내 뒷바라지로 삼 년 동안 고생만 해야 하는데 어떻게 들어 줄 수 있겠소.”
“소리꾼이 되려면 오랜 동안 소리공부를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삼년가지고 소리공부를 어찌 다 해 낼 수 있단 말입니까.”
“죽기 살기로 매달리다 보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소.”
“그게 뜻대로 된다면 이야 삼 년 고생 정도야 얼마든지 하겠지만 그 이상은 모릅니다.”
야속하긴 했지만 그래도 고마운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삼 년 동안 이 동네 저 동네 행상을 하며 밥을 빌어다 남편을 먹여 살렸답니다.
이날치는 처음에는 박만순이라는 명창을 찾아가 소리 공부를 했었지요. 박만순 명창은 판소리를 집대성한 송흥록 명창의 수제자로 이날치 보다 열 살이나 나이가 아래였습니다. 게다가 형님으로 대접해 주기는커녕 소리를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곧바로 고수부터 시작하라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이날치는 묵묵히 시키는 대로 일을 잘해 냈습니다. 고수는 ‘북’을 앞에 놓고 명창의 소리에 따라 흥을 불러 넣거나 장단을 맞춰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다가도 소리꾼이 멀리 소리 공연을 다닐 때면 짐꾼 노릇까지 해야만 하는 것이었어요.
고수가 한번 실수를 하거나 박자를 잘 못 맞추게 되면 소리 대목은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행여 박만순 명창이 소리를 하다 그의 소리를 잘 못 맞추기라도 하는 날에는
“아니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 맞춰. 그래가지고 소리를 배우려고 혀. 소리꾼, 흥! 어림도 없다.”
소리가 끝나면 순식간에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원래부터 명창에 대한 대우는 대단했지만 고수에게는 그 대접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박만순 명창은 인정이 별로 없어 이날치를 무시하거나 쌀쌀맞게 굴었지요.
이날치는 운이 좋으면 하인들 틈에 끼어 겨우 밥을 얻어먹거나 머슴들 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게 보통이었어요. 하지만 나이 어린 스승의 소리를 조금씩 익혀 나가면서 말없이 소리공부를 배워 나갔답니다.
북을 치면서도 박만순 명창의 소리의 높낮이를 속으로 몇 번이고 반복하며 따라 불러 보았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무슨 동작을 하는지 심지어 숨을 언제 들어 마시고 내 놓는지 조차도 하나하나 빠지지 않고 배워 나갔던 것이지요. 그리고 스승 몰래 뒷산에 올라가 그날 스승이 하는 소리를 목이 터져라 따라 하며 소리공부를 했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스승의 소리를 조금씩 닮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스승의 괴팍한 성격은 결국 그를 떠나게 했습니다. 참다 참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이날치는 냅다 북을 스승에게 집어 던지며
“더러운 고수, 이제는 그만 둔다 이놈아, 나 원 참 어린 동생에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소리 하나를 제대로 배우려고 했지만 네 놈의 그 괴팍한 성질 때문에 죽은 놀부도 도망가겠다. 이놈아!”
“아니 기껏 소리를 가리켜 놓았더니만 이게 무슨 행팬가?”
박만순은 그를 나무랐지만 이날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답니다.
“소리를 갈쳐 준다고, 아나 소리다 이놈아, 이제껏 네 뒷바라지만 했지. 언제 소리 하나를 제대로 가르쳐 줬냐? 다른 곳에 가서 내 제대로 소리 공부를 한번 해 볼란다. 그래서 언제가 네놈 소리를 꼭 이기고 말 것이다. 두고 보아라. 이놈아!”
라고 하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던 것이지요. 그리고 또 다른 스승인 박유전 명창을 찾아가 소리를 배웠답니다. 하지만 그의 참을성 없는 태도로는 아내와 기약한 삼년을 다 채우고도 명창이 되지를 못했던 것이지요.
아내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남편이 줄타기를 할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독차지 하던 시절이 오히려 그리웠답니다. 이날치는 그런 아내에게 다시 간곡하게 청을 올렸습니다.
“내 이제부터 이제까지 익힌 소리를 저 추월산 너머 토굴에서 혼자 일 년만 더 공부해 볼 테니 그때까지만 참아주시오. 그때까지 내 소리가 저 추월산을 넘어오지 못한다면 다시 줄을 타며 당신을 호강시켜 주리오리다.”
“하이구, 그 일 년이 지나면 몇 년 간 더 뒷바라지 해 달라고 또 사정할 것인데 내 혼자 이 고생을 다 해야 할 것인데 난 못하오. 그러니 옛날처럼 그냥 줄이나 타면서 삽시다.”
이날치는 아내가 야속했지만 이 곳 저곳에서 우선 필요한 곡식을 얻어다 혼자 추월산을 올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내도 다시 행상을 하며 밥을 얻어다 추월산을 넘나들며 소리공부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하루 가고 이틀이 가고 벌써 새순이 돋아난 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져 겨울이 지나 갔지만 이날치의 소리는 추월산을 넘어 올 기색이 없었지요 벌써 몇 번이나 피를 토해 내며 소리를 있는 힘껏 질러도 보고 악을 써 보았지만 크게 나아지지를 않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늦은 봄날이었어요. 추월산의 한 봉우리에서 쑥국새가 한가롭게 울고 있었답니다. 창숙이는 그 소리가 자신의 처량한 신세와 같아 보여 쑥국새 소리를 따라 해 보았던 것이지요.
“쑥국 쑥, 쑥국”
그러자 저 너머 한 봉우리에서 화답하듯 쑥국 새가 울었습니다. 창숙이는 신기하여 또 쑥국새 흉내를 내어 보았습니다. 이제는 다른 쑥국새들도 대답하며 울음 울기 시작했어요.
이 산으로 가면서 쑥국, 저 산으로 가면서 쑥국, 쑥, 쑥국... 여러 번을 울어 보아도 쑥국 새들은 여전히 따라 울었습니다. 마침내 이날치는 여러 쑥국 새들과 어울릴 만큼 새소리를 잘 따라하는 명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뻐국새, 떰북새, 종달새, 부엉이... 여러 새소리의 울음소리를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이날치는 이런 재주를 몰래 숨겨 두었어요. 고생한 아내에게 마지막 되는 날 새들을 불러 모아 축제를 열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지요. 이윽고 일 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아내는 겨우 얻은 밥을 광주리에 이고 산을 오르며
“흥, 내 그럴 줄 알았다니께. 소리가 추월산을 넘어 온다고,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이 고생도 오늘로 끝이다. 만약에 소리가 이 산을 넘어 오지 못하면 소리 굴을 다 무너뜨리고 말 것이여. 두고 보라고.”
산 중턱에 걸터앉아 한 숨을 길게 내 쉬며 쉬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에선가 아득히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이상하다. 나를 부르는 것 같기는 한데...”
그 소리는 다시 들려 왔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산 너머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소리였습니다.
“아이고 이게 웬 소린가? 우리 남편 소리 아닌가? 참말로 저 산을 타고 넘어 오는 소리가 분명히 우리 서방 소리여. 아이고 이를 어쩔 것이야. 참말로 좋네. 참말로 좋아.”
아내는 한 달음에 산을 넘어 토굴로 달려갔습니다. 주위에는 벌써 쑥국새, 뻐국이 같은 여러 새들이 이날치와 더불어 재미있게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새가 날아든다. 왼 갖 잡새가 날아든다.
이 산으로 가면 쑥국, 저 산으로 가면 쑥, 쑥국...
아내는 너무나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새들은 좋아라 하며 함께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추월산도 어느새 새 소리로 가득 채우며 이날치가 비로소 명창이 된 것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아내는 너무 좋아 눈물을 흘리며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이날치는 새소리뿐만 아니라 나팔소리, 종소리, 말소리, 소 울음소리와 같은 짐승 울음소리 등 소리묘사를 잘하기로 소문난 명창이 되었습니다. 쉰 목소리인 수리성에다 날카로운 그의 성질 때문이었던지 소리판에서도 그의 이름은 줄타기를 할 때처럼 창숙이라는 젊은 시절의 이름보다는 ‘이날치’라는 이름으로 ‘이 날치’, ‘이 날치’를 부르며 좋아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소리하는 것을 들은 한때는 그의 스승이었던 박만순 명창도 ‘이날치’를 훌륭한 소리꾼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의 새타령은 오늘날에도 잘 전해져 많은 사람들이 추월산에서 불렀던 그 소리처럼
새가 날아든다. 왼갖 잡새가 날아든다.
이 산으로 가면 쑥국, 저 산으로 가면 쑥, 쑥국, 쑥국...
이 산으로 가면 뻐꾹, 저 산으로 가면 뻐, 뻐국, 뻐국...
하면서 우리 민요 ‘새타령’을 흥겹게 부르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리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 이경재 : 1963년 경남 거창 출생. MBC창작동화대상, 임수경통일문학상(시), 청년통일문학상(시) 수상. 장편동화 『내가 살던 고향은』, 『판소리와 놀자』, 시집 『시방세』, 『원기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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